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환한 햇살이 맑은 공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에 헬싱키에 도착했다. 코펜하겐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차창으로 보이는 헬싱키의 첫인상은 깨끗함 그 자체였다. 북유럽의 나라들은 모두 청정 지역이다. 하얀 자작나무까지 많아서 북유럽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하얀색이라 말하고 싶다. 헬싱키 역시 공기가 맑고 깨끗해서 신선함이 물씬 풍겨왔다.
아침에는 기온이 3도 안팎으로 뚝 떨어져서 그이와 함께 호텔 건너편에 있는 숲속을 잠깐 산책할 땐 두툼한 점퍼를 입었다. 하지만 한낮엔 20도까지 올라가니 걸을 때 더워서 점퍼를 벗어 허리춤에 메고 다녔다. 어제까진 흐린 날씨가 이어지면서 비도 간간이 살짝 내렸었는데, 오늘은 하늘이 파랗고 서늘한 바람이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한들거리며 여유롭게 춤추고 있었다. 아!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핀란드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보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건물이 많지 않은 나라라고 한다. 오랜 기간 덴마크와 스웨덴,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기도 하지만 세계 2차 대전 당시 국토 전체가 초토화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지혜를 발휘하면서 국민이 단합해 강대국을 상대로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가 되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복지 국가로 부상했단다.
은근과 끈기의 나라, 정직성 하나는 끝내주는 나라, 무민, 자일리톨, 순록, 그리고 사우나로 유명한 나라를 방문하고 보니 왠지 멋짐 주의보가 어디선가 발령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헬싱키에서 만난 핀란드 사람들이 되게 멋있어 보였다.
‘발틱 해의 아가씨’라는 청순한 별명을 지닌 헬싱키의 건물들은 대부분 단순하면서도 깔끔함 그 자체였다. 사람들의 모습은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소박하고 수수한 모습이었는데 무엇보다 거리마다 여유로움이 가득해 보이는 것은, 수수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미학이 토해낸 결과물 같았다.
버스가 우리를 헬싱키 원로원광장 앞에 내려주었다. 광장에서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건물은 북유럽 최대 규모의 핀란드 정교회 대성당인 헬싱키 대성당이었다. 성당 건물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건물이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마치 하늘의 천사들이 은빛 날개를 달고 내려와 대성당 안을 가득 메우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이와 나는 대성당 위로 올라갔다 내려와 성당과 연결된 계단 위에 앉아 곱게 부서져 내리는 햇살 아래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대성당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 재깍거리며 말을 타고 달리듯 달아난 후에 헬싱키 대성당과 색상 면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우스펜스키 성당으로 향했다. 비잔틴 슬라브 양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성당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시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라고 했다. 양파 모양으로 된 지붕, 꾸뽈라와 첨탑은 반짝이는 금으로 덮여 있었고, 건물 전체는 붉은색 벽돌로 둘러 있었다. 성당 내부 제단 벽에는 천연물감으로 그려진 성화가 금으로 테두리를 두른 커다란 액자 안에 보존되어 있었다.
우스펜스키 성당에서 내려와 헬싱키 관광명소인 마켓 광장에 들렸다. 여행할 때의 시장 구경은 소소한 즐거움을 가방에 넣어 준다. 마켓 광장에 있는 여러 상점 중에 특히 베리류가 가득한 과일 상점에 들어가 납작 복숭아를 찾았다. 하지만 복숭아가 없어서 채리 한 봉지를 샀다. 과일 좋아하는 마누라 먹이려고 그이가 헬싱키에서도 지갑을 연 것이다. 나는 딸이랑 며느리에게 주려고 보들 거리는 밍크 테슬 두 개를 사고 헬싱키 중앙역이 보이는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며느리가 헬싱키에 가면 꼭 들려보라고 했던 상점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렸으나 찾지 못했다. “찾았다”라면서 사진 찍어 보내면 며느리가 좋아할 텐데 아쉬웠다. 아쉬움을 머금은 채 핀란드 사람들의 보폭에 맞춰 마네르하임 거리를 한참 거닐다가 시간에 맞춰 모이기로 한 장소로 돌아왔다. 우리와 함께 여행하는 일행분들은 진즉 버스에 올라타고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아니 우리가 늦은 건가? 하는 착각이 일어 손목시계를 보니 아니었다. 이 사람들 왜 이러지? 헬싱키에 우린 처음인데 여러 번 와 본 건가? 우린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시간이 모자라 빨리 걷다 보니 땀까지 삐질 났는데 말이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는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시벨리우스공원을 향해 서서히 미끄러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