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를 북유럽의 꽃이라고 부르는 여행자들이 많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꽃이 많이 피는 나라라서 그런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노르웨이를 북유럽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버스를 타고 노르웨이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산악지대를 지나가다 보니 '여기가 정말 지구 맞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이에게 물었다."우리 행성 여행하는 것 같지않아?" 그이가 대답했다. "그러게 목성? 토성?아니면 안드로메다?" 그러고 보니 정말 우리가 잠시 우주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실제로 노르웨이의 산악지대는 은하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촬영지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었다.
노르웨이는 높고 가파르며 험한 지형과 차갑고 혹독한 기후, 천연자원이 매우 부족한 나라라고 한다. 이런 자연조건은 끈질긴 인내심과 풍부한 상상력, 지칠 줄 모르는 모험심을 가진 노르웨이인들의 기질을 길러냈다고 하니 인생은 진짜 새옹지마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여행 중에 만난 노르웨이인들의 모습은 바이킹의 후예답게 호기로워 보였다. 큰 키에 큰 머리, 머리카락은 금발에 눈동자는 파란 보석을 박아놓은 것 같았다. 덩치가 크다 보니 힘도 아주 세 보였다. 예로부터 주변국들은 노르웨이에 살았던 바이킹들을 숲에 사는 유쾌한 사람들, 춤과 노래를 즐기며 장수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던데 표정들은 다들 무뚝뚝해 보여서 유쾌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빙하가 녹아내리며 만들어낸 피오르드는 좁은 협곡이었지만 거대한 유람선이 오갈 정도로 수심이 깊었다. 호수의 깊이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물색은 짙푸른 색이었다. 배를 타고 노르웨이 피오르드의 꽃이라 부르는 게이랑에르 협곡을 타고 이동했다. 그이와 나는 배가 지나간 자리 위로 넓게 퍼지는 하얀 물거품을 바라보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내리쬐는 햇살을 마주했다. 햇빛이 굴절되며 산허리에서 호수 위로 반짝이며 흘려내렸다. 호수 위를 유유히 지나온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은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처럼 커다란 배를 다소곳하게 품어주었다. 선착장 주변으론 옥빛으로된 물줄기가 산기슭 밑으로 낮게 흐르며 종알대고 있었다. 물색은 어린 시절 담벼락에 선생님 흉내를 내며 낙서하던 푸른 곱돌과 같은 색이었다.
요정의 길을 따라 올라가는 달스니바 전망대에 가기 위해 우리와 함께 배를 타고 온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운전기사가 곡예를 하듯 좁은 오르막길을 구불거리며 올라갔다. 창밖을 내다보던 그이가 아찔하다며 움추리는 시늉을 했다. 요정이 진짜 있기나 한지 모르겠지만, 요정의 길이 좁고 험하며 높은 곳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요정의 몸무게는 몹시 가벼울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그이와 나는 산허리를 가파르게 오를 때 간이 설설 녹을 것만 같아 손을 꼭 잡았었는데 전망대에 다다르자 손을 놓고 “와!”하는 소리를 내며 감탄했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푸른 호수와 뵈이야 지방에 쌓인 하얀 빙하, 여기저기 작고 큰 피오르드가 보였다. 사진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풍경 앞에서 노르웨이에선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났다. 이렇게 거대하니 어떻게 프레임 안에 다 들어갈 수 있을까. 그이와 나는 사진 찍는 것도 잊고 마치 달의 표면이나 수성, 금성 혹은 안드로메다의 표면 같아 보이는 산자락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들이 많이 녹아내려 지금은 빙하를 볼 수 있는 곳이 드물어졌다고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빙하를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보다는 환경을 지켜내지 못한 인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산악열차인 플롬 열차를 타고 뮈르달 구간까지 오를 때는 로맨틱한 시간이었다. 시간을 돌려 발전 초기의 옛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이는 약간 실망스럽다고 했다. 산악열차 타는 비용이 우리나라 돈으로 1인당 15만원이 넘었으니 많은 기대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이가 어떤 기대를 했을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나까지 감흥이 깨져버릴까봐. 남자와 여자의 관점은 여행할 때도 다른 모양이다.하기야 어디 남녀 뿐이랴, 우리는 모두가 다른 느낌 다른 관점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오슬로로 향하다가 잠시 들린 노르웨이의 한 동네에 나무로 지어진 교회당이 있었다. 바이킹 족의 전통양식으로 지었다는 전통교회당은 800년 이상 된 목조 건물이라고 하는데 지붕 끝이 뾰족하고 마치 중국의 성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모양이었다. 아직도 예배드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는 이 교회당은 유구한 세월 속에서 익어간 모습이 무척이나 고풍스럽게 보였다.
우리가 들렸던 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자 교인들은 전통의복인 하얀 블라우스에 까만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남자 교인들은 까만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다양한 색의 나비 타이를 메고 있었다. 조상들이 지어놓은 오래된 교회당에서 전통 복을 입고 예배드리러 나온 그들의 모습은 숙연해 보였다. 교회 뒷마당과 앞마당엔 부모님들의 무덤이 있었으니 그들은 매주 예배하러 나오면서 부모님의 넋을 기리고 조상의 발자취를 밟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도착해서 가장 인상 깊은 장소는 구스타프 비겔란이 만들었다는 조각 공원이었다. 마치 이번 여행의 답을 내려주듯 -질문을 가지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지만- 공원에 설치된 200여 점이 넘는 조각품들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주제 아래 놓여있었다. 남녀노소를 통해 생로병사와 인간의 본성을 다룬 작품들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인생의 단계들을 세밀하게 표현해 놓았다고 한다. 망치와 끌을 들고 일생을 바쳐 돌을 깨며 작품활동에 전념했던 구스타프 비겔란이 위대해 보였다.
우리가 가던 날 마침 오슬로 시청사 주변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이는 신기한 듯 마라톤에 참석한 사람들을 구경하려고 목을 길게 내밀었다. 그이도 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우리 집 삼식 씨는 자신이 언제나 청춘인 줄 알고 지내는 사람이니 노르웨이 사람들과 함께 달리고 싶었을 것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일 년에 서너 차례씩 나라에서 열어주는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여 체력을 단련한단다. 나이 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서부터 젊은 청춘 남녀들까지 시내를 힘차게 질주하는 모습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을 보장받는 활동 같아 무척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