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과의 연애 #8.
결핍형 인간의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인정 중독'.
결핍의 대표적 증상이자,
결핍이 스스로를 치유하려 애쓰는 가장 교묘한 방식이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수 없었고,
뭐든 거절하지 않는 '착한 아이'일 때,
'도움이 되는 사람'임을 증명할 때만
조건적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나를 알아줘. 나 이만큼 괜찮은 사람이야"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평생.
그렇기에, 지겹도록 더 많은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며,
상대방을 소모시킨다.
#Comfort zone_인정의 공간
뿔테 안경을 쓰고, 검은 자켓을 입고
항상 테이블의 대화 지분 90%를 차지하며
주식을 열강하던 그.
주로 초보자들이 모이는 이 투자 모임에서
일방적 giver가 되는 것이 '피로하다' 말하면서도,
이제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상급자 모임에 가보고 싶다면서도,
여전히 이곳에서 아낌없이 아는 모든 것을 쏟아내는 그.
그 모습이 멋있었고, 그 모임에서 그는 가장 빛났다.
배설형 대화, 강의형 대화조차
이 모임 안에서는 허용됐다.
아무도 그의 말이 길다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고
문제 삼지 않는다.
뒤에서 "그 형, 한 번 자기 말 시작하면 좀.. 못 멈추긴 하지, 하하" 정도로 마무리되고,
앞에서는 “형, 진짜 대단해요"로 끝나는 곳.
절대 발전은 없어도, 그 자리 그대로에서
최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곳.
그의 comfort zone. 세상 좁고 고립된 그의 세계.
피로함도, 발전 욕구도,
결핍형 인간의 인정 욕구를 이기지는 못한다.
그들은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
잘난 사람들 틈에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배설하고, 인정받는 듯한 느낌이 들 때만
가슴 깊숙히 무언가 메워지며 최대의 쾌감을 느낀다.
그가 몇 년간, 매주 주말, 빼놓지 않고
'그 모임'에 나오는 이유이자,
내가 그와 엮이게 된 이유이다.
#대화의 목적_과시와 인정
놀랍게도 결핍형 인간들이 가지는 많은 특성은
모두 '인정'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다.
"오빠, 나 요즘 이러이러해~"
"음, 있잖아, 그럴 때는 말이야,"
대화가 굴러는 가는데
묘하게 핀트가 자꾸 엇나가는 느낌.
그들의 대화 방식은 '공감'과 '소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핍형 인간들이 상대의 말에 잠깐이라도 귀 기울이는 유일한 이유는
'자기 말'을 하기 위함이고,
그 자기 말은 언제나 '날 인정해줘'이다.
즉, 그들의 말은 나를 위한 공감이나 궁금함이 아닌,
'조언자'로서 자기 존재를 확인함이기 위함이다.
"혜진아, 너는 이런 문제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편이야~?"
"음, 나는 이렇게 하는 편! 오빠는?"
그의 동공이 흔들린다.
"어, 그래? 어, 잘 하네...? (내가 알려주려 했는데....).
알았어..? 너는 왜 그런 걸 벌써 알아..?"
"응...??"
완전히 넋이 빠진 얼굴로 물을 때마다
나는 더 넋이 빠진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의 대화의 목적은 '공감'이 아니다.
그들의 질문의 목적은 당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함'이 아니다, 절대로.
뭔가 이상하게 어긋나는 듯한 대화의 핀트는 모두
그들의 결핍에서 비롯된 인정 욕구에서 발생하며,
결핍에서 비롯된 관계 경험의 결핍에서 발생한다.
결핍은 결핍을 낳는다.
그들은 절대로, 진실된 마음으로 누군가를 담을 수 없다.
그저 '날 알아줘, 날 채워줘'를 외치는 굶주린 독일 뿐.
#극단 선택 성향
결핍형 인간은 중요 선택에서 꽤나 극단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투자나 직업 같은 것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늘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휘둘린다.
하루종일, 오랜 기간, 한 분야에 제대로 몰입해 공부하며 발전하던 그,
내가 가장 높게 샀던 그의 매력이다.
그런데 막상 그의 주식계좌를 봤을 때 알았다.
무리한 Full 신용대출을 동원해,
남들이 잘 모르는 '단 한 종목'에 몰빵.
결핍형 인간들이 하는 선택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놀랍도록 일치했다.
추후 그들의 인정욕구에 제대로 한 방을 날려줄 수 있는
'남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하며,
'인생은 한 방이지'를 외치며
극단적 리스크를 걸고 결핍을 채우려는 성향.
사실
나도 '인정욕, 성취욕' 하면 절대 뒤지지 않는 캐릭터이다.
'하자 있다'는 공식 꼬리가 붙은 이 사람을,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내가, 구태여 선택하려던 것엔
무슨 결핍과 인정 욕구가 숨어있었던 걸까.
대체 누구에게 내 극단적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 '이 사람은 달라'가 아니라,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있어.
나는 모든 반대를 거슬러, 내 선택은 옳을 거야'라는
어떤 욕구와 고집에 더 가까웠는지 모른다.
(몇 주도 채 되지 않아 도망나오긴 했지만,
내면의 작은 결핍이란 것도, 무의식의 깊은 인정 욕구라는 것도, 뭐가 됐든 이렇게 위험할 수 있다.)
적어도, 사람 보는 눈을
실눈이라도 뜨고 다녔다면,
이 정도 수준의 사람과는 단 1초도 엮이면 안되었다.
적어도, 그가 내게 고백하는 자리에서 나온 모든 기이한 말들,
급기야 '폭언'이라는 code-black을 듣는 즉시
도망갔어야 한다.
9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