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부부의 세계

에세이

by 김경희

오래전의 일이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대학 동창 모임이 있었다. 입춘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지만 추위가 여전히 매서웠기에 두꺼운 코트에 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식당이 있는 건물 입구로 들어서니 엘리베이터 앞에 총무를 맡은 친구가 서 있었다. 친구도 까만색 털 코트에 가죽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웬일로 이런 비싼 식당에서 모이는 거냐”라고 물었더니, 한 친구가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모임 한번 하면 좋지 않겠느냐며 추천했다고 한다. ‘굳이 이렇게 비싼 식당에서 만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 않고 친구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것이니 어디서 만나면 어떻고 무엇을 먹은들 무슨 상관있을까. 그저 한 달 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친구들의 얘기가 궁금했다.


식당 안에는 화려한 샹들리에 밑으로 기역 자로 된 샐러드 바가 있었다. 샐러드 바 위로 해산물, 바비큐, 중식, 양식의 음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뷔페로 차려진 식당에 가다 보면 욕심껏 음식을 먹게 된다. 적게 먹으면 손해를 보는 것 같아 그러기도 하고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맛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사 후에 소화를 시키느라 고생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어서 이번에는 어리석게 굴지 말자 단단히 마음먹었다.


하얀 접시 위에 양 갈비와 차돌박이 샐러드를 담아다 먹고 나니, 안심스테이크와 회가 나왔다. 한 손엔 포크 다른 한 손엔 나이프를 들고 스테이크를 잘라먹고 나니 벌써 배가 불렀다. 친구들도 먹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한 친구가 접시에 과일을 예쁘게 담아 오더니 한 조각씩 나눠 먹자고 내밀면서 다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다.


다들 별일 없이 잘 지냈다는 끄덕임 뒤로 활달한 화영이가 말머리를 낚아채더니

“있잖아. 나 요즘 또 권태기인가 봐. 우리 남편 정말 미워죽겠어.”

라며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우리는 모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또 저러나 싶어

“왜 또 그래. 지난달엔 권태기가 지나간 것 같다더니”

라며 화영이를 놀리듯 말했다.


“글쎄, 어제 있잖아. 태환이 먹으라고 사과를 깎아놓았더니 자기가 다 먹어버리는 것 있지? 어쩜 그러니 아빠이면서. 나는 애들 주려고 준비해 둔 걸 남편이 먹어버리면 정말 싫더라.”

화영이 말이 끝나자마자 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이었다.

“나도 민수 주려고 주스를 따라놓으면 꼭 민수 아빠가 먼저 마셔 버린다니까. 자기 손으로 직접 따라먹으면 되잖아. 왜 민수 거를 먹는지 모르겠어. 진짜.”

현자의 말이 끝나자 나와 친구들은 손뼉을 치며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나도 그래’ ‘나도 그래’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는 그랬다.





아이들이 둘 다 결혼을 해서 요즘은 남편과 둘이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들 딸이 새 가정을 이루고 나니 나보다 먼저 자녀들을 출가시킨 친구들이 ‘너희 이제 다시 신혼이야.’라고 말해 주었다. 그 뒤로 신기하게 친구들 말처럼 많은 일들을 신혼 시절처럼 남편과 둘이서 하게 되었다. 밥을 먹을 때도, 차를 마실 때도, TV를 볼 때도, 산책할 때도 둘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생각해 보면 신혼 때 남편과 이렇게 둘이서 함께 지내본 시간이 얼마나 있었나 싶다. 오래된 기억이라 흐릿해져서 그럴 테지만 짊어져야 하고 이루어야 할 일들이 많아 둘만의 시간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또한,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낳게 되고,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남편보다 아이들 위주로 나의 모든 일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아이들만 죽어라 생각하며 지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제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어은골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나물밥에 된장찌개를 먹었다. 한 끼 식사로 소박한 음식이 이제는 좋다며 다들 만족하다고 했다. 친구들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먹고 나서 속이 편한 음식을 좋아했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에 조용한 찻집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작년 봄에 암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친구가 말문을 열었다.


“애들만 죽어라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일찍 남편에게 신경 쓸 것을 그랬어.”

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식들 결혼시키고 나니 다 소용없더라. 키울 땐 내가 자기들 편만 죽어라 들어줬는데 시집장가가더니 제 마누라, 제 남편밖에 모르더라. 세상 이치 다 그렇다지만 그래도 가끔은 서운하더라.”

갑자기 적막이 흘렀고 나 역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내 맘 몰라준다고 서운해하며 잔소리해대도 그냥 웃어넘기며 내 곁을 지켜주던 사람은 남편뿐이더라”

친구는 한 마디 더 덧붙이면서 결국 참았던 눈물을 주르르 쏟아냈다.

친구의 말을 듣던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너도, 나도 입속으로 작게 웅얼거렸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도 이제야 너하고 같은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하며 친구의 울음이 멈추길 기다렸다.


소중한 그 무엇을 잃고 나서야 아쉬워하는 어리석음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지만 친구의 눈물 속에 담긴 그 몇 마디가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애들만 죽어라 생각하지 말고 남편에게 더 많이 신경 쓸 것을 그랬다는,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뭐니 뭐난니 해도 남편이었다던 친구의 그 말이.


부부의 연을 맺고 동반자가 되어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찌 좋은 날만 있을까. 또 내 마음에 쏙 드는 배우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그저 살아온 세월 속에서 울고 웃으며 넘었던 인생의 고비들, 긴 세월 치열하게 부딪히며 갈고 닦여서 이제는 매끄러운 돌멩이가 된 남편과 아내. 누구의 아빠 누구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서로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핑크빛 사랑의 감정을 넘어선 진한 우정으로 살아가는 아내와 남편. 이것이 흰머리 부부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부부로 살아가면서 주어진 시간 속에서 서로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누며, 의지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부부로 살아갈 것을 굳게 약속하던 첫 순간의 기억을 잊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 들 때나 부유하거나 가난 할 때라도 서로 믿고 존경하며 부부의 도리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한다.’라는 빛바랜 첫 약속을 끄집어내 본다.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까지 친구로서 보호자로서 손잡고 함께 걷는 나이고 남편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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