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내 생애 첫 거짓말

에세이

by 김경희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북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행여나 몸 밖으로 심장 뛰는 소리가 새어 나오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에 마주 잡고 있던 손바닥은 땀에 젖어 흥건해졌다. 바짝 긴장한 탓인지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때 나는 국민학교 2학년 자그만 계집애였다.


아빠는 매우 자상하면서도 손재주가 있는 분이셨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시면 바쁜 엄마를 위해 멸치도 까주시고 마늘과 생강도 까주셨다. 엄마가 빨랫줄에서 빨래를 한아름 걷어오면 빨래도 개키셨는데 아빠가 개킨 옷가지는 엄마가 개킨 것보다 더 반듯했다. 어린 내 눈에 아빠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멋진 남자이셨다.


딸을 넷이나 두신 아빠는 출근하시기 전에 엄마를 대신해서 딸들의 머리를 곱게 빗겨주시곤 하셨다. 등교하는 언니와 내 머리는 특별히 신경 써서 단정하게 매만져주셨다. 아빠의 사랑과 손재주 덕분에 우리 자매들 머리는 언제나 정갈했다. 언니는 4학년이 되면서 단발머리를 하게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아빠의 손을 빌려 양 갈래로 머리를 땋고 다녔다.


긴 머리 스타일은 국민학교 2학년 2학기가 될 때까지 이어졌다. 긴 머리를 아빠가 한 가닥으로 짱짱하게 묶어 주시는 날도 있었는데, 머리끝이 궁둥이에 닿을락 말락 할 정도여서 걸을 때마다 머리꼬리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그때 내가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인지, 엄마가 기르라고 종용한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언니의 머릿결은 숱이 없고 가늘면서 곱슬곱슬했는데 내 머리는 숱이 많고 머리카락이 두꺼워서 언니는 이런 내 머리를 늘 부러워했다.


이렇게 언니의 부러움을 사던 긴 머리가 국민학교 2학년이 되자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을 때도 그렇지만 감고 나서 말릴 때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샴푸라는 것이 지금처럼 흔하던 시절이 아니라서 비누칠을 해서 머리에 거품을 내다보면 오금이 저렸다. 숱 많고 기다란 머리였으니 숱 적고 짧은 머리를 한 언니에 비해 머리 감는 시간이 배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감기던 엄마가 “아이고 허리야”라고 하면서 잠시 허리를 펴면 나도 따라 구부렸던 다리를 쭉 펴고 일어섰다. 젖은 머리를 한 채 몸을 세우니 여지없이 비눗물이 뚝뚝 떨어져 이마를 적시고 눈으로 들어가 따가웠다.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있자니 다리가 저리고 일어서자니 눈이 매워서 징징거리면 엄마는 “가만히 있어야 빨리 끝나지”라고 하면서 내 등을 한 대 철썩 내리쳤다. 머리를 감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등까지 한 대 덤으로 얻어맞으니 억울해서 눈물 콧물 짜내는 일은 긴 머리를 감을 때마다 마주하는 진풍경이었다.


학교에 갈 때마다 아빠에게 붙들려 머리를 땋는 시간도 싫었다. 짧은 단발머리를 빗으로 쓱쓱 빗어 넘긴 후 툴툴 털고 일어서는 언니처럼 자기 머리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이렇게 자꾸만 긴 머리 때문에 힘든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어떻게 하면 머리를 자를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머리를 반드시 길러야만 한다고 못을 박아둔 것도 아니었을 터인데 왜 부모님께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선뜻 말하지 못했을까? 부모님의 뜻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나 자신도 짧은 머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파랗고 콧구멍 속으로 들랑거리는 바람이 무척이나 청량하게 느껴지던 가을에 운동회가 열렸다. 운동회 날 아침에 아빠는 내 머리를 한 갈래로 땋아서 다른 날보다 더 짱짱하게 묶어 주셨다. 머리단장을 마치고 언니와 나는 엄마가 밤새 콩을 넣고 만들어 주신 오재미와 응원 도구를 들고 학교로 달아났다.


