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으로 차가운 공기가 살갗을 스치는 가을이 오니 날마다 기분이 상쾌하다. 아직도 한낮에 내리꽂는 햇살은 등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하지만 말이다. 가을이 오면 그이와 함께 퇴직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어느 나라를 가야 좋을지 생각했다. 이전에 가봤던 나라 중에 느낌이 좋았던 나라로 갈까 아니면 가보지 않은 나라로 가볼까 고민하다가 가보지 않은 나라가 있는 북유럽으로 가기로 했다.
문제는 여행 방법이었다. 그동안 자유여행을 다녀보기도 하고 패키지여행을 다녀본 결과 서로 장단점이 있었다. 자유여행은 그야말로 자유를 보장받는 여행이다. 여행지에서 내가 가고 싶은 장소에서 시간을 맘껏 사용할 수 있고 구속 없이-물론 동행자의 애교 있는 구속은 있지만- 내 맘대로 훨훨 나는 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야 할 일정을 스스로 짜며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사전 지식을 충분히 공부해야 한다. 또 묵어야 할 숙소와 끼니마다 어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야 좋을지 맛집도 찾아내야 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일 등등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특히 식사 메뉴를 정하는데 입맛이 다르다 보니 서로를 만족시켜줄 음식점 찾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일 때도 있어서, 어느 때는 여행 기간 내내 여행지에서 즐기는 시간보다 먹을거리 찾아다니는 시간이 주를 이룰 때도 있었다. 우리는 먹고살아야 하는 존재니였으니까 말이다.
반면에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여행은 가고 싶은 나라가 있는 여행 상품을 고르기만 하면 많은 것을 여행사에서 대행해주니 여행 전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별로 없다. 내라는 돈만 내면 되고 준비하라는 항목대로 여행할 때 필요한 옷가지며 물건들을 챙기기만 하면 된다. 비행기부터 입국 출국할 때까지도 가이드의 안내가 있으니 그야말로 어린애들이 엄마를 따라다니듯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면 된다. 여행지에선 버스에 태워 나라마다 유명하다는 명소 앞에 내려주고 버스 기사가 여행 가방까지 차에 실어준다. 또 식당이나 숙소도 일률적으로 배정해준다. 버스 타고 달리다가 내려주는 곳에서 구경하고, 밥때 되면 밥 먹고, 잠자는 일정이 반복되니 여행 중후반으로 갈수록 사육당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하지만 들리게 되는 명소마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시간이 많으면 한 시간 반, 어떤 때는 그날의 일정에 따라 30분 미만의 시간이 주어지기도 하니 그야말로 여기 찍고 저기 찍는 식의 여행이 된다.
젊을 때는 자유여행이 부담되지 않는데 나이가 들수록 힘들다. 우리 부부도 이제는 흰머리가 소복하게 내려앉기도 했고, 우리가 가려고 결정한 북유럽의 나라들을 둘러보기에는 패키지 여행이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신경 쓰지 않고 여행 기간 내내 가이드에게 사육당하고 싶었고, 북유럽 상품들은 쇼핑센터를 방문하는 코스가 전혀 들어있지 않아서 망설임 없이 여행사에 계약했다.
우리가 선택한 북유럽 여행 상품은 세미 크루즈 여행이 포함되어 있어서 크루즈 여행에 대해 로망이 있었던 그이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여행할 나라는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와 아주 자그만 나라 에스토니아 탈린의 구시가지를 살짝 구경하는 코스였다. 자유여행만을 고집하는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는 이렇게 빡빡한 일정의 여행을 감당할 수 있겠냐며 걱정했지만, 우리 부부는 ‘물론이지’를 외치며 여행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물심양면으로 아이들의 지지를 받은 우리는 까반 밤 11시 5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가 사는 전주는 인천공항으로 비행기를 타러 가려면 꼬박 3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이런 점이 여행할 때마다 불편해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출발해야 하는 여행을 계획할 땐 달갑지 않기도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가을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