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왔다

4. 아빠와 만나야 하는 것은 왜 선택할 수 없을까

by 규자모니

우리 아파트 놀이터 옆에는 약수터가 있다. 물통에 물이 다 떨어지면 그곳에서 물을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약수터에서 물을 받는 것은 쉽다. 흰색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반투명색 마개로 입구를 막고 빨간 뚜껑을 돌려 잠그면 끝이다. 하지만 물이 들어있는 물통은 꽤나 무거워서 마트에 갈 때 가져가는 손수레가 없으면 집까지 들고 갈 수 없다. 약수터에는 물통에 물을 채우거나 물풍선에 물을 넣을 때 말고는 잘 안 가는데 이제 일요일마다 약수터로 간다.

일요일 저녁이면 항상 아빠가 이 약수터 앞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아빠가 오는 이유는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서다. 아빠는 우리가 절에는 잘 가고 있는지 불경은 잘 외우고 있는지 우유는 잘 마시고 있는지 검사했다. 그리고 아빠는 항상 거짓말을 제일 싫어한다고 말씀하셨다. 교회에 갔는데 안 갔다고 거짓말하면 크게 혼날 것이라고 했다. 아빠가 안 오면 좋겠다.



난 일요일이 싫다. 다른 친구들은 일요일이 좋다는데 나는 싫다. 학교에 안 가도 되는데 아침에 늦잠을 잘 수도 없고 디즈니 만화동산을 볼 수도 없다.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 교회를 다녀와서 아빠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 아빠는 우리가 교회에 갈까 봐 일요일이 되면 오전 10시부터 1시간 단위로 집에서 전화를 하게 하셨다. 그래서 친구들과 놀러를 갈 수도 없다. 그래서 난 일요일이 싫다. 가기 싫은 교회를 아침부터 아빠 몰래 갔다 와야 하고 다녀와서는 동생들과 집에 갇혀 아빠에게 하루 종일 전화를 해야 하는 게 너무 싫다. 무엇보다 아빠와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일 싫다. 아빠와 통화하는 것도 무섭고 싫어서 동생들과 나는 돌아가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난 아빠한테 전화하는 게 싫었기 때문에 동생들에게 더 많이 시켰다. 동생들을 꼬시기는 쉽다. 나중에 돈 많이 모아서 인형 사준다고 하면 끝이다. 동생들은 그걸 철석같이 믿고 아빠한테 나 대신 전화를 건다.



아빠가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하시는 날이면 동생과 나는 집 안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다. 그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불편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 괜히 동생들에게 착하게 군다. 동생이 보고 싶어 하는 TV프로그램을 틀어주면서 말이다.



운이 안 좋아 아빠를 만나는 날이면 항상 신어산에 있는 은하사에 갔다. 은하사로 가는 차 안에서 나와 동생들은 돌아가며 반야심경을 외워야 했다. 반야심경이 끝나면 할머니 집 주소, 할머니 이름, 할아버지 이름 등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잘 해내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할머니 집으로 가서 회초리로 맞거나 차 안에서 손바닥을 맞아야 했다. 회초리는 직접 구해와야 했는데 회초리를 구해오라는 말을 시작으로 동생들은 울기 시작한다. 나는 울지 않았다.



절에서 절을 하고 나면 항상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으러 가서도 행동 하나, 말 하나를 모두 조심해야 한다. 쩝쩝거리며 음식을 먹으면 안 되고 밥을 먹다가 코를 풀어도 안된다. 음료수를 먹어도 안되고 물도 밥을 먹을 땐 조금만 마셔야 한다. 아빠는 음료수와 물을 마시면 배가 빨리 불러 밥을 많이 못 먹는다고 하셨다.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도 후후 불어서 한입에 먹어야 한다. 소리를 내면서 먹으면 아빠한테 혼난다. 그래서 난 밥을 먹는 동시에 동생들을 감시했다. 동생들이 실수해서 아빠가 화나면 안 되니까 말이다.



아빠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힘이 없다가도 다시 생긴다. 이제 다 끝났다. 일주일 동안 다시 자유다. 난 이때가 제일 좋다. 다 같이 씻고 나서 동생들과 엄마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지만 엄마 옆자리를 차지하는 건 언제나 나다. 엄마는 항상 자기 전에 나와 동생들이 가져온 책을 읽어주셨다. 책을 읽다가 엄마가 자면 나는 다시 깨워서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그러면 엄마는 다시 책을 읽다 잠에 들고 다시 책을 읽다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나도 어느새 잠에 들어 일어나 보면 아침이 되어 있었다.



내가 11살이 되고 동생들이 7살, 5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우리에게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 사는 곳에서 멀리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다니는 학교도 못 다닌다고 했다. 그래도 멀리 가니까 아빠가 우리가 있는 곳에 자주 못 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아빠랑 멀리 떨어지는 것은 좋았지만 내 친구들과 헤어져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여기 있는 친구들은 다 나를 좋아해 주는데 왜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