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멱살을 잡고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은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체면이 있으니 화를 돋우는 사람 앞에서 화를 내지는 못하고 그저 마음속으로만 별별 욕을 해대며 두 손을 불끈 쥐고 몸을 부르르 떤다.
화는 우는 아이와 같으므로 잘 달래야 한다는 세계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의 글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화가 날 때 화 나는 마음을 어린아이 대하듯 잘 달래곤 했었다.
하지만 가끔씩 화를 조절하기 힘들 때가 있다. 내가 만일 수도승의 길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화를 잘 다스릴 수 있었을까? 수도승이 되어 보지 않았으니 그 결과를 어찌 알 수 있을까마는 아마도 화를 다스리는 것은 내 일생 중 최대의 과제이지 않았을까 싶다.
성냄은 기쁨의 감정과 상반되는 감정이나 마음속에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을 가진 사람으로서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화나는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누구에게든 쏟아내 버리고 나면 그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저 사람은 늘 버럭대는 사람이야”라는 낙인이 찍혀버려 관계의 어그러짐으로 인한 외로움은 화를 내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떨어지고 마니 말이다. 그러니 화를 잘 다스리는 묘책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 같다.
대체 누가 피워대는 거야?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기 시작하는 초여름의 일이다. 베란다 화분에 기르는 채소에 물을 주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담배 연기가 하얗게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그날따라 내가 마치 담배를 피워대는 것처럼 우리 집 유리창 너머로 뿌연 안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역겨운 냄새가 코속으로 물밀듯 들어왔다. 바로 콜록콜록 기침이 나왔다.
‘대체 누가 아침부터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창문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눈에 들어온 건 창문틀에 기대서서 검지와 장지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뻐끔뻐끔 줄담배를 피워대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아랫집에 제대할 아들이 있다더니 이제 막 제대를 한 모양이었다.
젊은이가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을 보니 순간 화가 버럭 치밀어 올라서 ‘이 봐요. 총각! 담배를 거기서 피워대면 우리 집으로 담배 연기가 죄다 올라오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말은 차마 내뱉지 못하고 아래층까지 들리라고 창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창문을 닫는 행동으로 소심하게 화가 났다는 표현은 했지만 어떻게 공동생활하는데 저리도 예의가 없을까 생각하며 관리소에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주민 여러분! 아파트는 함께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아침부터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는 분 때문에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앞 베란다나 뒤 베란다, 복도,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흡연자는 101동 앞 흡연 장소를 이용해 주십시오. 서로 배려하며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합시다.”
방송을 통해서 나오는 직원의 말투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같았다. 이웃집에서 누가 발 빠르게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방송을 듣고 나니 어찌나 마음이 시원하던지. 담배 냄새는 여전히 창문 틈새를 타고 조금씩 들어왔지만 불편하던 마음이 금세 가라앉았다. 내가 직접 나서지 않고도 2층 총각에게 일침을 가했다 생각하니 고소한 마음마저 들었다. 공개적으로 실내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으니 앞으로는 조심하겠거니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드문드문 서너 차례 정도 담배 냄새가 창문을 타고 들어왔고 화장실에서도 가끔 담배 냄새가 났다. 그때마다 누가 신고를 하는지 여지없이 방송에서 집안에선 담배 피우지 말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방송이 나오고 나면 쌀쌀맞은 아랫집 아줌마의 투가리 깨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너 여기서 담배 피워대려면 집 나가버려. 내가 동네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겠다고.!”
차차로 담배 냄새는 더 맡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이듬해 가을이 되자 아랫집은 아저씨가 발령이 났다며 이사를 갔다.
좋은 이웃이 이사 오길 바라는 마음
아래층으로 새로운 이웃이 이사 오기 위해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단단한 것을 썰어대는 전동 톱날의 날카로운 소리가 휭휭 여러 날을 울어대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옆집에 사시는 할아버지께선 도대체 이 공사가 언제 끝나는 것이냐며 아랫집 복도로 내려가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혀를 끌끌 차며 올라오곤 하셨다. 톱날 소리에 이어 망치로 타일을 부수는 소리, 바닥을 들들들 갈아내는 소리, 삐걱삐걱 벽에다 대고 뭘 붙이는 소리, 탕탕 못을 박는 소리 등등 시끄러운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현관 입구와 엘리베이터 입구에는 공사 기간에 대한 안내문도 붙지 않았고 불편하게 해 죄송하다는 문구도 없었다. 통상적으로 리모델링을 하는 집들은 이웃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직접은 하지 못할지언정 안내문이라도 붙여놓던데 아랫집은 그런 그것조차 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다.
3주가 지나고 드디어 공사가 마쳐졌는지 조용해졌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운동 삼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랫집은 현관문을 미처 달지 않은 상태라 집안이 다 보였다. 궁금한 마음에 안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현관부터 온 집안이 하얀색으로 단장되어 있었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하얀색으로 칠해놓으니 학교 운동장처럼 넓어 보였다. 이렇게 온통 하얀색으로 장식을 한 것을 보면 젊은 부부 아니면 세련된 사람이 이사 오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누가 초인종을 누르기에 나가보니 아랫집에서 이사 왔다며 쟁반에 팥 찰떡을 소박하게 담아서 올라왔다. 옆집을 들러 우리 집에 들른 모양이었다. 아랫집으로 이사 온 사람은 젊은 새댁도 아니고 세련되어 보이기보다는 수더분하고 몸집이 넉넉해 보이는 내 또래의 아줌마였다. 아무렴 어떨까? 새로 이사 온 사람과 잘 지내기만 하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내미는 떡 접시를 받아 들었다. 내 손으로 떡 접시가 옮겨지자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 나이를 물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앞으로 자주 만날 사이라고 생각하며 나이를 알려주니 자기가 나보다 두 살 아래이니 앞으로 언니라고 부르겠단다. 나는 언니라고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나 어색한 표정 지으며 그러라고 했다.
