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1>
'문예창작과에 꼭 가야겠니?'
어린 시절 나는 이 말을 정말 싫어했다.
이 말 뒤에는 언제나 부정적인 말들이 따라붙었다.
'문예창작과는 취직이 안되는데.'
'글은 다른 공부하면서도 쓸 수 있잖아.'
'작가는 굶어 죽기 딱 좋다더라.'
문예창작과에 가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내 꿈을 말했을 때,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떤 줄 아는가?
갓 피어오르는 꿈이 사뿐히 즈려 밟히는 기분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면 조금 괜찮아질 줄 알았다.
입시상담을 하는 내게 인문계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되물었다.
'문예창작과 실기? 그런 게 있어?'
'하여간 공부하기 싫으니까 헛꿈 꾸고 있어.'
'문예창작과 입시, 그런 건 난 모르겠으니 대학은 다른 과로 가는 게 어떨까? '
문예창작과 입시를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학원이나 수업이 많지도 않았고,
정보가 없고, 부정적인 말들에 지쳐있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예술고등학교 편입' 단 하나뿐이었다.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 정시 합격 및 학사 졸업,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과정 글쓰기 세부전공으로 석사 졸업 및 박사 입학.
현재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작가 겸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외선생으로 지내는 중.
여기까지만 보면 참 좋아 보일 것이다.
'어머, 그렇게 문예창작과에 가겠다 하더니. 성공했다 얘. 너는 꿈을 이뤘네? 좋겠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하겠어.'
'운이 좋은 거지. 쟤는 운이 좋아서 저렇게 된 거야.'
'넌 참 인생 편하게 산다.'
사람들은 나한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노력해서 목표나 꿈을 이뤄낸 사람은 알 것이다. 내게 어떤 굴곡이 있었을지.
예술이나 창작계열에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대학 합격과 졸업, 내게 붙는 저 수식어들이 사실 빛 좋은 개살구일뿐더러, 몸이 얼마나 망가지고, 얼마나 가난한 삶인지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예창작과를 꿈꾸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나는 문예창작과에 가서 불행해졌는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들을 문예창작과에서 만났다.
벌이가 시원치 않다 하더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한다.
출산 이후 몸이 병들고 힘들더라도,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쓸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일상은 글을 쓰며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으며, 조그마한 행복을 모으는 재미로 살고 있다.
나와 같은 문예창작과를 나온 다른 친구들의 삶은 나와 다르게 흘러간다.
희곡과 소설을 쓰면서 무대를 직접 연출하는 친구는 나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글을 쓰면서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은 그만두었지만 언어적인 재능은 감추지 못하여 여러 외국어를 섭렵하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지내는 친구도 있다.
책을 좋아하여 관련된 직업을 갖는 친구도,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어 교편을 잡는 친구도, 방송을 하는 친구도, 기자를 하는 친구도 다양하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하여서 작가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있는 다른 분야의 재능을 찾기도 한다.
글을 쓰고 싶은데 내가 글을 써도 될까? 나보다 잘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텐데? 내가 글을 써서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나 따위가 어디 가서 글을 쓴다 이야기해도 되는 걸까? 난 작가가 되고 싶은데 작가가 되고 싶다 말해도 될까?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은데 거기에 가면 나는 진짜 불행해질까?
학생이었던 내 안에는 불안과 부끄러움만이 가득했었다.
내가 만났던 많은 학생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많지만 주변의 반대 혹은 여러 문제(금전적이거나 현실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까지)들로 인하여 글쓰기 수업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문예창작과 입시에 대해 모르는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교사들이 많다.
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다.
스무 살부터 서른셋이 된 지금까지 장작 13년간 문예창작과 입시 과외를 했었다.
미숙했던 새내기 대학생 때부터, 글쓰기 교육을 전공한 대학원생시절을 거쳐
모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강사일을 하기도 하고, 동네에서 글쓰기 학원을 차려 운영하기까지 했다.
글을 쓰는 것보다도 가르치는 것이 더 자신 있다. 나는 많은 학생을 만났고 그만큼 경력이 쌓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는 이 글이 문예창작과 입시의 정답은 아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아직까지도 입시에 정답은 없다.
아주 잘 쓰는 학생이 백일장에서 3등 상을 받기도 하고,
글을 처음 써본 학생이 1등을 하기도 하는 게 이쪽 세계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이 세계 속에서 내가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다.
나는 문예창작과 실기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려주기만 할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그리고 청소년들이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썼으면 하는 사람이다.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읽고, 써야 하는지. 최대한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를 던져 주고 싶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으면 한다. 내가 어릴 때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할 때가 많다.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은 학생들이 많은 것을 알고, 생각하고, 선택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불안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이 글이 학생들의 멘탈 지킴이가 되길 바란다.
스물이 되기 전, 열아홉 살까지.
그 시기에 쓰는 글들은 때때로 불안하고 부끄러우며, 미숙하지만 빛나고 아름답다.
나는 그 글들을 응원해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 시기의 내가 참으로 원하던 그런 존재가.
'문예창작과에 꼭 가야겠니?'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바로 대답할 것이다.
'네, 전 꼭 가야겠어요.'
우습게도 서른이 넘은 지금의 내 안에도 글을 쓰는 데 있어 불안과 부끄러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지금 작가라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하고, 선생이라고 어디 가서 자랑스레 말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난 지금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