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커다란 진주가 있다. 조개의 눈물이라 불리는 하얀 진주가 아니라 강아지 진주. 하얀 털이 부얼거리는 주먹만 한 강아지를 집으로 데리고 온 날 중학교 3학년이던 딸내미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딸이 그렇게도 기르고 싶어 하던 강아지가 생겼으니 강아지 이름을 딸에게 지어보라고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딸내미는 강아지 털이 엄마의 진주 반지처럼 하얗다며 진주라 이름 붙였다.
진주의 아빠는 흰눈이다. 함께 근무하던 오 선생이 기르던 강아지였는데 눈처럼 하얗다고 흰눈이라 이름 붙였다고 했다. 흰눈이는 몇 해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살아있을 때 어찌나 성미가 사나웠는지 몸무게가 2.5kg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그만 강아지가 커다란 진돗개 앞에서 대들다가 혼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오 선생은 흰눈이의 용맹스러움을 자랑삼으며 깔깔대며 웃곤 했었다.
진주의 엄마는 복실이다. 털은 하얗고 몸매는 허리가 길고 목이 길어 흰눈이의 두 배 정도 키가 큰 강아지였다. 오 선생 말로는 복실이가 사람이었다면 전지현 몸매 뺨칠 거라 했다. 복실이는 어느 누가 기르다 버렸는지 비 오는 날 길거리에서 방황하며 신호등 앞에 서 있었는데 오 선생의 둘째 아들이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오 선생은 유기견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남편 사업이 번창하게 되자 복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렇게 흰눈이와 복실이가 한 집에 동거하게 되면서 둘 사이에서 말티즈 네 마리가 태어난 것이다.
오 선생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은 복실이를 위해 소고기 미역국을 정성껏 끓여주었다. 출근할 때마다 내 생전에 딸이 없어 산후조리할 일은 없을 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일이냐며 헐떡거리기도 했다. 흰눈이와 복실이의 새끼들은 이가 나기 시작하면서 젖을 떼고 한 달이 가까워지자 서울, 광주, 익산, 군산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에서 우리 집 강아지가 된 진주는 엄마인 복실이를 쏙 빼다 닮았는데 서울로 분양되었다가 5개월이 지나서 다시 오 선생에게 돌아왔다. 강아지를 데리고 간 사람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오 선생은 강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출근할 때마다 조바심을 내며 심란하다고 했다. 아무리 강아지라고 해도 아빠와 딸 사이에 새끼를 낳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오 선생은 서울에서 돌아온 강아지를 입양 보내기 위해서 이리저리 수소문했다. 하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자 나한테 키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만 맡아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때 나는 강아지를 맡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오 선생의 간절한 눈빛을 거절할 수 없었고, 딸내미가 강아지를 키우자고 오래전부터 조르고 있던 터라 체험 차원에서 잠시 맡아주겠다고 허락하고 말았다.
아예 맡아서 기를 목적은 아니었지만 강아지를 맞이하기 위해 딸내미와 함께 애견센터에 들려 이것저것 준비했다. 강아지 방석, 귀 청소하는 소독액, 발톱깎이, 사료, 간식, 목줄, 배변패드 등등. 강아지가 집에 오던 날, 꼬물꼬물 귀여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따라다니다가 어느새 밤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강아지는 절대로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시골에서 강아지는 마루 밑에서 기거했지 방에 들여놓는 것을 보지 못했으므로) 거실에 펜스를 치고 강아지를 재웠다.
딸은 딸 방에서 우리 부부는 안방에서 강아지는 거실에서 자리를 잡고 잠이 들었는데 새벽 두 시쯤 되었을까? 거실에서 “오우~" 하는 소리가 가늘고 길게 났다. 깜짝 놀라 뛰쳐나와 불을 켰더니 강아지가 여우처럼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에게 “아니 이 새벽에 왜 여우 소리를 내느냐.”라며 작은 소리로 혼내며 타일렀다. 강아지는 내가 타이르는 소리에 다시 자다가 새벽 4시쯤에 한 번 더 여우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강아지가 분리 불안이 생겼을 때 외로워서 여우 소리를 낸다고 한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어미를 떠나야 했던 강아지는 5개월 후에 다시 주인과 떨어져 우리 집에 오게 되었으니 어찌 불안하지 않았을까. 그때 강아지의 입장은 헤아릴 줄 모르고 왜 이상한 소리를 내냐며 혼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강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 뒤로 진주는 서서히 우리 집 꽃이 되었다. 내가 세미나다 연수다 집을 비울 때도 딸은 힘들어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날도 강아지와 노느라 밖에 있는 나에게 빨리 오라고 조르지 않았다. 또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집에 오셨을 때도 강아지가 가장 반갑게 맞이해 주었으니 어머님과 엄마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조카들 또한 지금까지도 진주의 안부를 물어올 정도니 우리 집 강아지 인기야말로 우리 집안에선 하늘을 찌른다.
때때로 딸내미는 강아지를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진주야, 너는 무슨 걱정이 있니. 시험도 안 보고 성적 걱정도 없으니 네 팔자가 정말 상팔자야."라고 하면서 학교에 가곤 했었다. 남편은 또 "진주야, 너는 똥오줌만 잘 싸도 엄마한테 잘했다고 칭찬받으니 진짜 좋겠다. 나도 다음 생엔 너 같은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다."라고 하면서 히죽대기도 했다.
며느리가 처음 인사 오던 날은 긴장해서 서로 어색하던 마음을 강아지가 와르르 무너뜨려 주었다. 그 뒤로 며느리는 집에 올 때마다 강아지 간식까지 챙겨온다. 사위 또한 강아지를 어찌나 예뻐하는지, 사위가 집에 오는 날 진주는 거실을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얼굴 표정까지 환하게 밝아지곤 한다. 새로 들어온 식구들에게까지 듬뿍 사랑을 받고 있는 진주는 우리 가족 모두의 관심 대상이다. 나 또한 진주와 시작했던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이런 우리 집 강아지가 지금은 노령견이 되었다. 사람 나이로 계산하자면 99살 정도 된다는데(강아지 계산법에 따르면) 나이가 들다 보니 귀가 잘 안 들리고 다리에 힘이 없다. 이도 많이 빠져서 이젠 어금니밖에 남지 않았다. 살짝 치매가 온 건지 잘 가리던 소변도 여기저기 실수를 자주 해서 집안에 지뢰밭을 만들기도 한다. 짧은 거리를 산책하고 돌아와선 한바탕 운동경기를 하고 지친 선수처럼 늘어져서 한참씩 잠을 잔다.
남편은 강아지의 요즘 상태를 보며 진주가 떠나고 나면 앞으로 절대 애완동물은 키우지 말자고 한다. 건강하게 지낼 땐 괜찮지만 동물이라고 해도 이렇게 약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며. 떠나지도 않았는데 떠난 후를 생각하는 것이 강아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나도 역시 남편의 말에 수긍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요즘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반려동물 인구수가 1,500만을 넘었다는 뉴스를 접했으니 우리나라 인구의 30% 가까운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나는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잠시 맡았던 강아지와 이렇게 오래 지내고 있지만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하거나 강아지를 입양하게 된다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