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과의 연애 #4.
'너의 흠을 받아들이고, 네 편이 되어줄게'
결핍의 절대적 사랑을 형성하는 공식에
균열이 생기면, 그 세계는 무너진다.
그와 연인이 되고, 세 네 번 째 데이트였을까?
언제나처럼, 이혼과 결혼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는
나의 신중함과 조심스러움이 무색하게,
그는 언제나처럼
만나자마자, 저녁식사를 하러 자리에 앉자마자,
식사가 채 나오기도 전에
역시나 이혼 이야기를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그날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해 볼 수 있었다.
귀에 때려붓는 그의 이혼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으며
간신히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공원을 좀 걷자며,
우선, 아무래도 그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부터 정정하며 시작했다.
"그 있잖아, 내가 오빠 이혼했던 거, 괜찮다고 했잖아.
'받아들일게, 오케이 땡-' 이라는 뜻이 아니야.
그게 될 수가 없잖아.
적어도 시작을 막을 요인은 아니고, 앞으로 잘 알아보자는 거지.
내가 이성적으로 모든 이유를 듣고, 받아들이고,
또 감정적으로도,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지금 당장은 나도 알 수 없어.
앞으로의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이어갔다.
"내가 이혼이 흠이 아니라고 했잖아.
근데 그거는 누구 한명이 절대적인 잘못을 저지른 경우,
대표적으로 '불륜' 같은 사건을 저지른 경우,
흠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겠지.
그 외의 모-든 경우는,
상호 갈등해결의 실패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궁금해.
오빠는 결혼이라는 중대한 의사결정을 어떤 식으로 했으며,
어떤 식으로 갈등조절을 시도했길래, 왜 실패해서 헤어졌는지."
담담한 표정으로 듣는 그.
항상 어른스럽고 무해한 그의 얼굴 그대로였다.
그 얼굴을 볼 때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무너졌다.
그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그는 입을 열었고,
서른 일곱 한 남자의 진짜 내면을
여실히, 투명하게 보여줬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구나.
근데 말이야, 오빠가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건,
'경제 관념'도 너가 말한 잘못이 맞아. 정말 커.
정말, 정말 큰 잘못이야."
특유의 세상 자상하고 무해한 말투로, 그는 시작했다.
"있잖아, 만난지 20일이 됐을 때, 기념으로 폴로 옷을 선물을 주더라고.
그 20일 같은 거 챙기지도 않잖아. 그, 그치?
근데 그 폴로는 엄청 비싼 거잖아. 명품이잖아. 그, 그치? (무해한 웃음)"
놀랍게도 나는 돌연 그의 지난 20일 선물을 들어야 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폴로는 명품이다?
"나는 있잖아, 몰랐어.
그리고 처음부터 자기 연봉도, 재정 상태도 전부 다 거짓말이었어.
걔가 연봉 5천만원이라고 했던 것도 다 거짓말이었고,
나중에 원천징수 보니까 연봉이 1,600만원인 거야. 1,600만원.
아니, 1,600만원이었다니까?"
언제나처럼 그의 말은 항상 앞, 뒤, 맥락이 없었다.
돌연 그녀의 놀라운 연봉을 알아야 했다.
곧 출생일시와 호적 정보까지 나올 기세였다.
"그리고 내가 걔네 집 빚을 알고 다 갚아주고 나서부터,
쇼핑 중독이 더 심해졌어. 그, 택배를 계속 시키더라고.
그 있잖아, 그 택배, 뜯으면 비닐 있잖아?
비닐을 안뜯고 옷장에 다 넣어.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거든? (인자한 미소)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걸 그상태로 (미소) 계속 넣어."
이번엔 연봉에 이어, 돌연 그녀의 쇼핑과 보관 행태도 알게 되었다.
어디까지 더 들어야 하는가.
하지만 나는 그를 멈추지 않았다.
공감왕답게 '응~ 그래~'를 반복하되 어딘가 영혼 없는 나의 건조한 리액션에
그는 더 필사적으로 계속했다.
"내가 '착한 아이 증후군'이란 것도 걔가 말해줘서 알았어.
착한 아이 증후군 때문에 내가 거절을 못하는 걸 이용해서, 계속해서 명품을 요구했어.
그의 말투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흥분도 고조도 억울함도 없다.
차분하고 느릿-하면서, 조금씩 더듬기도 하는
세상 무해한 말투.
그 무해한 말투로 그는 1시간에 걸쳐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걔 탓이야."
결국, 그것인가?
음, 그것보다 더 날 것의 심리는 이러할 것이다.
"너 내 편이라며, 내 편들어줘.
[괜찮아, 다 걔 잘못이야.
괜찮아, 오빠는 잘못 없어.]라고 말해!
내 잘못이 아니니, 날 떠나지 않을 거라고 말해."
절박한 외침이었다.
'완전 X년을 만났네.
아무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그날 밥을 다 먹고 공원을 몇 바퀴나 산책하는 내내
내 입에선 끝끝내 그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을 잃었다.
그 후, 이 주제의 대화를 마무리하고도
그는 내내 이상했다.
모임 친구들한테 우리 관계에 대해 꼭 말할 거라던 그에게,
혹시 벌써 말했냐는 나의 질문에
며칠 전과 상반된 태도로
"한달은 지나야 말하지.
있잖아, 한.달.에 참 많.은. 의미가 있어. 알아?"
하며 이상하게 벽을 세우기도 했다.
이상했다.
불안형 인간은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을 감지하면
그들은 오감을 동원해 내가 먼저 피할 이유를 찾는다.
그 모습의 시작이었을까.
그때부터 그는 의식과 무의식은 나로부터 먼저
도망갈 출구를 설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출구를 막는 마법의 치유법이 있었다.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