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싸워야만 했던 이유

항소심을 결정 했던 순간

by 교중



“결국 항소심을 결정했어요. 전 억울했어요. 그리고 너무 큰 충격이었죠.
살면서 저는 법은 공정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판결을 내리는 도구라 생각했어요.”


“법이라는 이름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그리고 거짓도 증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저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반드시 항소해야 했어요.”


선생님에게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쏟아냈다.
내가 왜 항소를 해야만 했는지, 그 이유들을.





1심 판결은 내게 너무 잔인했다.


판결문은 오로지 나의 잘못을 전제로 쓰여 있었다.

내가 버텨온 날들은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다.


생활비를 받지 못해 아버지께 손을 벌리던 순간,

모욕과 협박 속에서 잠 못 이루던 밤,

사고로 몸이 다쳤을 때조차 혼자 울어야 했던 기억.


그리고 그사람으로 인해 정신적인 상처로

발버둥 치며 다녔던 병원의 기록들까지.


그 모든 건 삭제되고, 내 사적인 대화 몇 줄이 잘려 나와 증거처럼 제출되었다.

그 기록은 왜곡된 조각에 불과했지만, 판결문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나는 억울했다.

그러나 억울함은 동시에 무력함을 불러왔다.


“내가 말해도 소용이 없을까? 법정은 끝내 나를 외면하는 걸까?”


판사의 담담한 목소리와 차가운 문장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더 괴로웠던 건 판결문에 나의 목소리가 전혀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치료받던 기록,

나의 입장,

나의 증거.



법원은 그 모든 걸 외면했다.

원고의 주장만 받아들였고, 그 주장조차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처럼 기록됐다.


나는 하루 종일 울었고, 세상을 탓했고, 죽음을 생각했다.

믿었던 ‘법’조차 거짓의 편에 서 있었다.

가족도, 주변도 “포기하라, 빨리 끝내라”는 말뿐이었다.


그런데 죽음을 떠올리던 순간,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끝내면, 그는 웃겠구나.’


내가 지는 꼴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말렸지만, 나는 항소심을 택했다.
내 일상의 대화가 왜곡돼 파탄의 원인으로 둔갑한 그 주장을 뒤집어야 했다.



나는 아니었다.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선 오로지 다시 싸우는 방법뿐이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문을 들고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항소할게요.”





항소는 단순한 불복 절차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존재를 되찾는 길이었다.
삭제된 내 목소리를, 이번에는 반드시 남겨야 했다.


물론 항소는 또 다른 무게였다.

새로운 증거를 준비해야 했고, 잊고 싶던 기억을 다시 꺼내야 했다.

재판정에 서면 또다시 내 이름이 차갑게 불리고, 내 삶이 활자로 요약될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알면서도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억울함이 나를 붙잡았고, 동시에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돌아보면, 항소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1심은 내 삶을 잘못 기록했지만, 그 기록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항소심은 두렵고 무거웠지만, 동시에 내 존재를 증명할 마지막 기회였다.





'그래서 항소를 하셨군요. 억울해서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기 위해서.'


상담 선생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이야기가 영원히 남을 텐데… 잘못된 말이 아니라, 올바른 기록으로 남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