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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의 미학(사우어크라우트)

by 김경희

여행지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이 있다. 나는 이런 장식품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여행할 때마다 여행하던 곳을 기념할 만한 장식품을 꼭 한 개씩은 집으로 데리고 온다. 장식품을 살 때 나름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장식품의 크기가 너무 크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보관이 어려워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쉔부른 궁전 기념품 가게에서 구입한 엘리자베스 공주 인형은 길이가 14.8센티로 우리 집에 있는 장식품 중에서 키가 두 번째로 크다. 공주 인형은 잘록한 허리를 자랑하며 금박 무늬가 촘촘히 박힌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다. 엘리자베스 공주 인형을 볼 때마다 궁전을 돌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던 그때의 시간과 장소가 떠오른다.


세비아에서 산 집시 인형은 가슴이 훅 파진 빨간 주름 원피스를 입고 있다. 오른손엔 하얀 부채를, 왼손엔 캐스터네츠를 들고 춤추고 있는 인형을 보고 있으면 플라멩코를 추며 리듬감 있게 탭댄스를 하던 집시 여인의 정열적인 몸놀림이 생각난다.


파리의 어느 골목 길에서 산 미니 에펠탑에선 센강의 강물 냄새가 난다. 까만 밤에 센강을 환히 밝히던 에펠탑의 화려함과 환한 대낮에 에펠탑 앞으로 유유히 흐르던 센강 주변의 푸른 잔디밭도 떠오른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낙타 모양의 등잔도 있다. 카파도키아 지역 데린쿠유에 있는 지하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산 것 같다. 이 등잔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유를 찾아 떠나던 요술램프 속의 요정이 떠오르고 금방이라도 램프 속에서 요정이 연기처럼 흘러나올 것 같아 흥미진진한 마음이 생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구입한 산타할아버지 인형은 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 모자 밑으로 덥수룩한 하얀 수염이 풍성하게 달린 산타 인형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 시작하는 12월이 되면 식탁 위에 꺼내놓는다. 그러면 오두막 모양의 크리스마스 마켓 상점들이 눈앞에 쫙 펼쳐지는 것 같고, 마켓을 둘러보며 마셨던 뱅쇼와 프랑스식 수육과 함께 먹었던 슈크르트의 새콤한 맛이 떠올라 침샘을 자극한다.


인터라켄의 워낭, 뉴욕의 자유여신상, 나이아가라 폭포 상징물, 발렌시아의 미니버스, 베네치아의 은색 가면, 포르투의 납작한 기타, 바르셀로나의 파란 유리병, 루체른의 발레 오르골, 오사카의 방석 위의 고양이, 브라티슬라바의 도자기 꽃병, 하노이의 목각인형, 타이베이의 돼지 인형, 텍사스의 보석함, 모스크바의 마트료시카 인형, 오타루의 토끼 오르골, 하와이의 조개 장식품 등등……. 내가 이곳저곳 여행지의 장식품 모으는 것이 취미인 줄 아는 아들과 딸 또한 여행할 때마다 들르는 곳의 장식품을 사다가 장식장을 채워준다.






장식장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장식품들은 찍어놓은 사진처럼 여행지에서의 지낸 시간을 상기시켜준다. 그중에서도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 벼룩시장에서 산 물병이 있는데 이것은 식탁 위에서 가끔씩 쓰기도 한다. 가녀린 여인의 몸매를 닮은 유리병은 키가 무려 26.5센티나 된다.


잘츠카머구트 지역의 가장 안쪽에 있는 할슈타트 마을로 들어간 적이 있다. 푸른 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인 할슈타트는 오래된 집들이 그림 같아 보이는 곳이었다. 아기자기한 할슈타트 마을에 들어서니 마치 한 편의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남편과 나는 동화 속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마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동네 끄트머리에 자그만 창고처럼 보이는 집이 있었다. 집 안에는 파란 눈을 가진 키 큰 여인이 서 있었고 여러 가지 물건들이 바닥에 자유롭게 놓여있었다. 시장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이는 결코 놓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창고 안으로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호수 주변을 한 바퀴 삥 돌면서 마을을 구경한 후 장식품들이 가득한 상점에서 예쁜 기념품을 고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이 손에 이끌려 벼룩시장을 구경하게 된 것이다.


바닥에 놓인 물건들 앞에는 각각 값을 적어놓은 종이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10유로, 8유로, 15유로, 4유로 등등. 나는 혹시 손아귀에 들어갈 만한 자그만 기념품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제법 키가 크고 목이 길며 엉덩이가 방방하게 퍼져 여인의 몸매를 닮은 유리병을 보게 되었다.


병에는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섬세하게 그려 넣은 것 같은 꽃다발 그림이 있었는데 마치 들국화를 꺾어다 부케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꽃다발 옆에는 tnneliese and peter라고 남녀의 이름인 듯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장식품으로 구입하기에는 키가 커서 적당하지 않았지만 왠지 자꾸 눈길이 갔다.


이 물병은 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벼룩시장에 나오게 된 걸까? 궁금한 마음으로 유리병을 들고 살피는데 병 아래쪽에 1989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1989년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해라서 나와 남편은 1989년이라는 숫자에 꽂혀 파란 눈을 가진 아줌마에게 15유로를 건네주고 물병을 샀다






할슈타트에서 데리고 온 물병은 서양 여인처럼 키가 커서 자그만 장식품들과는 어울리지 않아 그릇을 넣어두는 주방의 장식장에 들어가 있다. 가끔 유럽의 분위기를 식탁에 올리고 싶을 때, 할슈타트에서 건너온 호리 날짱하게 생긴 물병에 레몬 한 조각을 넣고 생수를 담는다.


할슈타트 물병을 사용할 땐 독일식 양배추 김치인 사우어크라우트도 돼지 목살로 쪄낸 수육과 함께 곁들인다. 잘 익은 양배추 김치를 수육과 함께 먹으면 아삭아삭한 식감과 함께 맛의 조화로움이 줄리엣과 로미오의 만남처럼 격렬하다.


사우어크라우트 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양배추를 잘게 채 친 다음 약간의 소금을 넣고 3시간 정도 푹 절인다. 절인 양배추는 손으로 빡빡 문지른 뒤 용기에 담아 익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이 문질러줘야 유산균이 많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김치가 유산균 창고라면 양배추 절임은 유럽의 유산균 창고다.






주먹구구 레시피 (사우어크라우트)

재료: 양배추 1통 (3kg), 소금 60g


1. 양배추를 얇게 채를 썰어 준 다음 소금으로 간한다.

2. 2시간 정도 절인 양배추를 손으로 박박 주물러준다.

3. 소독해둔 용기에 담아 실온에서 1주 정도 익힌 후 냉장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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