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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초 Feb 26. 2020

열심히 일할수록 불안한 이유

취업해서 돈만 벌면 모든 고민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음식점에서 메뉴판의 가격을 신경 쓰지 않고 맛있는 것을 마음껏 주문하고 옷이나 신발도 내가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는 걱정 없는 삶을 살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취업 후 고민은 더욱 늘어났다. 직장을 다니고 있기는 한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도태되고 있는 건 아닌 지 계속 불안함과 초조함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이 맞는 건 지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 결혼은커녕 연애는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내 명의로 된 집을 마련하는 것이 판타지라는 깨달음은 일할 의욕을 계속 떨어지게 만든다.



노동에 대한 불신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조승연 작가님이 추천한 다니엘 미코비치의 능력위주 사회의 함정(meritocracy trap) 이란 책에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습 신분 사회에서 능력위주 사회로 넘어오면서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생긴다. 1960-1970년대에만 해도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하버드나 예일은 능력보다 태어난 집안에 따라 입학 여부를 결정했다. 그래서 집안에 재력이 있는 자녀들이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닌 네트워킹을 목적으로 대학교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졸업 후 집안의 가업을 물려받아 사업을 하거나 해외여행을 다니며 여유롭게 사는 게 당시 엘리트 계층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엘리트들은 돈은 많지만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많은 보조자들이 필요했다. 엘리트들은 더욱 많은 보조자들을 중산층 계층에서 고용했고 이러한 엘리트의 게으름은 미국 중산층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80-1990년대 이후부터는 상황이 점차 달라졌다. 냉전의 종식과 민주주의의 발전, 개인의 경제적인 이익 추구를 자유롭게 방임하고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았다. 이에 따라 대학에서도 보다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더 이상 집안의 재력이 아닌 능력 위주로 대학 입학 여부를 결정했다. 이때부터 대학은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수많은 지성인들을 배출했다. 


지성인들은 사회로 나가 각자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하며 엘리트가 되었다. 그러나 1980-1990년대 엘리트는 1960-1970년대와는 차이점이 있었다. 1960-70년대는 게으른 엘리트들이 중산층에게 일을 뿌리는 구조로 엘리트 1명의 일을 하기 위해서 중산층 10명이 보조했다. 그러나 1980-1990년대부터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엘리트 1명이 중산층 10명의 일을 다 해버렸다. 부지런한 엘리트들은 예전처럼 집안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통해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노동가치를 통해 부를 창출했다. 


높은 지적 수준의 고학력 엘리트가 노동생산력을 독점했기 때문에 높은 임금을 받는 엘리트는 점점 증가하고 이와 달리 중산층의 임금은 점점 낮아졌다. 엘리트들의 새로운 기술이 수천 명의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임금을 독점하게 된다


엘리트들이 부지런해지자 그간 엘리트들을 보조하던 10명의 중산층을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중산층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엘리트와의 빈부격차는 나날이 커져만 갔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능력위주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모일수록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고 이에 따라 뉴욕, 실리콘밸리 같은 지역에 엘리트들이 모여 살면서 엘리트 동네가 형성되었다. 엘리트 동네의 부동산 가격과 물가는 폭등하면서 그 지역에 더 이상 중산층은 살 수 없게 되었고 엘리트와 중산층의 삶은 완전히 다르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장막은 능력위주의 사회에서 또 다른 신분사회를 만들었다. 엘리트 층과 중산층의 격차가 커질수록 중산층은 일을 하면서도 계속 불안감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엘리트 승자의 독식 문화, 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그것도 아니었다.


예전 게으른 엘리트는 집에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흥청망청 놀면서 충분히 인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지적 능력을 갖춘 부지런한 엘리트들이 대거 등장했다. 더이상 게으른 엘리트들도 예전처럼 일하는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자본을 재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굉장한 고강도의 트레이닝으로 지식을 재산으로 물려준다. 이는 중산층도 마찬가지로 가진 것은 없지만 자식들에게는 지식을 물려주기 위해 무리해서 비싼 교육비를 지불하며 학원 또는 대학을 보냈다.


