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에서 맺은 결실
제주에 내려와 참 많은 것들을 경험해 봤다.
처음엔 그저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게 목표였는데,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됐다.
게스트하우스를 열었고,
타로 상담도 시작했고,
향에 관심이 생겨 조향사가 되었고,
사진도 찍고, 보정도 하고,
하루하루 쌓이는 일과가 어느새 내 일이 됐다.
카페도 해봤고, 독서실도 운영해 봤다.
처음엔 생각한 대로 다 잘될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직원을 구하는 일부터, 운영의 무게까지 내가 상상하던 ‘사장’의 모습과는 달랐다.
결국 카페와 독서실 둘 다 문을 닫았지만,
그때 배운 것들은 아직도 쓰이고 있다.
돈을 다루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
그리고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 같은 것들.
처음엔 그냥 제주가 좋아서 내려왔는데,
돌이켜보면 이곳에서 나는 이해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그동안 실패도 있었고,
잘 해낸 일들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안다.
예전 같았으면 망했다고만 생각했을 일들도 지금은 “그때 해봤으니까, 지금 이렇게 할 수 있지”라고 말할 수 있다.
제주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제주에 와서야 비로소 나답게 살 수 있었던 건 분명하다.
제주살이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오래 머문 공간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처음엔 나도 다른 여행자들처럼 스쳐 지나가는 손님 중 한 명이었고, 조금 더 머물다 보니 자연스레 스태프가 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새웠다.
낯선 이들과 짧은 인연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고,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은 어느새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
그 시간이 점점 쌓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사람’이 좋았고, ‘함께’가 좋았다는 걸.
그래서 결심했다.
나만의 색이 담긴,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그렇게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천천히 공간을 채워나갔고,
내가 듣고 싶은 음악과 걸어두고 싶은 사진들을 하나씩 더했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하루하루가 설렜다.
허름하지만 이 작은 공간이 누군가의 여행에 좋은 기억이 되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보니 제주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마음만 안고 오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 대부분은 지친 마음을 끌고 와, 조용히 머물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회사 생활이 지쳐 퇴사하고,
누군가는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쳐서,
또 누군가는 오랜 연인과 헤어져서 그렇게 제주에 왔다.
나는 그저 따뜻한 밥 한 끼와 말 걸지 않아도 괜찮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원할 때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보드게임을 하며 웃고, 함께 밤 산책을 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니 어느샌가 이 공간은 지친 이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표 같은 공간이 되었다.
사람을 맞이한다는 건 단순히 문을 열어두는 일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안심하고 머물 수 있도록 마음을 먼저 열어주는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열었고 그 마음은 천천히 퍼져나갔다.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점점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여긴 고향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해요."
"어쩐지 편안해서 계속 머물고 싶어요."
그런 말들이 내 마음속에 작은 울림이 되어 퍼졌다.
이 공간은 누군가가 잠시 머물다가는 여행지이자,
잠시 잊고 있었던 온전한 ‘나’를 되찾는 공간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로운 여행자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오늘 하루가, 누군가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