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야자수가 사망을 했는데 장례를 치르지 않고 두어 달을 화분에 그냥 놔두다가 드디어 오늘 장례를 치렀다. 죽은 야자수는 아까워서 흑흑.....
나는 화초를 잘 죽인다. 일부러 죽이는 것은 아니고 식물들이 우리 집에 오면 스스로 죽는다. 아마도 내가 화초 기르는 실력이 없어서 그러는 건지, 우리 집 터가 안 좋아서 그러는지 아무튼 두 달 전에 잘 자라던 야자수가 갑자기 시들거리더니 바짝 말라죽었다.
(시들거린다고 물이 모자라는 줄 알고 매일매일 물을 주었더니 더 빨리 죽었다는 것은 안 비밀.ㅎㅎ)
우리 집에선 하도 식물이 잘 죽어서 언제부턴가 이제는 그만 키워야지 마음먹은 뒤, 생명력이 긴 다육이와 나무들만 키우고 관리하기 힘든 꽃나무들은 요 근래 집에 들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단골 화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리고 말았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말이다.
내가 다니는 단골 화원에는 식물 박사 할머니가(진짜로 박사학위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있는데 잘 안 죽는 꽃나무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세상에 안 죽는 나무가 어디 있냐며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식물이 잘 죽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 많이씩 줘서 식물을 자꾸 죽이면 내가 좋지. 또 사러 올 테니까"라며 웃기까지 하셨다.
할머니의 농담에 나도 활짝 웃으며 추천을 받아 집으로 데리고 온 아이들은 제라늄, 파라고륨, 그리고 보라색 꽃이 앙증맣게 피어나는 쿠페아다. 제라늄은 야자수가 살던 백도자기 화분에 심어주었더니 몇 만 원짜리 화분처럼 폼이 났다.
파라고륨은 자그만 플라스틱 화분에 심었고 쿠페아는 옆으로 퍼질 것 같아 납작스름한 옹기 화분에 심었더니 이 아이들도 제법 멋지다. 플라스틱 화분과 옹기 화분에서도 이런저런 식물들이 잠시 살다가 숱하게 죽어나갔지만 이번에는 오래오래 살아주길 바랄 뿐이다.
*제라늄 꽃말: "그대를 사랑합니다"
*쿠페아 꽃말: "세심한 사람"
제라늄과 쿠페아의 꽃말을 알려주던 할머니는 이번에 가져가는 것들은 물을 너무 많이 주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물은 흙이 바싹 마르면 흠뻑 준 뒤 햇빛 쨍한 곳에 두고 바람이 꽃나무를 흔들어주도록 창문도 가끔씩 열어 두라고까지 일러주었다. 할머니의 가르침에 대답은 냉큼 하고 돌아왔지만 시도 때도 없이 화초에 물 주고 싶은 마음을 잘 참고 견뎌낼지 모르겠다.
오늘 나에게 만 원의 행복을 느끼게 해준 제라늄과 파라고륨, 쿠페아를 파는 화원은 멋진 화분이 하나도 없는 꽃집이다. 기껏해야 몇 백원 정도 하는 일회용 비닐 포트에 꽃나무들을 심어 팔기 때문에 볼품이 없다. 그러니 할머니네 꽃나무들은 집에 와서 화분에 옮겨심고 나서야 멋진 모습이 된다.
언젠가 궁금한 마음이 들어 할머니에게 왜 예쁜 화분에 꽃을 심어서 팔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면 값도 비싸게 받을 수 있고 사람들이 더 많이 오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예쁜 화분에 심어서 팔면 사람들이 화분 옮길 생각을 안 하니 흙을 어떻게 만져보겠느냐고 했다.
사람들에게 흙을 만지게 하고 싶은 할머니는 흙에 대한 철학이 있어 보였다. 그 뒤로 나는 할머니네 화원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사실 자세하게 따져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나도 할머니 벌이 되는 나이에 접어든지라 꽃을 파는 할머니와 나이 차이가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흙 만지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식물에 대한 지식이 깊어 보여서 언제부턴가 나는 할머니가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것처럼 인식해 버렸다.
내가 화원에 들릴 때마다 할머니는 손으로 흙을 만지고 계셨다. 장갑도 끼지 않고 흙을 만지는 손은 거칠고 투박했으며 손톱 밑엔 흙이 들어가 거뭇하게 변해 있었다. 그런 손으로 빈 포트에 흙을 가지런히 담은 뒤 식물의 가지를 꺾어 심은 다음 잘 키워서 팔곤 했다.
할머니네 가게에서 꽃나무를 사 오는 날에는 나도 흙을 만진다. 구입해온 꽃나무의 화분은 모양새가 좋지 않을뿐더러 작아서 크기에 알맞은 화분을 골라 옮겨 심어야 한다. 빈 화분에 마른 흙을 반쯤 넣은 다음, 그 위에 나무뿌리를 올려놓고 할머니처럼 나도 손으로 흙을 한 줌씩 집어 뿌리를 덮어준다. 물론 나는 장갑을 끼고 흙을 만지지만 말이다.
흙을 만질 때 흙에서는 넉넉한 향기가 난다. 어린 시절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던 골목길을 걸을 때 나던 흙냄새, 시어머님 계시던 시골집 앞마당에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코끝을 간지럽히던 풋풋한 땅 냄새가 난다. 흙은 추억의 향기를 머금고 있고 흙을 만지는 시간은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절로 선뜻 떠나게 한다.
어쩌면 나는 꽃나무가 좋아서라기보다 자연의 내음이자 생명의 산실인 흙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 좋아서 단골 꽃집에 자주 들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떡가루처럼 보슬 거리는 보드라운 흙으로, 모든 뿌리를 포근하게 덮어주는 흙으로 장난을 치고 싶어서 말이다. 흙장난의 시간은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시간이다. 포근한 온도를 굳이 측정해 보자면 정상 체온에 가깝다. 덥지도 차지도 않지만 따뜻한 36.5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