자식들은 물려받은 재산이 본인이기 때문에 본인을 착취해야 했다. 더 유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엘리트들도 행복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또한 직업 선택 폭이 좁아지면서 일의 만족도도 훨씬 떨어졌다. 예전에는 돈을 엄청 많이 버는 직장인들이 없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무조건 사업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요즘은 사업가 부럽지 않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들이 훨씬 많이 생겨났다. 그 결과 직업에 귀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업에 따른 사회적 지위가 생겼다. 우수한 교육을 마친 학생들은 본인의 적성과 의지에 상관없이 판사, 검사, 금융인, 의사 등 돈과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직업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본인들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 소위 잘 나가는 직업들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엘리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성과 다른 일을 하며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엘리트들이 생겨났다.


다니엘 미코비치는 굉장히 불행한 엘리트와 가난한 중산층을 만든 것이 능력위주 사회의 함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엘리트와 중산층은 각기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두 계층 모두 일을 더 열심히 할수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은 고용불안으로 인해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기업 입장에서 유능한 엘리트를 유치하기 위해 계속 채용해야 하고 누군가는 해고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취업을 하고 나서도 누구든 고용에 대한 불안은 절대 지울 수가 없다. 이젠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은 공무원이 아닌 이상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에는 입사하면 이직이나 퇴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1980-1990년대 경제 호황에 따른 특수적인 상황도 있었지만 기업들도 정년을 보장했다. 그러나 요즘은 글로벌 경제 저성장으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이 성과주의를 지향하며 직장인들은 요령 없이 소처럼 일만 하다간 언젠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만 했다. 결국 직장이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만연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 속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불행하다는 것을 깨닫고 소확행(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나 욜로(Yolo)와 같은 라이프 스타일이 등장했다. 직장 선택의 기준도 예전과 매우 달라졌다. 연봉이나 업무환경보다는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거나 배울 것이 많은 일을 찾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직장이 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장을 이용해 나의 가치를 올려 경쟁력을 갖고 치열함에서 벗어나 1960-1970년대의 게으른 엘리트가 그러했듯 일과 휴식의 균형 있는 삶을 통해 행복을 찾고자 한다.



노동의 진화


누구든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한다. 불행하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예전처럼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많이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벌 수 있는 일들이 최근에는 각광받고 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때 강요받는 일을
 예전부터 참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다면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을 빨리 찾아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직업이 유튜버다.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는 분야 혹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모든 것을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열심히 동영상을 만들어 업로드를 했고 수익을 창출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수익 창출 방법이 생겨날 것이다. 취업을 해서 어떤 회사의 소속되어 월급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투 잡 혹은 프리랜서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기존 노동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용 불안정성, 보상체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파이어족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파이어족은 경제적인 자유(Financial Independence)’와 ‘조기 은퇴(Retire Early)’의 앞 글자를 딴 합성어로 연봉의 절반 이상을 저축하거나 투잡 혹은 월급 외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30~40대에 은퇴하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다. 즉, 빨리 돈을 모아 빨리 은퇴하려는 사람들을 뜻한다. 욜로(Yolo)로 와는 상반된 개념이지만 결국 빠르게 경제적 자유를 얻어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놀면서 현재 노동 방식이 가지는 일할수록 불안해지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가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강남에 빌딩을 사는 최근 상황에 대해 어떠한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것에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노동 방식이 진화하는 과도기적 단계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지금은 생각하지 못한 수만 가지의 다양한 노동 방식이 생겨날 것이다. 기존 인간이 하던 반복적인 생산활동 행위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다. 대신 혁신과 창의적인 일에 대한 수요가 훨씬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단순한 노동 x 시간이라는 공식으로 생산성을 산출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노동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창의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과 새로운 영감을 계속 얻어야 한다. 즉, 일만 하는 사람은 절대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일 때문에 놀지 못하는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하여 더 많이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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