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과의 연애 #3.
지는 석양, 시원한 바람, 적당한 온도,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걷는 우리.
우리의 두 번째 데이트, 모든 것이 완벽한 분위기였다.
달달한 대화 속, 잠깐의 정적.
그리고 그가 입을 열었다.
"고백하기 전에, 고백할 게 있어."
"사실, 나한테 큰 흠이 하나 있어."
"사실, 내가 이혼을 했어.
식은 안올렸고, 아이는 없어."
아,
이게 무슨 말인가.
어지러웠다.
내가 고르고 고른 사랑,
'이 사람인가?' 싶었던 이 사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이거였구나,
그저 무지성으로 나를 받아들인 게
이거 때문이었니?
반대다. 정확히는 그 반대이다.
결핍의 사랑은 '원래' 무지성이다.
인과관계를 정확히 따지자면,
그 무지성 때문에, 그가 말하는 '흠'이 생긴 것이다.
그는 과거의 뼈아픈 이혼 과정을 겪으며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나와의 첫 데이트에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고, 그 과정에서 또 성장했다고 말하던 게 이 일 때문이었구나.
이제 퍼즐이 맞춰진다.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이미 사랑의 도파민으로 가득찬,
아니,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아니, 절규로 가득찬 유약한 동물이었을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여자쪽에서 경제적 요구를 계속했고,
그래서 이혼 소송을 했다"는 짧막한 설명을 끝으로,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봐"라는 그의 말에
나는 설명이 명확히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이 고백의 자리에서 굳이 이것저것 따져묻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첨 겪는 이 혼란 속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한 가지, "지금 얼마나 회복했냐"는 물음에
"1년의 소송과정을 포함하여 지난 3년의 뼈아픈 회복기간을 거쳤으며,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는 그.
나는 그에게 말해줬다.
"괜찮아.
그건 흠이 아니야. 누구나 실수를 하고, 때론 흔적을 남기는 것들이 있지.
어떠한 형태의 흔적이 남았다고 해도,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나에게는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시작을 막을 요인은 아니야'라는 뜻의 나의 그 말이
그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형성하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너무 놀라 미처 물어보지 못했지만,
이윽고 떨어져있는 며칠간
혼란 속 수많은 생각과 의문이 복잡하게 머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혼 이야기가 참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인만큼,
그에게 일상 속 틈나는대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관계가 조금 진전되면
한 번 날 잡고 많이 물어보며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두 번째, 세 번째, 네번째 만남... 만날 때마다 놀라울만큼 아무렇지 않게,
만날 때마다, 만나자마자, 결혼, 이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덕분에, 나는 비교적 쉽게 그의 이혼 경험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나는 안맞는 사람과 '왜 이혼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안맞는 사람과 대체 '왜 결혼했는지'가 궁금했고,
그와 사귀고 첫 번째 데이트에 물어보았다.
이 조용한 카페의 시공간을 멈추고
혼자만의 생각을 가지며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인을 저질러도,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았어.”
그는 이어서 말했다.
"음.. 그리고 내가 잘못한 것에 '괜찮다'고 말해줬어.
난 어릴 땐 잘못하면 항상 혼났는데..... 그게 많이 컸어."
도대체 '당신이 가진 어떤 부족함' 때문에
결혼이라는 중대한 의사결정에 큰 실수를 했는지,
이제는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묻는 나의 질문에
나온 그의 대답은, 질문의 의도파악은 안된 대답 같았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나의 질문에 충분히 대답을 해줬다.
그리고 그걸 들으면서 깨닫진 못했다.
그의 지난 실수, 그리고 오늘의 나.
두 번의 사랑을 시작한 방법이 정확하게 동일하다는 것을.
결핍의 사랑의 매커니즘은 변하지 않는다.
WHY NOT으로 시작되고,
"이런 나라도 괜찮겠니?"로 공고하게 완성된다.
그는 나와의 설레는 첫 데이트에
정신과 치료 이력을 늘어놨고,
두 번째 데이트에 '큰 흠'이 있다며 이혼 사실을 고백했다.
"이런 나를 받아줄래?"에 "YES"라는 대답은
그를 무장해제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 이면에 숨겨진 사실은 따로 있다.
그렇게 완성된 절대적 믿음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기는 순간,
그러니까 '언제나 내 편은 아닐 수도 있다'는
찌를듯한 불안함은 그를 집어삼킨다.
정확하다.
'아니야, 이사람은 다를 거야(제발)'을 아무리 되뇌어도,
정확하다.
정확하게 예측 가능하게 이어졌다.
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