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라는데, 우리는 왜 그 인간과 엮였을까

돌싱과의 연애 #6.

by 성대리

"근데 있잖아"


한참을 떠들어도 내 입에서 원하는 말이 나오지않자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두뇌를 풀 가동하듯

잠시의 침묵 후, 그는 입을 똈다.

"걔는, 청소도 안했어."


"걔는 청소도, 설거지도 안했어. 내가 다! 했어."


..


그날, 나는 발견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건 서른일곱의 남자가 아니라
일곱 살의 어린아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어쩌다 이런 수준의 인간과 엮였는가.
대체 어쩌다 “청소도 안 했어” 수준의 인간과.


우리는 한번 쯤 정의해봐야 한다.

그때의 우리는 왜, 그 인간과 엮였을까?


어쩌면 그저 '어쩌다 똥 밟았다' 생각하고 넘어간

우리의 '어쩌다'에는 우리의 숨겨진 결핍이 있을 수 있다.




그는 왜 그 여자와 2년 간의 결혼생활 하게 됐을까?


결핍은 결핍을 알아본다. 결핍은 결핍을 끌어당긴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귀신같이 찾아내는지, 기가막히게 서로를 찾아낸다.

(보통은 결핍형 인간끼리 모인 공간에서 더욱 수월하게 일어난다.

그는 그녀를 소개팅 어플에서 만났다고 했다.)


- 험한 세상에 맞서 나를 사랑해주고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엄마 같은 女.

- 내 그늘 아래 경제력도, 멘탈도 쥐락펴락하기 가장 편한, 조금 미숙한, 착한아이 男.

서로의 결핍을 고백해도, 한없이 품어주고 떠나지 않을 것 같은 본능적 안락함.


서로의 금을 채워줄, 일종의 트레이드(Trade) 관계,

'천생연분'이라 부른다.


(*이 세상에서 남과 여의 인간들이 겪은 결핍과 트레이드의 유형은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기에,

놀랍게도 돌싱을 만나봤다는 언니들은 다 똑같은 말들을 들었다고 한다.

그 남자들은 한결같이 혼인 파탄의 사유를 '여자의 경제관념'이라고 말했단다.

그리고 놀랍도록 똑같은 결핍을 보였다.)


하지만 깨진 유리잔은 누군가를 담을 수 없고, 이내 무너진다.

우리는 절대로 누군가를 구원할 수 없다. 일시적일 환상일 뿐이다.




나는 왜 한달 가까이 그와 스쳤을까?


작은 결핍도, 결국 다른 결핍을 끌어당긴다.


나는 착한남자를 좋아한다.

"정말 당연한 거 아니야? 다정하면 다정할 수록, 착하면 착할 수록 더 좋지"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당연한' 것보다는 조금 많이 집착한다.

남자다움보다는 다정함에, 당당함보다는 겸손함에.


그저 '나와 비슷한, 착하고 순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나의 말에는

어쩌면,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이성을 통해 채우려는 심리가 숨어있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얻지 못한 아빠의 온화함과 자상함을,

절대적으로 포근하고 든든한 내 편 같은 아빠의 모습을.

나의 우주에서 가지지 못한,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그 무언가를

이성에게서 찾고, 여전히 상처어린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려는

필사적인 과정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 사람, 그리고 그와 같은 유형의 지난 '착해 보이는' 남자들을 만날 때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잡으려 했을 것이다.


절대 화 한 번 안내고 날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상처받은 나의 영혼을 구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




그는 왜 한 달이나 나를 만나고, 한달밖에 안만났을까?


결핍은 결핍을 끌어당기나,

결핍은 귀신 같이 '안맞는 소리'도 알아듣는다.


그의 단단하고도 유약한 회피형 방어막을 단번에 뚫어버릴 정도로

한없이 맑은 나의 호기심과 밝은 에너지에서

그는 확신의 그린라이트와 함께

갈기갈기 찢긴, 상처 투성이인 그를 구원해줄 수 있는 희망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조만간, 느꼈을 것이다. 계속해서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끝까지 품어줄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함을.


전문직 부모님, 의사 오빠의 그늘 아래서

듬뿍 사랑받으며, 부족함 없이 자라

대기업에 다니며, 똑똑하고, 아쉬울 것 없이 세상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는

순수하고 맑은 5살 연하의 여자친구에게


편부모 가정에서 홀어머니와 자라며

뿌리깊은 상처와 이혼의 상처를 덧입고 덧입어,

시골에서 상경해 혼자 서울 공기업에 다니고 있는 그는

소득, 자산, 집안, 외모, 등 모든 면에서 (메타인지 능력과 별개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딘가 안맞는 그릇'의 소리를 걸 느낀다.

다시 말해, '내 모든 결함을 편하게 말해도 품어주고

한없이 치유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서로가 서로밖에 없는 완전한 한 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

본능적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그것들이 이별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무의식은, 특히 구멍난 결핍의 그릇은 더더욱

스스로 상처받지 않을 방어기제를 공고히 세운다.

"이거 때문에 별로야"라고 말하기에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 것들은 제외하고,

오감을 동원해 타당성이 있는 이별의 명분(trigger)를 어떻게든 찾아낸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속인다.




우리는 모두 마음 속 그릇을 가지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의 그릇도 여기저기 흠이 나 있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인간들이고

모두 그 그릇에 사랑을 채우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중엔 산산조각 나 본드로 이어붙여진 유리그릇도 존재한다.

무엇도 담을 수 없는 위험한 상태.


그런 그릇일수록 더, 더 간절히 사랑을 갈망하고 굶주려 있다.

허겁지겁 사랑을 퍼 담으려 한다.


그런데 그들이 내는 소리를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드로 이어붙인 위태위태한 깨진 유릿잔을 만났다면

그들이 내는 전형적인 소리를 듣는 즉시 도망가야 한다.


결국, 결핍의 증상은 똑같다. 그가 계속해서 냈던 소리처럼.


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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