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나는 호모 그래퍼(Homo graher)입니다

by 김경희


60세 이후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해 달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당시 나는 5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60세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으로 "그때부터는 햇빛 잘 드는 창가에 앉아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싶다."라고 얼버무렸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나의 무의식 속에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모양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책을 내는 저자가 되고 싶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냥'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다. 글을 쓰기 전에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지 않고 '그냥'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의미가 있다. 쓰는 사람이 되면 점점 세게 연주하라는 악상 부호 크레셴도(crescendo)처럼 글을 쓸수록 내공이 점점 더 세지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선포되던 해에 60세가 되면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에서 처음에 쓰기 시작한 글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 정보 제공을 위한 글이었다. 지금은 에세이, 소설, 시까지 장르를 망라해 가며 쓰고 있다. 이렇게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고 햇수를 더해가며 점점 더 쓰는 사람이 되고 있다. 쓰는 사람이 되고 나니 무엇을 쓸 것인지, 어떻게 써야 좋을지 늘 고민한다.


일기를 쓸 때는 무엇을 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일기장에 그날 일어났던 일과 생각, 감정을 쓸어 모아 기록해 두면 그만이니 말이다. 하지만 일상의 기록이 아닌 작문의 한 형태로 글을 쓰는 과정은 쓰면 쓸수록 더 잘 쓰고 싶어 져 심사숙고(深思熟考) 하게 된다.


글 잘 쓰는 사람의 문장과 견주기 위함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아름답거나 보다 나은 문체를 어떻게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지, 형상화 과정에서 추상적인 단어들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구체화할지, 딱딱하지 않고 말랑거리는 글이 되기 위해 어느 부분에 재치 있는 내용을 넣을지,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글이 되기 위해 어떤 부분을 덜어내야 할지,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잔소리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진솔한 글이 되기 위해 어디까지 내비치어야 할지 등등.


전업작가들이 겪는 고통의 무게감은 아니겠지만 나 스스로가 만족스러울만한 글을 쓰기 위해 젖을 짜내는 과정은 처절할 때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 안에 글이 차오를 때 쏟아내는 과정은 쾌락의 감정을 넘어 숭고(嵩高) 하기까지 하다. 글을 쓰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되기도 하고, 욕구를 발견하기도 하며, 자아실현까지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쓴 글이 운 좋게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 해도 어떤 글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우주를 여행하듯 꼬리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지면을 박차고 높이 오를 때가 있다. 내가 낳은 자녀가 우주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찌 신나지 않을까. '그냥' 쓴다는 것은 내 속에 있던 생각이 글로 태어나 자유롭게 떠나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나를 떠난 글은 여행 중에 제풀에 꺾여 주저앉아 있기도 하겠지만, 때론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며 영향을 주기도 하고 도끼가 되어 누군가의 생각을 쪼개기도 할 것이다.


글의 우주여행을 위해 이태준 님의 <문장 강화>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눈으로 읽어냈다면 이번엔 첫 장부터 워드 작업을 하고 있다. 좀 더 천천히, 깊게 읽어 나가기 위해 필사를 해보고 싶지만 팔목과 어깨에 무리가 가면 병원 신세를 져야 할 형편이라 워드 필사를 선택한 것이다.


이태준 님은 문장 강화에서 "글은 아무리 소품이든 대작이든 마치 개미면 개미, 호랑이면 호랑이처럼 머리가 있고 몸이 있고 꼬리가 있는 일종의 생명체이기를 요구하는 것이다."(문장 강화 p17)라고 했다. 생명체로써의 글, 내가 쓴 글이 머리와 몸과 꼬리가 있는 생명체로써의 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설익은 밥을 뜸 들이지 않은 채 그릇에 퍼서 식탁 위에 올리는 성급한 사람처럼 설익은 글로 '어떻게 상을 차려볼까' 궁리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것, 살아있는 글이 되기 위해 글의 뼈대를 세운 뒤 살을 붙여나가되 살에는 나의 감정을 최대한 많이 붙일 것, 쓰는 것이 직업인 것처럼 '그냥'쓰는 일에 마음과 힘을 다할 것, 더불어 핏줄 보다 더 질긴 것은 진심을 다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니 타성에 젖지 않고 거짓 없는 참된 마음으로 써내는 글이라면 이런 글은 살아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개미가 될지도, 몹시 사나운 호랑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주에 오랜만에 서울에 사는 친구가 내려왔다. 만나자마자 퇴직한 후 3년 동안 노느라 바빴다던 친구는 나에게 무엇을 하며 지냈느냐 물었다.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며 나머지 시간엔 주로 글을 썼다고 했더니 "너 조만간 책 내겠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책으로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쓰는 거라고 대답하자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와 하룻밤을 지내면서 '그냥' 쓰는 일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냥' 글을 쓴다는 것이 뭐 그리 놀랄만한 일인가. 내가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도 '그냥' 쓰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지극히 소박하면서도 매력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물론 써놓은 글들이 언젠가는 책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무수히 많은 것에 자극받으며 생각의 골짜기가 한없이 깊어지는 순간의 즐거움은 '그냥' 쓰는 자가 거저 누릴 수 있는 정신적 유희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그냥' 쓰는 것이 좋다. 또 오래도록 호모 그래퍼(Homo grapher)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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