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과의 연애 #5.
뭐,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틀렸다.
그와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도,
그와 성숙한 '대화와 관계'를 시도한다는 생각조차 틀렸다.
그의 과거에 있었던 '이혼'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언제, 어떤 타이밍에 얼마나 깊게 더 얘기해보고,
함께 해결해갈 수 있을까?
혹 복잡한 내 마음이 너무 유치하고 무책임한 심리는 아닐까?
나의 이 마음이 우리 관계를 망쳐버리진 않을까?
...
처음부터 모든 고민, 모든 전제가 틀렸다.
나는 그저,
갈기갈기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두 손과 품으로
우둥부둥 한없이 감싸며 걸어야 하는 엄마였다.
어깨를 한껏 부풀린 아이에게 "오빠가, 오빠가~"라는 말을 들으며
참 기이한 모습으로 말이다.
착한 아이처럼 말만 잘 들으라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자꾸 지겨워 해
내가 봐도 나는 정말 쉬웠어 난 울다가도 사랑 주면 웃었어
늘 나를 쉽게 다루는 건 막대사탕 같은 사랑
- <어른아이> 거미 -
공원에서 긴긴 대화를 어찌저찌 마무리하고
우리는 일상 대화로 돌아왔다.
'어-어. 맞지'
주제도 바꾸고, 장소도 옮기고,
카페에 들어온지 한참이지났는데, 그는 1시간이 넘는 그동안
계속해서 대화에 집중을 못하고, 표정이 굳어있었다.
마치 게임에 푹 빠져, 옆에서 말을 걸면 두 박자 늦게
'어- 어' 하고 형식적인 대답을 하고 있는 사람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나 또한 연인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본 게 첨이라,
내가 꺼낸 이야기와 내 입장 전달이 혹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혹은 그가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은 것인지,
조심스러웠다.
직관이었을까?
나는 맥락 없이 다른 이야기를 해봤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아무런 맥락이 1도 없는, 황당한 말이었다.
"근데, 나~ 요즘 도파민 최대치야!
내가 오빠 너무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 어떡하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그말에, 내내 어둡던 그의 얼굴이
티-끌 한 점 없이
맑게 게었다.
이제야 게임에서 이기고, 게이밍 헤드셋을 벗어던지고
식탁에 와서 가장 행복한 식사를 즐기는 아이 같았다.
정말 말도 안됐다.
말도 안되게, 어린 아이처럼 맑아졌다.
그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해맑은 얼굴로
시시콜콜 그의 일생, 생각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다 돌아갔다.
본능적으로 '이거다' 싶어서 던진
마법의 치유법,
막대사탕 같은 사랑이었다.
당신이 만약 사랑의 도파민이 한껏 올라
가장 설레는 그 순간, 썸남 썸녀의 입에서
'나 사실 이혼을 했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나는 우선 '연애의 시작을 막을 요인은 아니다'라고 판단했고,
다만, 앞으로의 시간은
'이혼남'이라는 색안경을 빼고
'지금의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것 하나만, 오롯이 나 혼자서 판단하려 했다.
그 확신을 얻게 되면, 이 세상과 맞서 이 관계를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그가 줄곧 강조한대로
나 또한 과거의 못난 그와 현재의 그를 완전히 분리했고,
현재의 그에 집중하려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당연히도
한 인간의 과거와 현재는 절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은
현재 그의 투명한 모습을 보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여전히 인간 관계 능력, 판단 능력이 못날만큼 떨어지는,
결핍형 인간의 전형이었다.
그 날 공원에서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지?'라는 황당함이 차올라도
나는 그를 막지 않고, 들었다.
지금 내 손을 잡고 있는 이 사람이
상처를 극복한 성숙한 어른인가,
어른의 가면을 쓴 어린 아이인가?
복잡하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
모든 베일을 벗기고 그의 투명한 민낯을 보여준
그날의 '한 방'은 사실
정말 허무하고 초라한 한 마디였다.
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