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시작으로 명랑한 오월에 들어섰지만 나에겐 그다지 명랑하지 않은 시간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병치레 없이 건강했던 남편이 두 번이나 입원을 해서 몸을 손봐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쇠도 쓰면 닳는 법인데 그동안 쉬지 않고 마구 써온 사람의 몸이야 오죽했으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치료를 하면 대체적으로 괜찮아질 거라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서 오월의 명랑한 기운을 몽땅 빼앗기진 않았다.
나와 반대로 남편은 아침형 사람이다. 그래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데 나는 올빼미형 사람이라 밤늦게까지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고 단 한 번도 남편보다 일찍 일어난 적이 없다. 아침엔 남편이 깨워야 겨우 일어난다.
이 문제는 게으르다 부지런하다의 개념으로 평가할 문제는 아니지만 늦게 자기 때문에 아침잠이 많은 내 입장에서는 가끔씩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적어도 아내는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서 경쾌한 도마 소리로 남편을 깨우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면 말이다. 이런 생각은 부지런하셨던 친정 엄마나 시어머님의 영향이라 생각한다.
아침형 사람에다 부지런하기까지 한 남편은 쉬는 날에도 멍 때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없고 책을 읽거나 글 쓰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남편이 아마도 개미 왕국에 살았다면 개미 중에서도 일개미, 일개미 중에서도 수석 일개미이지 않았을까. 남편의 이런 부지런함은 어머님의 성품이기도 한데-아버님은 뵙지 못했으니 모르겠다-나와는 많이 다른 성향이다.
부지런함 덕분인지, 때문인지 남편은 직장에서 퇴직을 코앞에 둔 지금도 현역 작가처럼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지난달까지 나온 책이 무려 27권이 되었고, 이번 달에도 한 권의 계약을 마친 상태이다 보니 -이건 자랑이 아니라 책망임-무쇠가 아닌 몸이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일 앞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나의 성미도 남편 못지않지만 그래도 나는 간간이 쉬기도 하고 때론 즐기는 것들도 있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는 무작정 늘어져서 푹 쉬어 버리는 날도 있는데 남편은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것을 더 힘들어한다. 이만하면 Workaholic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표현을 남편은 싫어하겠지만 말이다.
일 중독 자체는 정신과적인 병명은 아니지만 완벽을 추구하거나 성취지향적인 사람에게 나타나는 강박관념이라고 한다. 무엇이 이렇게도 남편을 성취
지향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나의 추측보다는 남편 스스로 자신을 끊임없이 성취로 몰아가는 동력을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앞으로 꼭 알아가리라 믿고 싶다-아울러 쉼과 일을 적절하게 배분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다행히 남편은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퇴직 후 지금보다 더 많이 돌아다닐 계획이 있으니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시간만큼 많이 쉬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슬쩍 걱정이 되는 것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에도 침상에서 책을 펼치고 활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쉬지 못하는 성미가 어디 갈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입원하기 전에 짐을 챙기는데 자꾸 자신의 배낭을 가지고 간다기에 왜 그러나 했더니 나 몰래 책을 다섯 권이나 넣어 가지고 갔다. 그러니 병원 침대 옆에서 보호자인 나의 잔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제발 가만히 눈 감고 있어라, 앉아 있지 말고 누워라, 일어날 때 벌떡 일어나지 말아라, 환자답게 굴어라 등등.
이렇게 잔소리해대는 나에게 환자복을 입은 남편은 "당신 진짜 깐깐한 보호자야!"라며 웃었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더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그때는 진짜 책을 가지고 가지 못하게 미리 가방 검사를 샅샅이 샅샅이 해야겠다. 톰과 제리의 추격전이겠지만 진짜 깐깐한 보호자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