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정년퇴직을 했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부었던 일터를 훌쩍 떠나온다는 것은 기회일 수도 위기일 수도 있다. 누구는 퇴직 이후의 삶이야말로 2막 인생이 새롭게 열리는 것이니 그동안 직장에 메여 할 수 없었던 일을 실컷 하면 된다고 말한다. 또 누구는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 두려워서 어떤 일이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남편보다 먼저 일을 그만둔 나는 여유로운 시간이 주는 유익함 속에서 휴식하며 3년을 지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를 맛보았다.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을 이제 퇴직하는 남편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아가 이제부터는 우리 부부가 함께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정감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퇴직 후에 줄어드는 소득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수입은 줄어드는데 그동안 지출했던 항목들이 퇴직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남편은 교육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퇴직한 이후 바로 연금 수령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국민연금 대상자로 연금을 수령하려면 아직도 1년 하고도 2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니 경제적인 위축감이 찾아올 수밖에.
다행히 남편과 나는 재테크를 해서 큰돈을 모아 두진 않았지만 빚이 없는 상태이고, 아이들 둘 다 결혼해서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큰돈 들어갈 일은 없다. 네 분 부모님들 또한 모두 돌아가셔서 부양의 의무가 없고 비바람 피할 수 있는 집이 있으니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나이 들어서 가장 지출이 많아진다는 의료비 또한 실비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니 연금액수에 맞춰 가정경제만 잘 꾸려나가면 될 것 같다.
욕심을 부리자면 한이 없겠지만 소소한 삶에 만족한다면 퇴직 후의 삶이 그다지 문제 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역할과 정체성을 잃게 된다면 심리적인 불안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또한 새로운 일상 패턴과 시간 배분 등을 조율하면서 이에 대한 적응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아울러 가정 내에서 남편과 아내가 역할 분담을 변경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만족스러운 노후생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퇴직한 부부가 좌충우돌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 보려 한다. 누구나 세월은 비껴갈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 부부의 선 경험이 후경험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물론 우리 부부의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삶'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아주 작은 돌멩이만큼의 도움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삼식 씨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는 제목으로 글을 쓰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그런다. "왜 남자들만 삼식이냐고. 여자들도 하루 세끼를 먹으면 삼식이인데." 남편의 말을 듣고 생각해 봤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는 남편을 삼식이라 부른다. 아내의 입장에서 하루 세끼를 차려야 하는 고단함 때문에 영식이에서부터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남편의 반론대로 남편의 입장에서 바라본 삼식이는 삼식이라기보다 삼순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고 싶다. 남자와 여자의 분별이 명백한 사회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부터 '삼식이와 함께 사는 삼순이의 이야기' 우리 부부의 일상과 여행, 휴식, 재정관리, 운동, 취미활동, 갈등, 일 이야기까지 나이 들어가며 익어가는 과정을 <삼식 씨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에 생생하게 담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