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형 대화, 우리는 당하고 있다.

돌싱과의 연애 #7.

by 성대리

결핍의 증상이 대표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이상한 대화’이다.


그의 이상한 대화방식은 처음부터 눈치챘다.

내가 소개팅에서라면, 한 번에 손절하는 유형이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


그런데 왜 이 사람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손절은 커녕 먼저 호감을 표시해, 한달 가까이 만났을까?

착-한 얼굴을 한 이 남자의 '자기 말'은

다른 허세남들처럼 재수 없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무엇보다

자기 말로 시작해, 자기 말로 끝나는 이 숨막히는 대화를 설마 여자와의 1:1 데이트에서도 계속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관심 있는 이성과의 자리에서는

그 거북한 대화 방식은 몇 배로 더 심해졌다.




결핍형 인간에게 대화는 상대방과의 '공감'이나 '소통'이 아니다.


1. 배설형 대화


"음, 대화방식이 마치..... 뭐랄까.. 배.설.이라는 표현이 젤 정확할 것 같아."


"애정결핍이구나."


그와 헤어진 후, 그에 대한 짧막한 묘사를 들은

소원이는 단숨에 진단 내렸다.


그제야 알았다.

진저리 나던 그의 대화방식은 "저 애정결핍이에요"의 아주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것을.


그와의 대화는 아무런 소통도, 공감도 필요가 없다.

도대체 목적이 뭔지 몰라 헤맸다.


정말 요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기승전결 없이, 몇 십 분, 몇 시간이고 말한다.


(면대면이면 어찌저찌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전화로, 두 시간을 내리 듣는 건 다른 차원의 고통이다.)


이따금씩 그가 멈추면

도대체 무슨 리액션을 해야되는 타이밍인지 알 길이 없어 벙찐다.


그런데 그는 어떤 리액션보다도,

상대방이 '들어준다'는 그 느낌 자체를 사랑하는 것 같다.

100% '들려지고 있다'는 느낌을 못받으면,

그의 반응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


"어, 내 말이 너무 재미없었지? 미안해"가 아니다.


"너는 경청을 안하는 것 같아.
내가 얘기는 안했는데, 사실 너랑은 대화가 안되는 것 같아 좀 힘들어."


모든 것은 결국 상대방 탓이다.




언젠가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 어떤 분이 되게 요지 없는 말을 계속 해서

전부 당황하고 딴짓했는데,

오빠는 끝까지 혼자 계속 들어주더라고.

진짜 흥미가 있어서 들어준 거야?"


착한 아이인 그는 답했다.

"그래? 언제? 그랬나?

흥미? 아니 절대 없지. 그냥 듣는 척 하는거지."


그에게 대화는 티/키/타/카의 소통이 아니다.


'니 차례'에 내가 대충 듣는 시늉 해줬지?

이제 '내 차례'야.


마치 배설의 내 턴을 기다리는 행위 같다.




2. 자아 탐구형 대화


자존감이 결여된 결핍형 인간의 또 다른 특징은

대화의 화자도, 청자도, 그 자신이라는 점이다.

타인을 소모시키면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식이었다.


"오빠는 어떨 때 행복해?"

"그럼 어떨 때 힘들어?"

"그 때는 투자가 불안했구나, 왜 그랬어? 지금은 어떤데?"

"음,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볼 생각이야?"


그에게 무언가 탐구할만한 주제를 던지면,

그 어느 때보다 그를 감싸는 도파민이 단숨에 느껴진다.


그는 들어간다. 점점 더 깊이,

이 공간을 벗어나, 그의 내면 세계로 들어간다.

"헉, 오빠는 그래? 나는 이런데!" 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아, 진짜? 아, 그렇구나!

어, 근데, 나는, 나는 말이야, 나는 이래."


나의 말을 끊거나, 재수 없이 본인을 과시하려 하지 않는다.

착하고 무해한 얼굴로 내 말을 들어주고,

아주 부드럽게, 자연스럽게, 다시 본인 이야기를 한다.


결국 기승전 '본인'이다.


그에게 연인이란, 그를 치유해주는 대상,

그가 좋아하는 것을 '궁금해해주는 사람'이지,

'궁금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시공간을 멈추고 신나게 자아 탐구의 세상에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


"그랬구나, 그래도 정말 잘 하고 있어."

"그런 생각도 할 줄 아는구나? 오빠 이렇게 멋있으니까 내가 반했지!"


그의 독백을 끊임 없이 들으며, 말르는 샘을 쥐어짜내 응원과 칭찬의 말을 불어넣는 나.

수 십 분을 반복하다보면 언젠간, 마침내, 그가 깨어난다.


그는 본능적으로, '어, 나도 칭찬해줘야 할 타이밍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는지

몇 초의 침묵 후,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렇게 끝난다.


"어, 혜진이는, 어,

대기업다니지, 예쁘지."


"응?????"


정말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렇게 끝났다.

여태 수십 분의 대화와는 어떠한 맥락도, 관련도 없는


"대기업 다니는 예쁜 혜진이"




몇 시간을 그와 떠들다 집에 돌아오는 길,

뭔가 모를 갈증과 메마름.

처음으로, 내 마음에도 '결핍'이라는 한 단어를 발견했다.


'우리가 대.화.를 하고 있는 게 맞나?'

'내가 오늘 사랑 받은 게 맞나?

아니, 일말의 관심을 받았나?'


대기업 다니는 예쁜 혜진이.

내 남자친구가 알아봐주는 나의 빛, 나의 장점은

나를 1초 본 사람도, 아니 보지 않은 사람도 알 수 있는 그것인가?


나는 이 사람을 매일 알아가는데, 이 사람에게 나는 그대로이다.



결핍은 타인을 소모시키며 본인을 치유한다.


그러나 결핍은 밑빠진 독이다.

구멍난 한쪽의 마음에 일방적인 관심을 부어주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에도 메마름이 생긴다.

그런데 구멍난 마음은 채워도,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나의 모든 행위는 그의 유약한 구멍을 자극하고,

구멍을 메워주지 못하는 모든 행위는 나의 탓이 되고,

결국 내 마음에도 구멍이 생긴다.

아주 작게, 아주 서서히.


결국 결핍은 결핍을 낳는다.


당신의 마음에도 서서히 생겨가는 돌덩이와 작은 금은

이제 시작이다.


8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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