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일 줄 알았다
“새로운 시작일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나는 그때를 떠올리면 늘 이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왜죠?’라는 물음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가 내 방어막이 되어줄 거라 믿었거든요. 저를 지켜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그의 말들과 행동이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있었죠. 무엇보다 그는 돈에 미쳐 있었어요.”
나는 지금도 믿는다. ‘이상하다’라는 감각이 반복된다면 반드시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그와 지낼 때, 연애할 때조차 나는 수없이 ‘이상하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말, 행동, 말투…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있었다.
내 마음속 문제만으로도 버거웠기에, 상대의 이상한 행동을 끝까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서 나 대신 공격을 막아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혼은 선택이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내 선택에도 책임이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 많이 나 자신을 자책했고, 후회했고, 미워했다.
'1000만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의 부모가 요구한 ‘천만 원’이었다.
그의 부모는 결혼하면서 현금으로 그 돈을 달라고 했다.
나는 몰랐다. 결혼에 현금이 필요하다는 걸. 시어머니는 여러 번 강조했다.
“옛 어른들은 다 그렇게 했어. 며느리가 돈을 준비하는 게 맞아.”
그 말은 반복되었고, 결국 내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상견례 당시, 우리 집이 조금 더 힘내서 돕겠다고 말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돕겠다고 했지,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저쪽은 마치 잘 물었다는 듯, 현금과 명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혼식장 비용, 스드메, 혼수… 대부분의 비용은 아버지가 부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족 꾸밈비’라는 이름으로 현금을 요구했다.
“꾸밈비? 그럼 우리 가족은 꾸미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말로 꺼내진 못했다.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밤마다 아들이 보고 싶다며 울며 전화를 걸어왔다.
보너스를 받으면 그는 나 몰래 어머니에게 먼저 가져다주었다.
나는 물었다.
“왜 말하지 않았어? 우리 가정의 돈인데, 상의하는 게 맞잖아.”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엄마가 힘들다는데, 그 정도는 해드릴 수 있지.”
그 말은 너무도 당연한 듯 했지만, 그 속에는 나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나는 그의 아내였지만, 그의 삶의 중심에는 여전히 ‘엄마’가 있었다.
“효자인데… 나쁜 의미의 효자예요. 저한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효자.”
그때의 나를 설명한다면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결혼했어요? 멈출 수 있었잖아요.”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르겠어요. 파혼이 두려웠어요.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을까 봐. 그리고 그가 변할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 날카로워졌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공황장애 증상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 그 자체. 그의 말과 행동, 존재 전부가 나를 짓눌렀다.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결혼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었다.
나의 무너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