교문으로 들어서자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석회 가루로 그려진 여러 개의 줄이 눈에 들어왔다. 가는 모래가 깔린 운동장 위로 그려진 하얀 선들이 어쩜 그리 선명하던지, 마치 기차가 다니는 철길처럼 튼튼해 보였다. 남자 선생님 몇몇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만국기를 치렁치렁 매달고 있었다. 운동장 안으로 한껏 들뜬 학생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전교생이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운동장은 구령 소리로 들썩거렸다. 우리는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대항을 벌이기 시작했다. 맨 먼저 학년 별로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 당시 단거리 달리기를 꽤 잘하는 편이어서 우리 반의 유망주였다. 다섯 명씩 조를 짜서 기다리다가 드디어 내가 속한 조가 달릴 차례가 되었다.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몸을 앞으로 약간 숙인 채 출발선에 신코를 맞추고 섰다. 입은 꼭 다문 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지된 찰나의 긴장감을 깨며 선생님의 입에 물린 호루라기에서 호루루루 하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온 힘을 다해 출발선에서 뛰쳐나갔다. 출발이 다른 아이들보다 빨랐는지 내가 맨 앞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는데 한 친구가 내 앞으로 조금씩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곁눈질을 하며 나를 질러나가는 친구를 제쳐버리기 위해 가슴을 앞쪽으로 쭉 내밀며 이를 악물고 달렸다. 하지만 도착점에 2등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1등으로 도착점에 들어간 친구는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두 손을 들고 펄펄 뛰며 좋아했다. 나는 뛸 때마다 뒤에서 채찍이 되어 내 등을 쳐대던 긴 머리 때문에 1등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단거리 달리기가 끝나고 계주가 시작되자 선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때마다 플라타너스 밑으로 청백기가 양쪽에서 휘날렸다. 삼삼칠 박수에 맞춰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이 결승전에 가까워지자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응원 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떤 아이들은 자리에서 홀딱홀딱 뛰면서 선수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나는 백군 진영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면서 긴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재미를 하고 줄다리기할 때도 온통 머리 자를 생각만 하고 있었다.


운동회를 마치고 온몸에 운동장의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 집으로 돌아왔다. 몸을 씻고 머리를 감은 다음, 피곤함을 견디지 못해 자올거리고 있는데 아빠가 돌아오셨다. 나는 아빠 앞으로 달려 나가 “아빠 있잖아. 오늘 우리 선생님이 나한테 머리 자르고 오랬어. 머리를 잘라야 단정하대.”라고 거짓말을 했다. 재빠르고 깜찍하게 거짓말을 하고 나서는 가슴속에서 빠르게 방망이질 쳐대는 소리를 들킬까 봐 뒤돌아서서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 뒤로 아빠는 두 말도 하지 않고 머리 자르는 일을 허락하셨고, 토요일에 엄마를 따라 미장원에 가서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엄마는 잘려나가는 내 머리카락을 보며 아쉬워했지만 나는 그저 속이 후련하기만 했다. 이제야 드디어 나도 언니처럼 내 손으로 머리를 빗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고학년이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다음번 운동회 때 단발머리를 하고 가볍게 달리기를 하게 될 내 모습을 떠올리자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잘라낸 내 머리카락은 미용실 아줌마가 눈독을 들였다. 숱이 많고 질이 좋은 머리카락이라 가발을 만들면 좋겠다며 사기를 원했다. 엄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내 머리카락을 미용실에 팔았다. 머리카락 판 돈은 엄마가 받았기 때문에 얼마를 받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엄마는 내 머리카락을 팔고 나서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생애 첫 거짓말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어린 계집아이의 속임수가 능숙하다고 한들 얼마나 능숙했을까. 아마도 아빠와 엄마는 내가 거짓말한다는 것을 단박에 눈치채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긴 머리를 감을 때마다 엄마 앞에서 칭얼거리던 나를, 학교 가기 위해 머리를 땋을 때마다 아빠 앞에서 툴툴거리던 내 투정을 소홀히 여기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단발머리에 머리핀을 꽂고 학교에 다녔다.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 가벼워진 머리를 내 손으로 매만지며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었다. 하지만 이듬해 운동회 달리기에서도 1등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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