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과의 연애 #2.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증상들이 전형적이었다.
'이 사람은 아니야'라고 믿고 싶었을 뿐.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확실히 확인한 나.
반면 그는 '나'라는 사람에게 어떠한 이성적 관심도 없는 상태였다.
"어디 사세요?" 라는 나의 질문에
"어디 살아요." 라는 짧막한 대답을 하곤
나에게 뭐라도 되묻는 대신, 이내 자기 할 말을 이어갈 정도로.
하지만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포기란 없다.
그의 온도와 반응에 맞춰, 서서히, 천천히, 쟁취하리라.
"무려 17시간!!!!!!
애타는 17시간이 걸려 민규님 카톡 연락처를 다 받네요!!
감사합니다아아 꺄하하하하 >ㅁ<
(깨방정 떨며 움직이는 이모티콘)"
나는 그의 무반응에 아랑곳 안하고,
그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오히려 너무 진지하지는 않게
나의 넘치는 밝음과 에너지를 자제하지 않고 공격했다.
지나칠 정도로 건조하고 짧은 '방패형' 답장에 맞서 보낸
나의 두드림은 단 두 세 번이었다.
단 하루 만에, 우리는 확신의 썸남 썸녀 모드가 되어
다음 모임에서 다시 만나기까지 일주일 동안
마치 '펜팔' 연인이 되어 서로를 알아갔다.
정말 이상했다.
직전 오프라인 만남에서
우리는 (나 혼자의 몰래 느낀 호감 외에는) 남녀로서 그 어떠한 교류도 없었는데
갑자기 카톡으로 시작된 사랑이라니.
그런데 상대방을 먼저 좋아해,
결국 썸남으로 쟁취한 나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너무 쉽게 와줬다고 해서, 싫어할 건 없지 않은가?
오히려 좋아!
조금 낯선 속도와 낯선 방식이지만,
이상한 이 느낌을 뒤로 하고
그저 설레는 맘으로 그를 알아갔다.
일주일 후 만남에서 그는, 나를 보자마자
'지난 모임과 같은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정말 잘해줬다.
시시콜콜 나를 챙기고, 하루종일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사랑이 이렇게 쉬웠던가?
나야 좋지!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그 다음날, 우리는 1:1로 첫번째 데이트를 했고,
또 며칠 뒤 우리는 두번째 데이트를 했고,
그 날 그는 연인이 되자고 고백했다.
결혼을 생각하는 서른 둘 여자로서,
공식적으로 연인이 된다는 것에는 꽤나 신중한 결정이 필요했기에
'이 짧은 두 번째 만남 만에 고백이라니',
다소 빠른 전개로 느껴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 뭐, 내가 먼저 좋아한 사람이 나에게 고백해주니,
거절하거나 미룰 이유는 없었다.
(사실 평소라면 좀 더 만나보며 알아가보자고 했을텐데,
내가 먼저 '호감을 표시한' 상대가 이렇게 빠르게 고백하는 경우는 첨이라, 적절한 대처법을 몰랐던 것 같다.)
이후, 그는 내가 느꼈던 의아함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내 이상형 조건이 세 개거든?
- 경제 관념이 있을 것, 대화가 잘 통할 것, 외적으로 끌릴 것.
첫 번째, 두 번째는 해결됐고,
외적으로 끌리는지만 다음 모임에서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그 날 너가 들어올 때, 1초만에 확인됐어.
그 때부턴 뭐, 나도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
사실 카톡 외에는 1:1로 대화를 해본 적 조차 없는데
대화 부분이 어떻게 해결이 되었다는 건지 정말 의아하긴 했지만,
외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나는 상대와
카톡으로 무르익은 썸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정말 의아하긴 했지만,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결론적으로는, 오히려 좋아!
나는 몰랐다.
그에게 나는, '너가 이래서 좋아'가 아니라,
'굳이 막을 이유 몇 가지가 없네' 였다.
그에게 사랑은 'why not?' 의
무지성 기다림이었다.
애정 결핍형 인간.
그들에게 '사랑'의 의사결정권은 스스로에게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성에게 먼저 다가가본 적이 없다"
"애초에 좋아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라고 대답하며,
이성이 먼저 다가오면, 그들의 마음 속 그린라이트가 발동하는 동시에
본능적으로 '아니야, 아닐 거야'라는 방패막을 세운다.
차갑게 경계하나, 이내 그 방패막을 뚫고
확신의 그린라이트로 톡톡 찌르면
유약하게 무너져내려 벅찬 속도로 포문을 연다.
(아, 물론 why not은 갖췄다는 전제 하이다.)
그는 마치 한동안 굶주리고 굶주린 배를 채우듯
허겁지겁 달려들어 집어먹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가 고백하는 자리,
"사실 오빠가 큰 흠이 있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나는 그가 정해놓은 진짜 사랑의 절대적 조건의 시험대에 올랐다.
그렇게 시작됐다, 나의 위험한 관계.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