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손을 벌려야 했던 날들

경제적인 압박감

by 교중


결혼 생활을 돌이켜보면, 가장 무겁게 남은 건 돈의 문제였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돈이 그렇게 큰 벽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과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돈의 무게에 눌려 있었다.



생활비가 없으면 당장 오늘을 버티기 힘든데, 그는 마치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넘겼다.

때로는 최소한의 돈만 건네며 말했다.
“절약하면 되잖아.”


그의 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계산기를 붙들고 장을 볼 때마다 무게를 달았다.

고기 한 팩을 들었다 내려놓고, 과일을 사고 싶어도 끝내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결국,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이번 달 생활비가 조금 모자라서….”


말을 꺼내는 순간 목이 메었다.

아버지는 별다른 질문도 없이 “알았다, 송아”라고만 했다.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너무나 미안했다.




생활비뿐만 아니라 집세와 이사비도 늘 문제였다.
결혼 후 첫 집은 월세집이었는데, 보증금을 맞추는 데에도 대부분 아버지의 돈이 들어갔다.

나는 그 사실을 알기에 늘 마음이 무거웠다.


“집에서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지. 네 부모님이 능력이 있으시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당연시했다.

마치 내가 부모의 돈을 쓴 게 아니라, 그의 권리인 것처럼.

그 말은 내 가슴을 후벼팠다.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그럼 당신은? 당신은 무엇을 책임졌나?”

하지만 그 물음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도움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생활비, 집세, 이사비…

어느 순간 나는 ‘내가 버티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버티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송아, 힘들면 언제든 말해라. 아빠가 도와줄게.”
그 말은 따뜻했지만, 동시에 내 가슴에 큰 돌처럼 내려앉았다.

나는 그때마다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벌어야 하는 돈을 왜 아버지가….’

자책은 점점 더 커졌다.



그런데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네 아버지가 도와주시잖아. 넌 편하겠다.”


그 말은 가시처럼 박혔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없었다.

마치 그 도움을 자기 몫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분노보다도 허탈함을 느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미안하지도 않아? 우리가 아빠한테 너무 의지하는 거 같지 않아?”
그러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네 아버지가 능력이 되시니까 도와주시는 거지. 그게 뭐가 문제야?”


그 순간, 나는 우리가 같은 배에 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는 허우적거리며 물을 퍼내고 있는데, 그는 그저 배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돈은 빚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빚으로 남았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를 탓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탓했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벌었더라면….”
그 자책은 매일 밤 나를 괴롭혔다.

아버지가 건네준 돈 이체내역을 열 때마다, 나는 감사와 죄책감을 동시에 삼켰다.




그렇게 쌓여가는 압박 속에서 결국 나는 무너졌다.
공황장애 증상이 다시 찾아왔고, 나는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조용히 말했다.


“지금 가장 큰 스트레스는 돈이 아니라, 돈을 둘러싼 관계 같네요.”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렇다.

돈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돈을 대하는 그의 태도, 그리고 그 태도를 대신 감당해야 했던 내 위치가 문제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매일 빚을 지는 기분으로 살았다.

실제 빚이 아니어도, 마음은 늘 빚에 쫓기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내겐 빚처럼 느껴졌고,

남편의 무책임은 나를 더 깊은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넌 편하겠다. 네 아버지가 다 도와주시니까.”



그 말은 내 인생에서 가장 모욕적인 말 중 하나였다.

나는 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힘들었다.

아버지의 등에 업혀 있으면서도, 내 발로 걷지 못하는 죄책감에 매일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갉아먹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그때 아버지가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주저앉아 버렸을 거라는 것을.


아버지의 도움은 빚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 사랑을 왜곡시킨 건, 돈을 당연하게 여긴 남편의 태도였다.


나는 앞으로 그날들을 기록한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버텼던 날들, 그 도움을 죄처럼 안고 살아야 했던 내 마음.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 진실.

아버지는 내게 짐을 얹어준 게 아니라, 살아낼 힘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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