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만하잖아. 편의점 갔을 때 내가 문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살아가는 법."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My Liberation Notes)》
겉으로 보기에 나의 재정 상태는 완벽한 우상향이었다. 수입의 약 70%를 저축하는 지독한 성실함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통장의 숫자가 불어날 때면 잠깐의 성취감이 스쳤고, 금방이라도 1억이라는 고지에 닿을 것 같은 설렘에 교만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설렘은 유효기간이 아주 짧은 소모품이었다. 숫자가 높아질수록 역설적으로 내 안의 불안은 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돋아났다.
내가 세운 저축 계획은 희망찬 설계가 아니라,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예약해 둔 ‘탈출권’이었다. 나는 1억이라는 돈만 모으면 비로소 쉴 권리가 생길 것이라 믿었다. 그 돈이 나를 증명해 주고, 내 삶의 모든 억울함을 보상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다.
이직 후 약 7개월 만에 1,000만 원이라는 돈을 통장에 밀어 넣었다. 숫자가 불어나는 속도는 경이로웠고, 이 속도라면 3-4년 안에 1억이라는 고지도 충분히 점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대했던 승리감 대신 형용할 수 없는 막막함이 나를 덮쳤다. 1억이라는 목표가 가시권에 들어온 그 시점에, 나는 ‘이 방식으로는 내 안의 결핍을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는 묘한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천만 원을 모으기 위해 내가 지불한 것은 단순히 노동의 시간이 아니었다. 나를 굶주리게 하고, 타인에게 인색해지며, 오늘이라는 소중한 감각을 통째로 갈아 넣은 결과였다. 1억을 모은들, 그 숫자가 내 닳아버린 영혼을 보상해 줄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요새가 나를 영원히 가두는 창살이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미래를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무력해지던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가 쌓아 올린 성벽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Q. 그래서 요즘은 몇 %를 저축하나요?
A. 근래는 약 22-31% 언저리로 저축했던 것 같아요. 숫자적 목표가 다양한 관계 밑 내 안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한 이후에는 확 풀어졌던 것 같아요. 근데 한 번쯤은 고삐 풀려도 되지 않나 싶어요..ㅎ 정말 중요하다 싶었던 건, 나의 결핍을 적절히 파악하여 건강한 지출 습관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