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만 남은 이름
법정에 서는 일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경험이었다.
처음 발걸음을 옮기던 날, 심장이 뛰는 소리가 내 귀에만 크게 울렸다.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 무겁게 닫히는 법정의 문, 차갑게 놓여 있는 나무 벤치.
그곳은 내 삶과는 아무 상관없는 공간 같았다.
그런데 그곳에 내가 서 있었다.
나는 사람으로 불리지 않았다.
판사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렸지만,
그 순간 그것은 ‘한 인간의 이름’이 아니라
‘사건의 피고인’이라는 딱지로 들렸다.
판결문을 받아들었을 때, 나는 숨을 고를 수 없었다.
하얀 종이 위에 검은 글씨가 줄지어 있었다.
거기에는 내 삶의 단편들이 차갑게 적혀 있었다.
‘피고 ○○는…’
‘혼인 파탄의 책임은…’
‘위자료 금 ○○원을 지급한다.’
단어 하나하나는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 무표정한 글씨들이 내 지난 몇 년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사건의 조각으로만 존재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 삶이 이렇게 요약될 수 있는 걸까?
내가 견뎌온 시간들이, 고통과 눈물이, 이렇게 몇 줄의 문장으로 끝날 수 있는 걸까?”
판결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기록이었다.
무엇보다도 괴로웠던 건, 판결문이 다루고 있는 증거 중 일부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록된 대화, 몰래 담긴 목소리.
그것이 마치 진실의 전부인 듯 종이 위에 남아 있었다.
“피고는 …와의 대화에서 …라 발언하였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손이 떨렸다.
내 사적인 순간, 내 감정의 파편이 낯선 활자 속에서 뒤틀려 있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그건 왜곡된 조각일 뿐이에요.”
하지만 판결문은 내 외침을 담지 않았다.
법정의 언어는 개인의 맥락을 담아내지 못했다.
오직 증거와 사실, 그리고 법리만이 남아 있었다.
재판장은 차가웠다.
판사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변호사의 발언은 건조했다.
나는 그 속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저는 매일 경제적 압박 속에서 살았습니다. 정서적 학대와 협박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모든 게 혼인을 파탄으로 몰았습니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법정의 언어로 바뀌어야 했다.
감정은 지워지고, 문장은 간결해야 했다.
“피고는 생활비 지원 부족, 반복적 폭언, 협박을 이유로 혼인 파탄 책임이 원고에게 있음을 주장합니다.”
내 말은 사실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견뎌온 날들의 무게는 담기지 않았다.
법정은 눈물과 떨림을 기록하지 않았다.
판결문 속에서 내 이름은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내가 아는 나와 달랐다.
그곳의 ‘김송이’는 피해자도, 생존자도 아니었다.
그저 판결문 속 한 줄로 요약된 사람.
나는 그때 깨달았다.
법은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
법은 단지 기록할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기록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기록은 내 상처를 모두 담아주지 못하지만,
최소한 지워지지 않게는 남겨주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판결문은 잔인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시작이었다.
차갑고 무표정한 문장 속에서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써 내려가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법정에서 지워진 내 목소리를, 글 속에서 다시 되찾아야겠다고.
“저는 누구에게도 조롱받을 존재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버텨야만 했고, 살아내야 했던 사람일 뿐입니다.”
그 문장을 마음속에 새기며, 나는 판결문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