웃는 얼굴도 좋다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니!
나는 그렇게 활달한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것 같았다. 빈 접시를 가져다 돌려주며 피부 건조증 때문에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쓰고 있는 비누 서너 개를 예쁘게 포장한 다음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아랫집 아줌마는 처음 볼 때보다 더 활짝 웃는 얼굴이 귀여웠으며 매우 친절하기까지 했다. 친화력 있는 아랫집 아줌마의 제안으로 핸드폰 번호까지 순식간에 교환하고 나니 이전에 살던 무뚝뚝하고 새침하던 아랫집 아줌마 하곤 분위기가 사뭇 달라 보여 신선한 느낌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내 마음을 기분 좋게 했다.
이제는 아랫 집하고 오가며 가까이 지낼 수 있겠다는 야심 찬 기대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이없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오밤중에 갑자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빠바바밤 하고 울려 퍼졌다. 아랫집에서 음악 감상을 하는 모양이었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밤중에 볼륨을 얼마나 크게 틀었길래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아주 가까이에서 열리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나도 클래식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운명 교향곡이 크게 울릴 때마다 남편하고 그저 허허허 웃으며 그냥 들어 넘기곤 했다.
음악 소리만 들려왔으면 좋았으련만 아래층 아저씨는 아침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워댔다. 담배 연기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올 때마다 역겨워서 기분이 나빴다. 내려가서 말을 해야 할까? 관리소에 신고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종이에 글을 써서 대문에다 붙이고 올라왔다.
“담배 연기가 우리 집으로 올라오니 견디기가 힘드네요. 기관지가 좋지 않은 가족이 있으니 조심해 주세요. 아파트 101동 앞에 흡연 장소가 있습니다. 위층입니다.”
아래층 아줌마가 금세 올라왔다. 양손 가득 빨간 홍시를 소쿠리에 가득 담아와서 불쑥 내밀며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굽신거렸다. 아줌마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파리가 앞다리를 비비듯 빌어대니 같은 여자로서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정의 눈길을 보내자 자기 남편이 야생마 같아서 자기 말도 잘 안 듣는다면서 남편 흉을 한 바가지나 보더니 “언니. 미안해요. 제가 살살 달래 볼게요.”라고 말한 뒤 활짝 웃고 돌아갔다.
그 뒤로도 아랫집 아저씨는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그때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아줌마의 웃는 얼굴이 떠올라 이내 화를 삭이곤 했다. 그 남자는 장소를 옮겨가며 담배를 피우는지 앞 베란다에서 담배 냄새가 몰려오기도 하고, 뒤 베란다에서도, 어느 날은 화장실에서도 담배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느 날부터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 이웃집에서 관리소에 신고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랫집 남자는 집안 여기저기서 여전히 담배를 피워댔다. 마음 같아서는 담배 연기가 올라올 때마다 ‘아저씨! 담배 좀 거기서 피우지 마세요!라고 큰소리로 우악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이런 말은 마음속으로 되뇔 뿐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는 아저씨의 행동에 나도 더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임계치에 도달하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에 다다른 나는 당장 내려가서 도대체 왜 방송을 듣고도 꿈적하지 않느냐고 따질까, 아줌마에게 전화해서 한바탕 퍼부어줄까를 생각하며 씩씩거렸다. 그러다 화를 가라앉히며 불러놓은 콩을 갈아 콩국수를 끓였다. 콩국수를 한 사발 가지고 내려가서 아저씨를 만나든 아줌마를 만나든 실내에서 담배 피우는 일에 대해서 담판을 지을 요량이었다.
통통하게 불린 노란 콩을 살짝 삶은 다음 아몬드 반 주먹과 소금을 약간 넣고 믹서에 갈았다. 상아색 콩물이 화나는 내 마음을 대신해서 뽀글뽀글 거품을 내며 걸쭉하게 갈아졌다. 메밀국수는 펄펄 끓는 물에 쫄깃하게 삶아서 찬물에 식혔더니 면발이 탱글탱글해졌다. 물 속에 든 면발을 주물거리며 협상은 탱글탱글한 면발처럼 밀고 당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에서 건진 메밀국수 한 주먹을 커다란 볼에 얌전히 돌려 담은 뒤, 콩물을 자작하게 부은 다음 파릇하니 채 썬 오이를 올려서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아랫집 아줌마가 급하게 문을 열더니 콩국수를 받아 들었다. 그녀는 내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자기 남편 때문에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담배 좀 제발 흡연장에 나가서 피우라는 말을 먼저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 실내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는 방송이 연일 나오던데 안내 방송을 듣고 아저씨가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줌마는 깜짝 놀라며 그게 정말이냐며 자기 집은 관리소에서 나오는 방송이 안 들린다고 했다. 집 고칠 때 도배하는 사람이 스피커를 벽지로 완전히 막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순간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이전에 살던 아랫집 사람들은 안내 방송의 힘으로 억지로라도 이웃에게 피해 주는 일을 그만두었는데, 지금의 아랫집 사람들은 아예 안내 방송조차 듣지 않는다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까?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래층에 안내 방송이 나가지 않는다고 관리소에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건네준 고소하고 시원한 콩국수의 힘으로라도 아랫집 아저씨가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