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서러움

by 김규형

글쓴이의 이력이 남다르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도 의사의 길을 걷지 않았다. 누구나 의대를 가면 전문의가 되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수련의 시기를 버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고, 공부를 좋아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연구를 하면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 자신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고 사회역학자가 되었다.



사회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일반인들이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찾는 학문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시민들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사회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 동안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을 아프고 힘들게 만들었던 사건 사고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글쓴이가 의사의 풍족한 삶을 뒤로하고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학자의 길이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은 정말로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상처가 깊고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성소수자의 아픔, 세월호 생존자와 가족의 아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아픔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슬픈 단면을 파해쳤다.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을 한다. 아프면 휴식을 갖거나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휴식이란 계약 종료로 이어질 수 있다.



2015년도 일이다. 나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가방 끈이 짧은 나에게 대기업 근무는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중소기업을 전전하면서 대기업 클라이언트들을 상대해서 그런 것 같다. 계약직이지만 사원증이라도 걸어보고 싶어 결국 대기업에 입사했다. 표면적으로는 정규직과 다르지 않았다. 대행사 출신이기에 사내 행사 기획 업무를 맡았다. 나에게 절호의 찬스였다. 오랜 경력이 있었기에 큰 문제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1년만 비정규적으로 근무하면 정규직 대리가 된다는 입사 당시 면접관의 구두 약속도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모든 게 잘 될 거란 믿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꼭 계약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정규직 전환을 꿈꾸고 있었기에 하라는 일은 묵묵히 했다. 그러던 중 옆 팀에서 결원이 생겨 그 팀원의 업무가 나에게 왔고, 나는 군소리 없이 해내야 했다. 마감, 결산 같은 업무여서 정말 어려웠다. 마감기간 중에는 새벽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숫자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유소년 축구클럽 운영까지 했다. 가끔 임원 운전 기사도 했다. 밑도 끝도 없이 사업지원 업무까지 하면서 포터 운전 실력도 늘었다. 1년 동안 팀을 4번 옮기면서 업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1년이 되던 때 회사에서 1년 계약 연장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1년 전 정규직을 약속했던 면접관은 입을 닫았고, 나는 문을 박차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1년 동안 정말 몸도 마음도 아팠다. 매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특히 약간의 분노 조절 장애 같은 게 생겼다. 당시에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툭하면 화가 나고 불만으로 가득했다. 사람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몸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계약직이라는 환경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몸도 마음도 아팠지만 계약직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정규직 전환이 눈앞에 보이는데 새로 맡겨진 업무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내 권리를 찾고 부당함을 이겨낼 수 없다. 아픔은 계약직이라는 옷을 벗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났다. IMF의 암흑시대는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악마 같은 제도를 탄생시켰다. 정리해고제를 통해 대량 실업 사태를 만들었고, 2년마다 계약 해지를 하고 새로 채용하면서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을 확대 시켰다. 노동현장에서 유연화가 진행되어 있고 정책적으로도 이를 되돌리기보다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되는 한에서는, 고용의 불안정이 삶의 불안정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하여 ‘유연안정성’ 모델이 떠오르게 되는데,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인정하되 실직시에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또 빠른 시간 내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태는 이에 관해서도 부정적이다.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정규직으로 그때 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일하고 있다. 그때와 다르게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을 반복하고 있고 동호회 활동도 하면서 나름 내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다. 자료를 찾아 보면 비정규직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고여 있던 일자리와 경제를 돌아가게 만드는 제도다. 비정규직이 꼭 필요한 곳도 있다. 다만 사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비정규직이 많은 곳일수록 노동자의 삶은 불안해 질 수 밖에 없다. 유연화로 피해를 입는 층에 대한 노동복지 제도가 제시되고 수립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는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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