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지구의 회전 속도를 늦추고 있다

가끔은 느리게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by 서하

달은 조용히, 아주 천천히 지구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

달의 중력은 지구에 조석 마찰을 일으켜 바닷물을 밀어내고 당기고, 그 미세한 마찰이 지구의 자전 속도를 서서히 느리게 만든다. 매년 하루가 1.7 밀리초씩 길어지는 셈이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변화지만, 그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느림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럽고, 거스를 수 없는 성장의 일부다.




나는 한때 속도가 곧 능력이라고 믿었다.

주어진 시간보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해내는 것에 의미를 두었고, 그렇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과제를 미리 끝내는 것을 자랑처럼 여겼고, 직장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이메일을 회신하고, 회의 중 누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빨리하면 할수록 "어떻게 이렇게 빨리했어?"라고 놀라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었고, "잘했다"라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게 능력이고, 그것이 나를 더 돋보이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빨리 움직일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피로해졌다. 어딘가 균열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실수는 줄었지만, 기쁨도 줄었고, 회의는 늘 정리됐지만, 여운은 남지 않았다. 빠르게 끝낸 일은 금세 잊혔고, 다른 더 빠른 일들이 계속해서 쌓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지쳐갔던 것 같다.




전 직장에 다닐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팀에서 작성하던 제안서 작업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상하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회의는 길어졌고, 일정은 계속해서 미뤄졌다. 제안 PT 일정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빨리 준비해야 PT까지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해서 초조한 마음이 들었고, 마음속으로는 팀원들을 탓하기도 했다. '어떡하지? 이건 벌써 끝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늘어져도 되나'와 같은 밀려오는 조급한 생각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가 진심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색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더 나은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격했다. 작업이 늦어진 대신, 결과물은 오히려 더 명확해졌고, 사람들의 만족도도 높았으며, 제안서가 더 나은 퀄리티로 작업이 되니 PT 또한 더 완성도 있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어떤 일들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라는 것을.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꼭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걸 못 견뎌한다. '빨라야 한다'는 압박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강박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삶에 치이며 여유를 잃었고, 보다 빠르게 모든 것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가령, 빠르게 지나가는 쇼츠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 내부의 상세한 스토리들이 있고,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 안에서는 볼 수 없는 길과 풍경의 정취가 있다.

어쩌면 지속되어 영원할 수 있었지만, 짧은 시간에 정리되어 알 수 없었던 우리의 관계도 있고,

매일 빠르게 지나가는 삶에서는 쌓을 수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 있다.


지금은 일부러라도 속도를 늦추려고 한다.

천천히 일어나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길게 갖고, 메모를 한 번 더 읽어본다. 급히 답장을 보내기보다는, 충분히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답하는 편을 선택한다.

달이 지구의 시간을 늦추며 조용히 균형을 만들어내듯, 느림에는 느림만의 질서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금요일 연재
이전 05화개미 사회는 리더 없이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