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활동은 그리기였다. 두툼하면서도 거친 연습장 위로 연필이 지나갈 때마다 내는 소리가 유난히 듣기 좋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열다섯, 열여섯 중학생 때는 연습장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를 그리기도 하고 강아지, 사과, 연필통, 지우개, 엄마의 장롱에 그려진 자개 무늬 등등 눈에 띄는 것들을 모두 그려댔다. 가끔은 뾰족한 삼각형의 반복, 물결처럼 번져가는 동그라미의 움직임 등 기하학적인 문양들을 그리기도 했다. 이런 그리는 습관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이어졌다.
고3이 되어서 짝꿍을 정하던 날이었다. 키가 작아 반에서 7번이었던 나는 8번과 짝꿍이 되었다. 짝꿍이 된 친구는 1학년 때부터 미술부였고 아버지는 미술 선생님이셨다. 학기가 시작된 지 2주가 지나던 어느 날, 짝꿍은 내 낙서장을 보고 싶다고 했다. 쉬는 시간마다 무언가를 그려대는 나를 보고 궁금했던 모양이다. 마땅히 보여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기에 나는 흔쾌히 짝꿍의 책상 위로 연습장을 내밀었다.
친구는 낙서장을 한 장씩 찬찬히 넘겨보더니 농담 삼아 “경희야! 내가 다니는 미술학원 같이 다니지 않을래?”라고 물었고 나는 그냥 피식 웃어넘겼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짝꿍은 자기가 다니고 있는 미술 학원에 같이 다녀보자고 나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짝꿍은 미대에 들어가기 위해 미술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꼬드김에 점점 마음이 흔들렸다. 미대에 진학하기로 정한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야트막한 꾀가 나서 혹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음에 사로잡히자 엄마에게 미대에 가고 싶으니 미술 학원에 보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모두 그림을 잘 그렸다. 조상 중에 화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오빠는 조각에 일가견이 있었고 언니는 사생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기도 하고 동생들도 그림을 잘 그렸다. 내가 갑자기 미대에 가겠다고 하자 엄마는 밑도 끝도 없이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옛날에 환쟁이라고 불렀어.”라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야 예술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높게 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의 태도에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몇 날 며칠을 학교에서 짝꿍에게 꼬드김을 당했고 그 영향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마를 졸라댔다. 엄마는 내 성화에 못 이겨 아빠에게 허락을 받고 미술 학원에 가져갈 한 달 수강료를 주셨다.
짝꿍은 나와 함께 미술 학원에 다니게 되어서 좋다며 펄펄 뛰었다. 친구와 함께 들어선 미술 학원은 원장실 옆에 미술실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하나는 고급반. 나머지 화실은 초보자들이 그림을 그리는 곳이었다. 짝꿍은 나를 자기가 속한 고급반으로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주었다.
고급반 교실에는 머리가 굼실굼실한 남학생들이 득시글거렸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도화지며 세워둔 조각상과 이젤, 캔버스가 질서 없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은 시커먼 연필 가루로 거뭇거렸는데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은 비좁은 자리를 서로 묘하게 비켜 앉아 다비드 석고상을 한번 힐끔 바라보고 나서는 자기 도화지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연필 잡은 손을 위아래로 왔다 갔다 움직였다. “쓱쓱 삭삭” “쓱쓱 쓱” 연필이 도화지를 긁는 소리에 압도당한 나는 친구에게 눈인사하고 살금살금 화실을 빠져나와 초급반 화실로 들어갔다.
이젤 앞에 놓인 커다란 4절지 스케치북 앞에서 화가처럼 보이는 선생님의 일대일 레슨이 시작되었다. 첫 수업은 선생님이 도화지 위쪽에 그리기 시범을 보여주며 시작되었다. 둥근 공, 직육면체, 삼각뿔 등등 하루하루 다른 사물을 그려주었는데 시범을 보이는 선생님은 마술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도 주지 않고 애를 쓰는 것도 아닌데 연필이 도화지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물체가 뚝딱 도화지 위에 나타났다.
선생님이 그려놓은 물체를 바라보며 그리는 연습을 하기 시작하자 날이 갈수록 연필 세우는 각도와 톤을 부드럽게 잡아가는 법, 너무 색이 진하게 나오면 안 된다는 잔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무엇보다 기초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옆 반 교실에는 잠깐 갔다가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와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숨통이 조여오는 것 같아 숨도 제대로 크게 쉬지 못하고 손을 덜덜 떨며 자꾸 실수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림 그리기가 무척이나 고된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해서 그런지 오른쪽 어깨가 땅땅하게 뭉치고 팔뚝이 아려왔다. 안된다는 걸 졸라서 다니게 된 학원이니 그만둔다고 쉽게 말할 수도 없고 그저 친구와 함께 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가는 시간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동안 내가 그리던 그림은 어떤 규칙도 원칙도 없었기에 선생님하고 똑같은 크기, 색감, 질감을 표현하여야 하는 과정이 못마땅해서 자꾸 불평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니 그림이라는 것이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데로 그리면 그만이지 왜 복사하듯 이렇게 똑같이 그려야 해?’하는 생각이 자나 깨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더 이상 학원에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한 달 만에 미술 학원에서 하차하게 되었고 이런 나를 보고 엄마는 괜한 시간 낭비했으니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압박을 가해 왔다.
자매들이 어른이 되어 모일 때마다 내가 미술 학원에 한 달 다니던 그 일을 떠올리면서 그때 포기하지 않고 미술 학원을 계속 다녔더라면 혹시 내가 미대 나온 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며 깔깔대며 웃어댄다. 어디 나를 놀리려고 그러는 것이겠는가? 다들 그림 그리는 솜씨들이 있었으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하는 소리였을 테지만 오빠도 언니도 동생들도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화학, 간호학, 국어, 수학,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니 엄마 아빠는 자식들 재능은 아랑곳하지 않는 고지식한 부모가 되고 만 것이다.
미술과 상관없는 과목을 전공하게 된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며 주변 친구들에게 그림 그리는 애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내 그림은 아무 데나 함부로 그려대는 낙서처럼 자유분방하면서 주먹구구식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주먹구구식 낙서 같은 내 그림에 불만이 없었다. 다른 그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 맘대로 그리는 자유로움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이 40에 접어들면서 함께 근무하던 선생의 꼬임에 넘어가 주말에 취미로 수채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 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마저도 무슨 규칙과 방법이 그리 쫀쫀한지. 그 뒤로 마음대로 나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20호나 되는 커다란 그림을 그려 형제들 집에도, 아는 목사님 댁과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 집에까지 선물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겁 없이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내 그림이 거실에 떡하니 걸려 있는 집에 놀러 갈 때면 열정적으로 그려대던 지난날이 떠올라 웃음 짓는다.
지금은 자그만 드로잉 노트를 사서 낙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은 노트에 그림을 그리다 보니 보관할 때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서 무엇보다 좋다. 또 여행 가방 안에도 쏙 들어가는 크기이다 보니 언제나 들고 다니며 그리고 싶을 때 쓱쓱 스케치해두었다가 집에 돌아와 한가할 때 물감에 물을 섞어 발라두면 나만의 그림 낙서 노트가 되니 이 어찌 자유롭고 경제적인 취미활동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