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IT 기업들이 앞다투어 출시한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 스피커 (왼쪽부터 Google Home, Jibo, Clova, Nugu, Echo, KT Giga Genie)
아마존의 Amazon Echo, 구글의 Google Home을 앞세운 음성형 비서는 언택트 시대의 가족 다음의 말 상대가 되었다. 음성형 비서를 통해 알람을 설정하고 음악을 재생하는 것뿐 아니라, 쇼핑과 예약처럼 복잡한 일도 말 한 두 마디로 대화로 처리하며 친구처럼 잡담을 나누고 고민을 토로하기도 한다. 미국 성인 네 명 중 한 명은 스마트 스피커를 보유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은 자신의 스마트폰의 음성 비서를 항상 활성해둔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음성형 비서가 없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넷플릭스는 영화관의 경험을 통째로 침대 위로 옮겨왔으며, 에어비앤비는 집의 개념을 소유에서 공유의 개념으로 바꾸어 놓았다.
요즘 잘 나가는 제품과 서비스는 '새로운 고객 경험' 그리고 '단순함과 편의성'을 앞세워 우리 삶을 바꾸어 놓고 있다. 그러나 새롭고 편리한 서비스는 항상 좋기만 한 걸까?
로켓 배송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건물에 게양된 쿠팡의 로고와 태극기.
안타깝게도, 우리는 로켓배송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는 철물점이 어디 있는지, 반려동물 간식을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당장 필요한 식자재를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찾아볼 필요가 전혀 없다. 소비자가 필요한 모든 물품은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이면 최저가로 가장 빠르게 현관 앞으로 친절하게 나타나니 말이다. 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은 지난 3월 11일, 뉴욕 증권거래 (NYSE)에 상장했으며 현재도 기업가치 50조 원이 넘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 쿠팡의 기업가치는 단순 국내 주요 도시에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물류회사라는 것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로켓배송, 쿠팡이츠, 쿠팡페이까지, 편리함을 앞세운 '새로운 고객 경험'이 바로 그들의 가치를 수 배에서 수십 배로 높여주는 키워드다.
이미 수천만 고객을 확보한 이들은 강력한 편리함을 앞세워 사용자를 그들의 서비스에 가두었다. 새로운 물류 회사 한 둘 등장해도 쿠팡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쿠팡을 몰아내는 대체자가 생기더라도 그들 역시 다른 이름의 로켓배송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체류시간을 위해 사용자의 무의식을 조종하는 IT 제품들
콘텐츠 플랫폼이든, 청소나 장보기를 대신해주는 린 플랫폼이든 그들의 성장 공식은 다음을 따른다.
더 많은 사용자 - 더 많은 서비스/기능 - 더 많은 데이터 - 더 많은 수익
인스타그램에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상대방이 채팅을 작성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앱의 빨간색 배지로 나타나는 알람 표시는 사용자의 뇌가 알아채기도 전에 그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이러한 속임수에서 사용자는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더 오랜 시간 앱에서 체류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고안된 기술이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이 차지하는 트래픽이 증가한다. 추천되는 콘텐츠를 보고, 선호할 것 같은 광고를 내보낸다. 자연스럽게 광고를 볼 기회가 많아지면서 부를 쌓는 것이다.
콘텐츠 추천과 타겟팅 광고는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사전에 분류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사용자들이 앱에 머무르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용자 개인은 중독에 빠진 자신을 탓하면서 플랫폼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내놓지 않고서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서비스는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자신이 어떤 정보를 빼앗기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애플이 내놓은 M1 아이패드보다 중요한 것
애플은 지난 4월, 자체 M1칩을 이식한 아이패드와 아이맥, 그리고 새로운 IoT 제품인 에어 태그를 공개했다. 그러나 그보다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직전에 공개된 '당신의 데이터는 어떤 하루를 보내는가?' - "A Day in the Life of Your Data" 라는 리포트다. 리포트에 따르면, 우리의 개인정보는 우리가 사용하는 앱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되며 이로 인해 광고업계는 매년 250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즉, 개인 정보는 돈이 된다. 우리의 개인 정보는 어떻게 돈이 되는가. IT 기업은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사용자들의 '좋아하는' 걸 계속 내놓는다. 사용자가 좋아하는 사진을 추천하고, 사용자가 좋아하는 상품을 추천하고 좋아하는 영상을 틀도록 피드에 보여준다. 이러한 타겟팅 알고리즘은 점점 정교해지고 사용자들은 점점 앱을 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경험'과 '좋은 경험'은 분명 다르다. 그들은 어떠한 종류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의도와 상관없이 특정 정보를 제한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책임감을 분명히 느껴야 한다. 우리는 시스템이 조종하는 뇌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야 한다.
천장을 뚫는 기술이 아니라 바닥을 다지는 접근이 필요한 시대
일전에 KAIST 김주호 교수님의 HAI(Human - AI) 웹 세미나를 들었는데 이제는 천장을 뚫는 기술이 아니라 바닥을 다지는 접근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단순히 빠르게 시장에 침투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제공되는 방법을 고민해야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제프 베이조스를 이어 아마존의 최고 책임자가 된 앤디 제시는 기존 아마존이 가지고 있던 14가지 리더십 원칙에 두 가지를 추가했다. 그중 하나는 '그들의 확장과 성공엔 책임이 따른다. (Success and Scale Bring Broad Responsibility)'이다.
'우리는 창고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동이 가져올 영향에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지역 커뮤니티, 행성,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고객, 파트너, 직원들, 그리고 전 세계 모두를 위해서요..'
어떤 기술과 제품도 완벽히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다. 기술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은, 긍정적인 가치를 창출할 잠재력 또한 충분하다는 뜻이다. Toss는 그동안 금융 서비스를 어렵게만 느꼈던 사람들에게 쉬운 언어와 인터페이스를 통해 높은 편의성과 접근성을 제공하고 있고, 불편함 플랫폼은 우리들이 불편함을 새롭게 데이터로 창조해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맨해튼 계획을 후회할 줄 아는 디지털 시대의아인슈타인들은 몇이나 있을까.
새롭고 빠르고 편한 것은 종종 선한 것으로 여겨진다. IT 기업이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그들에게 선호하는 콘텐츠와 제품을 제공할수록 서비스 제공자들은 창조주처럼 여겨지고, 혁신의 아이콘으로 숭배받는다. 페이스북은 우리 삶을 정말 풍요롭게 만들었을까. 배달의 민족, 우버, 에어비앤비, 구글, 쿠팡, 카카오, 네이버. 이제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들은 사용자에게 '편리함'이라는 키워드를 달고 무엇이든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거대한 영향력만큼의 책임감 또한 충분히 강조되고 있을까?
이들 디지털 프로덕트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거대하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의 삶을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형태로 바꾸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브루스 스탈링의 말처럼,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전파하는데 온 역량을 쏟지만 놀라우리만치 그것을 없애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은 고려하지않는다. 수많은 디자인은 단지 사용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충분히 많이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유입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작된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핵보다 거대한 규모의 변화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어떤 변화들은 핵폭탄 개발을 주도했던 맨해튼 프로젝트보다 더 큰 파급력을 미친다. 새로운 시대의 맨해튼 계획을 후회할 줄 아는 아인슈타인들은 몇이나 있을까. <스파이더맨>의 제작자, 스탠리의 말처럼 위대한 일에는 위대한 책임이 따른다. 훌륭하고 멋진 서비스를 만들고자 한다면, 혹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만큼의 큰 책임이 따른 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