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다니엘 블레이크

열여섯 번째 편지 : 누구를 위한 규칙일까 누구를 위한...?

by 주영

영화에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전에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어.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한 조항에 맞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에 합당한 서류를 준비해서 찾아갔는데

더 필요한 서류가 있다는 답변을 받았어.

내가 볼 때는 인정할 수 있는 서류는 충분해 보였는데

절차상 필요한 서류가 더 필요했고

또 준비해서 찾아갔지.

하지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마무리 인사를 하고 퇴사를 한 회사에

다시 연락을 취해 받아야 하는 서류가 필요했고,

나는 결국 추가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실업 급여를 포기했지.


아마 관공서 직원은 절차상 필요한 서류를 언급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꽤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류를 준비해 나가면서 왠지 내가 되게 초라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어.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관료적 절차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더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냈을 거야.

하지만 이 절차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끊임없이 되묻고 보완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특히 이 영화에서처럼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는 사람들마저

외면하는 절차라면 그 절차가 과연 옳은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 속에서 절차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니엘 블레이크에게

관공서 직원이 제발 생각 좀 하고 행동하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과연 그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한지 의문이 들었어.

생각 좀 하고 행동하는 것은 단 한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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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시작했지만

시간이 거듭되고, 관료적 절차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기술적 편의성이 높아지면서 정보의 습득에 불평등도 생기고.

이런저런 이유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공공의 이익을 제대로 받아야 할 사람들이

소외되는 불평등함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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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료적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우리나라의 문제인 줄만 알았는데

외국의 사례도 이렇게 비슷할 줄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어.

민원 상담을 위한 전화는 통화하기 너무 어렵고,

절차에 순응하기 위해 이것저것 노력하고 맞춰 보지만

번번이 그 노력이 헛수고가 되고 시간만 허비하게 되고

정당하게 받아야 할 도움은 받을 수가 없고,

그렇다고 하소연할 곳은 마땅하지 않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평범하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아무것도 내주기 싫은 사람한테

하염없이 매달리는 형편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


사실 영화 속에서

절차를 따르는 직원들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아니야.

그들은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니까.

결국 얼마나 유연하게, 불평등의 사각지대가 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가 관건인데

이게 참 어려운 것 같아.

한 사람의 노력만 갖고 되는 것도 아니고,

주어지는 예산 안에서 해결해야 되고,

헤아려야 할 사항들이 많지.


그렇기에 관료적 절차와 관련된 사람들이

서열에 관계없이 모두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데

그게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걸림돌로 인해

만들어 내기 어려운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들어.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도 많고, 돈이 많은 사람도 많고,

지혜로운 사람도 많고, 능력 있는 사람도 많기에

기술력도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고, 편리한 삶이 되었는데

왜 관료적 절차 속에서는 불평등이 자꾸만 생기는 걸까.


주어진 시간에 성실하게 일했고, 세금도 꼬박꼬박 냈고,

주변 사람들과 따뜻한 소통을 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도울 줄도 알았던 사람이

몸이 아파 도움이 필요해 국가에 SOS를 요청했을 때,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엄마 혼자 고군분투했지만

더 이상 떨이질 곳이 없을 절망에 빠져 국가에 SOS를 요청했을 때,

그 신호를 금방 알아채고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관료적 절차가 당연해졌으면 좋겠어.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잠시 기댈 바람이 당연하게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가 이렇게나 슬프지는 않을 텐데.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자선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인간입니다.

개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마지막에 읽혔던

다니엘 블레이크의 질병 수당 심사 항고 입장문의 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야기는 여기서 이만 줄일게.

다음 편지로 또 만나.

(PS 사진출처 : 영화-나 다니엘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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