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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빈 Jan 09. 2019

언제나 하늘에는  
가장 낮은 존재들이 있다

소설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장편소설 (한겨레출판, 2018)

2019년의 서울과 1931년의 평양

2019년의 목동의 하늘에는 여전히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스타플렉스(파인텍)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2017년 11월부터 시작한 이들의 고공농성은 결국 무기한 단식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고공농성은 2017년부터지만 투쟁 자체는 오래되었다. 스타케미칼의 갑작스런 폐업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은 2014년 5월부터 408일간 회사의 굴뚝에서 농성하였고, 결국 스타케미칼의 모기업 스타플렉스는 파인텍을 만들어 해고노동자들을 고용승계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파인텍은 단체협약조차 지키지 않은 채 공장 가동을 중지했다. 결국 이들은 다시 스타플렉스가 보이는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농성장에 올라섰다. 이미 자신들의 기록인 408일을 넘긴 이들의 투쟁은 새해에도 해결이 요원하다.      


스타플렉스(파인텍) 본사가 보이는 서울에너지공사 굴뚝(목동)에서 고공 농성중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노동자들.


한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기까지

노동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하늘을 선택한다. 그들에게 더 이상 갈 곳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1931년의 평양에서도 그러했다. 1931년 5월 23일 평양 을밀대의 옥상 위에 올라선 강주룡 씨의 이야기다. 지금은 평양냉면 전문점으로 더욱 유명해진 을밀대는 고구려 시절에 지어졌다는 정자의 이름이다. 대동강 옆 을밀봉 밑에 세워진 을밀대. 을밀대 위에 올라서면 대동강의 섬 능라도와 사방으로 퍼진 평양의 넓은 평야가 보이는 경치가 유명하다고 한다. 그 만큼 평양시민들에게 유명한 누각건물이다. 이 건물 위로 한 노동자가 올라간 것이다. 그는 왜 누각으로 올라갔을까.


강주룡 씨는 1901년 평안도 강계 출생이다. 그가 14세가 되는 1915년에 온 가족이 서간도로 이주했고, 그 곳에서 5살 연하의 남편 최전빈과 만나 결혼했다. 최전빈과 강주룡은 결혼 이후 독립군으로 활동했고, 채찬 장군 휘하의 독립군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1925년 최전빈이 병으로 사망하였고 이에 시댁에서 “남편 죽인 년”이란 소리를 듣고 쫓겨났다. 결국 강주룡은 귀국해 평양으로 돌아갔고, 평양의 고무공장에 들어가 여공으로서 생계를 이어갔다. 열악한 공장의 노동환경이었지만 강주룡은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1930년대 휘몰아친 대공황의 열풍은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삭감으로 이어졌고, 평양의 고무공장들도 임금삭감을 통보하기 시작했다. 1930년 8월 고무공장의 사업주들이 모인 평양고무공업조합은 종래 임금의 17%를 인하하기로 통보하였다. 여당시 평양의 고무공장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주축이었는데, 이들은 이미 일본인 남성 노동자의 25%에 불과한 금액만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공장 관리자들에 의한 상습적인 구타, 욕설, 성추행 등은 일상이었다. 이에 강주룡을 포함한 노동자들은 파업과 단식으로 저항했다. 파업과 투쟁이 이어지고, 공장주들과 노동자들은 협상을 이어갔다.


강주룡 씨의 사건은 1931년 5월 16일 평양 내의 2300여명의 고무직공 임금 삭감에 대한 항의 투쟁 가운데 일어났다. 강주룡은 공장에서 파업 투쟁을 이어나가던 도중 일본 경찰의 방해로 공장에서 쫓겨났다. 이에 그는 을밀대 지붕으로 올라가 “여성 해방, 노동 해방”을 외쳤다. 새벽에 올라가서 8시간 가까이 투쟁하였으나, 경찰은 이를 막기 위해 강주룡 씨를 을밀대 지붕 위에서 밀어 넘어뜨렸다. 결국 투쟁이 저지당한 강주룡 씨는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그는 단식을 지속하면서 임금삭감에 저항하였다. 1주일간 구류 처분을 받았고 경찰서 안에서도 투쟁을 이어갔지만 마땅한 연고도 남지 않은 노동자를 챙겨주던 곳은 없었다. 결국 강주룡 씨는 건강 악화로 사망하였다. 당시 평양지역 노동자들의 투쟁은 큰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여성노동자들의 동맹파업이 항일운동으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소설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장편소설 (한겨레출판, 2018)


"내 목숨을 내걸고 외치는 말을 들어주시라요"

박서련의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한겨레출판, 2018)은 강주룡의  삶을 담아낸 소설이다. 강주룡의 투쟁은 동아일보 <平壤乙密臺(평양을밀대)에 滯空女突現(체공녀돌현)>기사와 잡지 동광의 인터뷰 <평원 고무 직공의 동맹 파업>에 상세히 보도되었다. 작가는 두 사료 뿐만이 아니라 여러 학술 문헌들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그려낸다. 작가의 풍부한 취재 덕에 1920년대의 간도와 1930년대의 평양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렇기에 강주룡의 삶은 시대와 동떨어진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고 시대 속에 살아 숨쉬게 된다. 


그렇기에 소설 속에서 강주룡은 식민지 조선과 만주를 오가던 한 명의 민(民)에서 역사적 투쟁의 순간을 버텨내는 주인공으로 승화한다. 소설이 시작할 땐 "내깟 년이 머이 힘 있나, 고저 밭을 갈라면 밭을 갈고 시집을 가라면 시집을 가야지."라던 주룡은 자신만이 아닌, 평양의 모든 고무 직공들을 위해 을밀대 위에 올라선다. 비단 그들만을 위해서였을까. 평양의 모든 노동자들, 아니 <국제가>의 가사처럼 "짓밟혀 천대받은 자"를 위해 을밀대 위로 올라선 것이 아닌가. 


“우리는 마흔아홉 우리 파업단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네다. 이거이 결국에는 피양 이천삼백 고무 직공 전체의 임금 감하를 불러올 원인이 되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네다.
(중략)
기러니 여러분, 구태여 날 예서 강제로 끌어 내릴 생각은 마시라요. 뉘기든 이 지붕 우에 사닥다리를 갖다 대기만 하면 내래 즉시 몸 던져 죽을 게입니다.”  


<동아일보>에 실린 강주룡의 기사


하늘에 가장 낮은 존재가 있다

시대가 바뀌고, 정부가 바뀌고는 있지만 노동환경은 여전하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죽음을 당하고 있고, 압력에 항거해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가장 낮은 존재야말로 가장 고귀하다는 의미일까. 강주룡 열사의 죽음은 그가 이루고자 하는 바람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의 좌절이 2019년에도 반복되지만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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