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과 업무 효율성의 관계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 공간, 시간 등을 모두 배려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상대방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회사업무를 하다보면 갑의 위치에 있을 때도 있고, 을의 위치에 있을 때도 있다. (갑-을 관계를 나누는 것부터 잘못된 것을 알지만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상하관계가 형성될 때가 많다.) 갑의 위치에 있을 때는 상대방에게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을의 위치에 있을 때는 나의 시간이 존중받길 원했다. 그게 일을 훨씬 더 수월하게 풀어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예전에 근무한 회사에서 갑작스레 전시회 부스 참가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정부지원사업을 소개하고 우수 지원 사례 제품을 홍보하라는 지시를 전시회 개막 2주 전에 통보를 받았다. 워낙 시간이 촉박했던 터라 기본 부스(철제 기둥에 현수막만 걸려있는 부스)로 진행하려 했지만, 너무 허접해 보인다는 상사의 의견으로 철회하고 디자인 부스로 결정했다. 디자인 부스를 제작하려면 우선 디자인 업체를 선정해야 하고 디자인 제작부터 컨펌까지 최소 한 달의 기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또한 우수 지원 사례로 소개하기 위한 회사들이 그 때 일정에 참석을 할 수 있는 지도 전부 체크해야 했다. 회사에서도 그 날 중요한 고객과 상담이 잡혀 있을 수도 있고, 업무와 관련하여 이미 세워놓은 일정이 있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리더의 무책임한 한마디가 모두의 시간을 빼앗아 업무에도 지장을 주게 된 것이다. 다행히 이런 상황을 가엽게 여긴 친한 직원이 일을 깔끔하게 잘하는 디자인 업체를 소개시켜 주었고, 감사하게도 우수 사례 회사의 직원들도 일정을 기꺼이 내주어 별 문제 없이 전시회 부스 참가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자기 시간에 맞춰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무리하게 진행하는 것은 업무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도 뛰어난 성과를 가져올 수 없다.
아주 긴급한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빠른 시일 내에 해야 한다면 무조건 며칠 안으로 해서 달라 라는 표현보다는 며칠까지 이러한 목적으로 필요한데 현재 상황이 이러해서 부득이하게 요청드리니 양해 좀 부탁한다. 라고 하는 것이 상호간의 예절을 지키는 행동이다. 그래야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시간과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지시를 보다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일에 더욱 의욕을 발휘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회사 내 직원들이 우선순위에 맞춰 일을 진행하고 싶어도 상사가 일을 불쑥불쑥 내민다면 중요도에 따라 업무를 처리할 수 없다. 상사로서 직원들에게 일을 지시할 때는 그 일이 지금 정말 처리해야만 하는지 냉철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 자신의 상황을 기준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지 않는가? 상대방에게도 그만한 상황이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한 번 해보면 지금 내가 갑질을 하고 있는 지 아닌 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