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필요한 분량이 채워져서 음식 에세이를 마무리 했다. 요즘은 그동안 써두었던 거친 글들을 차례차례 다듬고 있는 중이다. "어디에 쓰려고 써둔 글을 다듬는가?"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맨 처음 할 수 있는 대답은 '글쎄'이고, 두 번째는 투고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물어오는 이 없으니(오늘 처음으로 꺼내는 말이니까 물어오는 이가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ㅎㅎ) 두 가지 대답이 지금으로썬 무용지물이다.
읽을수록 고칠 게 많은 것이 초고라더니 그 말을 실감하고 있다. 요리 에세이는 더 쓸 주제도 있고 더 써도 좋을 음식이 아직 남아 있지만 필요한 만큼 썼다고 생각한 순간 더 이상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요리에 얽힌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도 요리와 이야기를 연결시켜야 하는 작업에도 살짝 싫증이 난 듯하다. 같은 음식만 매일 먹으면 물리는 것처럼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내어 달리며 써 내려가던 행위가 지루해진 탓이다.
100미터를 힘차게 달리고 숨을 헐떡이며 쉬는 운동선수처럼 나에게 지금은 숨 고르기를 하는 시간이다. 그런 시기가 하필 연초와 맞물려서 한 해를 게으르게 시작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러한 이유로 오늘 쓰는 글은 '그냥 쓰는 일상"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나는 달릴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지만 경기가 마쳐지고 나서 다음 경기를 시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이끌려 가기보다 주도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내 안에서 생겨나야 탄력을 받는다.
MBTI 상에서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하며 질서와 결론을 내는데 상대적으로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영역이 있다. 나는 체계적이고 계획한 일을 실천하려고 하는 판단형(Judge)의 점수보다 비조직적인 일을 좋아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열려있으며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계획을 변경할 자세를 갖추고 있는 인식형(Perceiver)의 점수가 약간 더 높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계획 세우는 일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획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안의 그림자 유형으로 판단형의 성향도 들어있기 때문에 2023년에 들어서면서 세운 큰 틀의 계획이 세 가지 있었다. (한 해의 계획 발표를 이제야하게 되다니ㅎㅎ) 계획의 하나는 열심히 노는 것, 또 하나는 도서관에 다니며 책 읽는 활동, 그리고 틈틈이 글 쓰는 한 해로 정했다.
열심히 노는 한 해가 되기 위해서 연초부터 남편과 함께 길게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중에 깨달은 사실은 너무 많이 놀면 질릴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노는 것에 아주 질린 것은 아니지만 노는 일에는 앞으로 약간의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남편과의 대화 내용이다.ㅎㅎ) 하지만 앞으로 어떤 분주함 속에 또 메이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인생은 늘 변화가 있으니 말이다.) 여유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열심히 놀아보자는 생각에는 나도 남편도 변함이 없다.
두 번째 계획인 도서관에 다니기는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날씨가 추운 겨울이라는 핑계(나는 어려서 겨울방학 때는 세수하는 것도 귀찮아했다.ㅎㅎ)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장을 정리하다가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집에 너무 많이 쌓여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책이 장식용으로 전락하는 것은 싫으니 집에 있는 책부터 열심히 읽고 햇살이 따뜻해지는 봄부터 도서관에 다니며 책 읽는 활동을 진행하고 싶다.
세 번째 틈틈이 글 쓰는 일은 어쨌든 매일매일 일기장에 일기도 쓰고 있고 이렇게나마 블로그 포스팅이든 브런치 글이든 가끔씩 발행하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푸른 신호등이다. 하지만 요리 에세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음에 써나가야할 주제를 어떤 주제로 잡을지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여러 장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상황인지라 방향 정하기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시간은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여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 그러니 일 년은 하루로 시작해서 하루로 연결되며 하루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 년에 일 년이 더해지고 또다시 일 년이 더 해지다 보면 나이가 점점 많아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요즘 몸이 이곳저곳 약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 진료를 받으러 다니기도 한다.
70대도 아니고 80대도 아닌 나이에 나이 타령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제2막이 시작된(2막의 시작을 나는 회갑으로 보고 있다.) 이후로 나에게 주어진 오늘, 나에게 주어지는 매일을 어떻게 잘 살아낼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밋밋한 하루도 분주한 하루도 나답게 잘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농익은 2막의 삶이 될 것 같으니 말이다.
내 주변에 나와 같이 2막 인생을 시작한 사람 중에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놀기에도 바빠 죽겠다는 사람도, 자식들을 위해 시간과 정성과 온 에너지를 쏟고 있는 사람도, 이곳저곳을 떠돌며 방랑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도, 뭐 하지?라며 매일매일 고민하는 사람도, 종교에 심취해 성찰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어느 누구의 삶의 방식이 옳고 그릇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자신의 형편에 맞고 나답게 잘 살아내면 그만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끌어 주려고 애쓸 일도, 이끈다고 끌려다니는 일도 성숙한 자세는 아닐 것이다. 그저 각자의 하루하루를 스스로 잘 살아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건강한 체력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매일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 새로운 곳으로 잠시 훌쩍 떠날 수 있는 가벼운 상태를 유지하기, 나와 같은 연배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독서와 토론하는 일도 포함), 매 끼니 정갈한 음식을 몸에 넣어주는 일, 매 순간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는 자세, 때때로 나의 가족과 형제와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순간,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약간의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들이 바로 나의 일상 속에 채워나가고 싶은 것들이다. 출세욕과 명예욕과 물질에 대한 욕망과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매일매일 1g씩 덜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