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짐과 다짐 사이에서

항소심 준비의 시간

by 교중




“항소를 준비하면서 어떤 마음이었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단어를 고르려 애썼지만, 가슴 한가운데 얹힌 돌덩이가 먼저 떠올랐다.




항소를 결심한 직후,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그래, 이제 다시 싸우자.”

그렇게 다짐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욱 깊은 어둠 같았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1심 판결문이 떠올랐다.


차갑고 무표정한 글씨가 머릿속에서 번져 나를 다시 죄어왔다.

억울함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동시에 ‘이번에도 외면당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더 크게 몰려왔다.


주변에서는 “그냥 포기해라”라는 말만 들려왔다.


“돈도 많이 들잖아.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이미 판결이 났는데, 뭐가 달라지겠어.”


그들의 말은 현실적이었지만, 내겐 칼처럼 날카로웠다.

마치 내가 괜한 고집으로 더 큰 고통을 자초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항소를 준비한다는 건 단순히 서류를 모으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를 다시 열어젖히는 일이었다.


증거를 정리하다 보면, 보고 싶지 않았던 사진을 다시 봐야 했다.

녹음 파일을 다시 들으며, 내가 모욕당하고 협박받던 목소리를 또다시 확인해야 했다.

그 순간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걸 또 듣고, 또 꺼내야 하나….”


그 생각이 눈물을 불렀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 줄 알았는데, 항소 준비 과정은 그 상처를 다시 찢는 일이었다.


자료를 준비하는 밤,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만약 이번에도 진다면? 이번에도 내 이야기가 무시된다면?”


불안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애초에 내가 결혼을 잘못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아버지께 손을 벌리지 않았을 텐데….”


항소심 준비 과정은 단순히 법적 절차가 아니라, 내 삶을 끝없이 되짚는 고통의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포기한다면 내 이야기는 영원히 왜곡된 채 기록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침묵하지 않겠다. 내 고통과 상처를 끝까지 말하겠다. 내 자신을 되찾을거다.”


준비의 시간은 무겁고 버거웠지만,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힘을 얻었다.


증거 하나를 정리할 때마다,

종이 한 장을 묶을 때마다,

나는 내 존재를 붙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돌아보면, 항소심을 준비하는 시간 자체가 이미 싸움이었다.
자료를 모으고, 기억을 꺼내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짐하는 매 순간이 나의 투쟁이었다.


항소심 법정에 서기 전부터 나는 이미 싸우고 있었다.

그 싸움은 상대방과의 법적 다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내적 싸움이었다.






“준비하는 시간조차 제겐 제자신에게도 당당하고 싶은 증명이었어요.”


나는 결국 그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그 과정이 이미 송이 씨의 존재를 지켜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