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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Sep 09. 2020

82년생 김지영과 명절증후군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나서......


들판에 곡식 익어가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사삭거린다. 조랑조랑 때죽나무 열매 맺히듯 무거워진 벼 이삭의 고개 숙임은 부끄러워하는 새색시의 수줍음을 닮았고, 밭이랑을 지키는 키다리 수숫대는 휘어진 허리를 붙잡고

커피색 수수 알을 지키느라 보초를 선 군인 아저씨 같다.



뜨거워진 프라이팬 위에서 달달 볶이던 멸치마냥 헉헉댔던 여름 뒤로 어김없이 찾아온 곡식 익는 계절은 고개 숙인 겸손함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가을이 오고 있으니 홀로 있어 보라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이렇게 가을 앞에선 너도 나도 고개 숙이며 발그레이 익어가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치켜세우며 춤을 추고 있는 억새풀의 춤사위만큼은 "나는 결코 아직은 익지 않겠다"라고  반항하는 사춘기 소녀들 같다. '지들도 추운 겨울이 오면 풀어헤친 머리를 늘어뜨리며 부드러워지겠지."



때를 놓쳐 보지 못했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봤다. 어젯밤에 남편하고 둘이서 안방극장에서. 82년생 김지영은 평범한 가정주부의 이야기다. 꿈을 키우며 커리어 우먼이 되고자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경력 단절이 된 마흔 살의 새댁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담담하게 그려졌다.


이 영화는 소설로 먼저 나온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개봉 전부터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진 82년생 김지영은 육아와 가사노동과 자신의 일을 병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 김지영이 아이를 낳고 산후 우울증으로 인해 가끔씩 빙의가 되어가는 상황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툭툭 내뱉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오빠들을 위해 배움의 혜택을 못 받고 청계천에서 미싱을 돌리다 손가락을 다친 엄마를 둔 딸이었으며, 본인은 남들처럼 배울 대로 배웠지만 아이 양육을 위해 사회생활을 포기한 육아맘이며 또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적인 며느리였다.



영화 속 이야기들은 마흔 살의 82년생 김지영 보다 예순 살 즈음의 여성들이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자 도회지에서 자란 세대보다는 시골에서 자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더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영화가 끝난 것 같지 않았다. 그만큼 잔잔하게 만들어진 영화였다. 큰 감동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어디에나 있을 법한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단지 82년생 마흔 살 김지영의 이야기이기가 아니라 김지영이 72년 생이나 62년 생이었다면 더 실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마흔 살의 며느리들은 김지영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얘깃거리가 될 많은 장면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어떤  한 장면을 가지고 남편과 얘기를 했다. 이야깃거리로 끄집어낸 장면은 바로 명절에 관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가지고 남편과 얘기를 나누게 된 동기는 우리의 현실이 곧 추석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랬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며느리를 맞이해야 할 상황이 되어서 그랬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82년생 김지영은 추석 명절이 되어 시댁에서 머무르며 이 일 저 일 가사 노동을 평소보다 많이 한다. 추석 당일이 되어 설거지를 마치고 친정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 시누이 부부가 들이닥치며 친정으로 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친정으로 가야 하는 시간에 가지 못하게 된 김지영은 친정엄마로 빙의되어 자기 시어머니에게 사부인! 우리 지영이도 친정 가고 싶어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남편은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우리 앞으로 꼭 명심합시다"라며 우리는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 집이니까 명절 때 아들, 딸, 며느리, 사위를 한자리에 모아서 한꺼번에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고 했다. 가족끼리 다 같이 모이는 날은 일 년 중에 따로 날을 잡아서 모이고 명절에 아들은 며느리 따라 일찍 처갓집으로 보내주고 딸은 시댁에 갔다 친정에 돌아오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말이다.


사실 명절에 아들만 둔 집이나 딸만 둔 집은 이러한 점들이 문제 될 일은 없다. 다 같이 보내고 다 같이 맞이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들, 딸이 섞여 있는 집들은 이 문제로 많이 싸우고 힘들어한다. 나도 사실 명절에 시댁에서 돌아오는 시누이들을 맞이하고 가느라 늘 친정에 늦게 갔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본인이 바꿀 수 없는 집안의 정서 때문에 명절 때마다 나에게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굽신거리곤 했다. 그나마 시누이 넷과 함께 명절을 지내주느라 언제나 명절이 지나고 나서야 친정 나들이를 했던 우리 올케언니 덕분에 남편은 처갓집에서 어깨를 펼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는 양가 부모님이 모두 세상에 안 계시니 그동안 명절 한 달 전부터 찾아오던 명절 증후군이라는 단어도 나에게선 멀리 떠나갔다. 하지만 새로운 명절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전환점에서 남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여본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이번 추석 명절에는 서로 모이는 것을 자제하자는 집안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올해 만이라도 추석에는 그동안 명절 증후군을 앓아온 이 땅의 모든 김지영들이 가벼운 맘으로 즐거운 추석을 맞이했으면 참 좋겠다. 또한 앞으로는 코로나를 계기로 새로운 추석 문화가 우리 삶으로 들어와 명절증후군 백신이 되어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사멸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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