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슬픔, 트라우마와 같은 감정들은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정돈된 방은 며칠이 지나면 정리해 놓은 모습에서 멀어져 어질러지고,
갓 내린 따뜻한 커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식어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은 조금씩 흐트러진다.
물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열역학 제2법칙' 혹은 '엔트로피의 법칙'라고 부른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의미하며, 위의 법칙은 우리의 닫힌 세계 안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현상만 일어나며 감소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즉,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질서 정연했던 분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뒤섞이고, 퍼지고, 결국 에너지는 흩어지고, 복잡한 구조는 무너지며, 균일한 상태로 향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은 기본적으로 정돈된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향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 법칙은 단순하지만, 우주 전체를 포함해 모든 것에 적용된다.
최근 연세가 지긋하신 외할머니께서 병으로 입원을 하셔서, 슬퍼하는 어머니를 위로해 드렸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게 너무 두렵다고, 죽음에 대해 슬퍼하셨다.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면서,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전엔 나도 죽음이 막연하게 먼 개념이라고 생각했는데,
19년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20년도에 아버지께서, 23년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계속해서 죽음을 겪어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충격이었던 것은 아버지의 상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나는 장례식의 상주가 되었다. 급성 질병으로 돌아가셔서, 너무 갑작스럽고 슬펐는데, 생각보다 슬퍼할 시간 없이 결정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당장은 빈소를 결정하고, 영정 사진을 준비하고, 제단의 규모를 정하고, 심지어 음식을 어떤 것들로 구성할지도 선택해야 되었다.
그 이후에는 조문객을 맞고, 식장 곳곳의 절차를 계속해서 결정하는 등 남들이 보기엔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는 수많은 절차를 하나하나 감당해 나가야 했다.
도와주는 가족들이 있었고, 형식적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장례는 잘 마무리되었지만 그와 별개로, 내 마음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들을 꺼내어 살펴볼 겨를 없이, 장례를 마무리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고, 계속해서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며 하루하루 일상을 보냈다.
당시에는 스스로 슬픔을 잘 견뎌냈다고 생각했다.
울지 않았고, 평정심을 유지했으며, 예상보다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아마 주변 사람들에게도 괜찮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자신을 보며 이 상황을 잘 이겨낸 사람이라는 식의 자기 확신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가 그 감정을 없애고 정리한 것이 아니라,
단지 흩어진 감정을 미뤄두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감정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어느 날 이따금씩 튀어나온다. 어떤 날은 퇴근길 버스 안에서, 어떤 날은 조용한 저녁 식탁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슬픔과 아픔, 그리움은 문득문득 떠올랐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엔트로피는 낮은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커피가 식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 커피가 스스로 다시 따뜻해지는 일은 없고,
흐트러진 방은 다시 누군가가 정리하지 않으면 스스로 정돈되지 않으며,
마음도 비슷하게 완전히 정리될 수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감정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결국에는 정리되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그냥 형태를 바꾸어 내 삶의 결에 스며들어 계속해서 남아 있다.
아버지를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여전히 문득 그립고, 여전히 가끔은 아프고 슬프다.
흩어진 감정은 사라진 게 아니라, 그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내 삶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제는 그런 감정들을 억지로 꺼내 정리하려 들지 않는다.
흩어진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과 다르고, 그 감정과 기억과 추억이 흩어진 채로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슬픔을 감당하는 방식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나름의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