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뼛속까지 싱그럽게 하는 봄

김경희

by 김경희


언 땅이 녹고 말랐던 대지 위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봄이다. 따사로운 봄볕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겨울의 시린 흔적을 바삐 지워내고 있다. 겨우내 찬 바람에 시달리던 마른 잡초 사이로 봄볕을 받아 수줍게 고개 내민 어린 쑥은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다. 어린 시절 코딱지 나물이라 불렀던 광대나물은 성미가 급한 탓인지 연두를 넘어 벌써 초록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살금살금 올 것 같았던 봄이 올해는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지천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어린 순들을 보고 있자니 하늘을 나는 것처럼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가지마다 봄이 무르익은 것 같아 봄볕 아래로 친구들을 불러들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난향을 맡으러 벗을 찾았던 선비의 발걸음으로 뼛속까지 싱그럽게 하는 봄의 향기를 따라 들판으로 달려나가고 싶기도 하다. 괜스레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면 봄의 꿈틀거림은 자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에도 찾아와 묵혀두었던 그리움을 털어내고 서로 간에 정을 나눌 수 있도록 싹을 틔워주는 것 같다.


며칠 전에 여섯 명이 한 달에 한 번 만나 식사하는 모임이 있어서 다녀왔다. 지난달에 모임을 마치면서 삼월은 따뜻할 테니까 도심의 회색빛 밋밋한 장소에서 만나지 말고 봄기운 가득한 산자락 아래서 만나자고 했었다. 운 좋으면 들판에 아른거리며 피어나는 아지랑이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이른 상상까지 하며 도심을 벗어나 모악산으로 차를 몰았다.


모임의 인연은 이십 년 전 봄, 천연 비누 만드는 법을 배우는 곳에서였다. 비누 만드는 교육을 마치고 누가 먼저 모임을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여섯이 식사를 하게 되면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모임의 이름은 보미회다. 모임을 시작하던 때가 봄이라서 봄을 풀어써서 보미라고 이름 지었다. 보미회에서는 봄이 되면 특별한 만남을 기대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매해의 봄마다 봄맞이를 하러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광양 매화 구경, 남해 봄 바다, 여수 오동도 동백꽃 맞이, 송광사의 봄, 부안 솔섬의 해넘이, 봄나물 캐기 등등의 야외 활동 중에서 쑥개떡을 만드느라 들판에서 나물 캐던 해의 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보미회에 유난히 쑥개떡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이는 봄이 되면 어려서 먹었던 쑥개떡에 대한 추억을 곱씹으며 동글납작하고 진한 초록색의 쑥개떡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쑥개떡 노래의 영향으로 함께 쑥개떡을 만들어 보기로 하고 어디로 나가면 좋을까? 고민했다. 강의하러 다닐 때 가끔씩 갔던 강의실 뒤쪽의 천잠산 능선을 생각했다. 강의실 옆쪽으로 길게 늘어선 화단은 산자락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양지바른 쪽에 쑥이 쫑긋쫑긋 탐스럽게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내 제안에 신이 난 여섯 명은 포근한 주말을 이용해서 과도와 검정 비닐봉지를 챙겨서 학교로 향했다. 강의실 옆에 있는 화단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어서 관리하는 관리인이 없었고, 잡초와 쑥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검정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산자락의 나지막한 들판에 흩어져 쑥을 캐기 시작했다. 나는 화단 앞에 앉아 쑥을 캐서 봉지에 담았다. 파릇파릇 돋아난 쑥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과도를 땅속 깊이 쑤셔 넣으니 쑥이 쏙쏙 빠져나왔다.


가끔 바람이 휭하니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어놓았지만 내리쬐는 봄볕 때문에 등은 따뜻했다. 쑥을 캐는 동안 보드라운 아기 쑥이 봉지에 쌓여가는 재미도 있었지만 ‘아! 봄이란 이렇게 따사롭고 대지가 올려 주는 생명을 거저 받아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푸근해져 취기가 올라왔다. 봄에 취하는 기분은 소주 한잔 마실 때의 화끈함과는 달리 은은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여섯 개의 봉지에 담긴 쑥을 한 사람이 모아서 집으로 가져갔다. 쑥개떡을 만들려면 캔 쑥을 고르고 씻고 삶아서 쌀과 함께 방앗간에 가져가 빻은 다음 촉촉한 상태로 반죽을 해서 쪄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음식이 한순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손쉽게 한입 베어 무는 쑥개떡마저도 들어가는 공력이 상당했다. 봄을 조물락거려 만든 쑥개떡을 한입 베어 물면서 ‘이건 내 손으로 직접 캔 쑥으로 만든 거야“라며 당당하게 즐거워할 시간이 기다려졌다.


야무지게 부풀었던 기대감이 얼마 지나지 않아 흠집이 났다. 카톡 창에 쑥 봉지를 가져간 사람의 글이 올라왔다. ” 아니 누가 국화를 한 봉지나 캔 거야?“”세상에나“”헐~“ 댓글 창에 배를 잡고 웃는 이모티콘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나는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는 이모티콘을 찾아 올리고 싶었으나 찾을 수 없어서 머리를 득득 긁어대는 이모티콘을 올렸다.


이게 무슨 일이람. 어쩐지 쑥을 캐는데 내가 캐는 쑥이 다른 이들이 캐는 쑥보다 모양이 예쁘고 색이 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쭐했는데 그게 국화 싹이었다니. 며칠 뒤에 동글동글 손바닥 크기로 만들어진 쑥개떡을 만날 수 있었다. 고소한 참기름을 몇 방울 발라 한 입 베어 무니 쫀득한 쑥 향내가 입안 가득 퍼졌다. 화단의 국화 싹을 모조리 캐 버린 어이없는 실수로 화끈거리던 마음은 금세 파릇한 봄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해의 봄에도, 그 이듬해의 봄에도, 몇 년이 지난 후의 봄에도 내가 쑥 대신 국화를 캤던 일은 멈추지 않고 모일 때마다 구설에 오르내렸다.


이번 모임에서도 여전히 국화 싹 캐던 이야기가 나왔다. 쑥개떡 좋아하는 이가 모악산으로 오르는 입구에서 할머니에게 쑥개떡을 한 봉지 샀기 때문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쑥개떡을 한 장씩 나눠 먹으며 오르던 산길 옆으로 봄의 소리가 쫄쫄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내 마음도 봄을 따라 경쾌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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