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 가는 말들

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해

by 교중


결혼은 내게 새로운 무대를 열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한 벽을 세웠다.
그 벽을 만든 건 그의 말들이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말보다 더 날카로운 흉기는 없었다.


“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해.”


그가 가장 자주 내뱉던 말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웃어넘겼다.

장난처럼 들렸다.


그런데 같은 말이 반복될수록, 나는 그것이 장난이 아니라 선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말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정의하려는 규정이었고, 동시에 내 존재를 지워버리는 부정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반박했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나 혼자서도 살아왔어.”


그러나 그는 비웃었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네가 뭘 알아?”


그 물음은 늘 날카로웠고,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반박하면 더 큰 분노가 돌아왔고, 침묵하면 ‘역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나의 목소리는 지워졌다.





그 말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더 위축되었다.

내가 선택한 것에는 늘 ‘틀렸다’는 딱지가 붙었다.

그러자 나 자신도 나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하면 또 잘못되겠지.”

라는 불안이 앞서면서, 점점 더 모든 걸 그에게 맡기게 되었다.


결국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따라가는 사람,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변해 있었다.





나는 점점 말을 삼켰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꺼내지 않았다.


꺼내봤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는 말이 돌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침묵은 나를 지켜주는 방패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오히려 더 단단한 족쇄가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결혼 전, 나는 능력 있고, 어디서든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해외에서도 공부했고,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 속에서 나는 그 모든 걸 잃어버렸다.

거울 속에서 고개를 숙인 여자를 볼 때마다, 그 여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해.”


그 말은 일상처럼 내 곁을 맴돌았다.

다툼이 있을 때는 물론이고, 아무 일도 없는데 불쑥 튀어나왔다.


내가 무언가 새로운 걸 해보겠다고 말하면, 그는 어김없이 비아냥거렸다.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마.”

그 말이 반복되자,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꿈꾸던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하고 싶었던 일들이 희미해졌다.

결국 나는 하루를 버텨내는 데만 집중했다.

내 삶의 목표는 살아내는 것이었다.



가끔은 내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야, 나도 할 수 있어. 나도 혼자 설 수 있어.”


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그의 웃음을 떠올리는 순간, 내 용기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결국 나는 다시 침묵했다.


그때의 나는 그림자 같았다.

몸은 존재했지만, 빛을 잃은 그림자.

누군가 겉으로만 보면 ‘잘 지내는 아내’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미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말은 칼보다 더 날카로웠다.
상처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매일 피 흘리며 살고 있었다.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고, 오히려 깊게 파였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의 말에 갇혔다.
“그래,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스스로 그렇게 믿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그가 만든 틀 속에 들어가 있었다.





지금은 안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혼자서도 살아냈고, 버텨냈다.


오히려 혼자가 된 지금, 나는 더 많은 걸 해내고 있다.


그의 말은 나를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기록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 삶을 글로 남긴다.

언젠가 이 기록이 나를 구해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같은 상처를 겪는 누군가에게 닿아,

“넌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라는 목소리가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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