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는 밀어내는 힘이 더 강할 때 떠오른다

존중에서 나오는 일정 거리가 사랑을 떠오르게 한다

by 서하

초전도체는 아주 낮은 온도에서 특이한 현상을 보인다.

전기저항이 완전히 사라지고, 전류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영원히 흐를 수 있는 상태가 되는데,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자기장을 밀어내는 능력'이다.

이 현상을 물리학에서는 '마이스너 효과(Meissner Effect)'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작은 자석을 초전도체 위에 올려두면 자석이 공중에 뜬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석을 아래에서 밀어 올리고 있는 듯한,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초전도체가 자석의 자기장을 아래로 밀어내기 때문에, 자석이 공중에 부양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자석은 '끌림'에 의해 뜨는 게 아니다.

오히려 '거리를 유지하려는 힘', '거부하는 힘'이 강할 때 부양이 가능해진다.

즉, 밀어냈기 때문에 떠오른다.

애써 손에 쥐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지켜냈기에 가능해지는 신기한 기적이다.




며칠 전, 이전 블로그를 정리하다가 예전에 썼던 글들을 우연히 발견했다.

예전에 정말 힘든 연애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연애가 끝난 뒤, 쏟아지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아무도 보지 않는 블로그에 밤마다 혼자 울며 글을 썼던 적이 있었다.

블로그에 남아있는 글 몇 개에, 내가 오래전 연애를 하며 적어둔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누구보다 사랑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불안했던 시절의 나.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상대의 감정 하나하나에 휘청였고, 대답이 늦으면 불안했고, 목소리가 단조로우면 내 탓 같았던 시절이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나도 좋아해야 안전하다'는 착각과

'붙잡고 있어야 사랑이 유지된다'는 불안, 그 모든 것이 내 감정을 너무 벅차게 만들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애착이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애초에 '자기장'이 너무 강했다.

서로의 감정선이 겹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내 불안이 상대를 조이고 있었고,

그건 결국 상대의 거리를 밀어내는 힘이 되지 못한 채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불안형 애착에서 벗어난 이후, 그제야 나는 사랑을 '소유'가 아니라 '공존'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사람의 일상과 내가 완전히 겹치지 않아도 괜찮고,

내가 모르는 세계가 그 사람 안에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두렵지 않다.

무엇보다도 내 감정이 상대의 반응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유지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전처럼 뜨겁고 불꽃 튀는 감정은 아닐지 몰라도,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계속해서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는 편안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돌아보면 사랑은 마치 마이스너 효과처럼, 붙잡는 힘보다 밀어내는 힘이 중요할 때가 많다.

밀어낸다는 건 단절이 아니다.

적당한 거리, 스스로 설 수 있는 기반, 서로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그 힘은 오히려 관계를 더 오랫동안 공중에 떠 있게 만들어준다. 초전도체처럼!

내가 나 자신으로 충분히 안정된 상태일 때,

누군가와 부딪히지 않고 감정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머무를 수 있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밀착이 아니라, 부양. 또는, 소유가 아니라, 균형.


블로그 글을 복기하면서 '그때는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왜 그리도 애써 붙잡으려 했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건 아마, 내가 아직 내 마음을 밀어낼 줄 몰랐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때에는 아직 몰랐던 것 같다.

너무 가까워지면 결국 깨질 수 있다는 것을.

가끔은 거리 두기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 더 견고하다는 것을.


이제는 그런 관계를 꿈꾼다.

마이스너 효과처럼, 필요할 때는 상대의 세계를 존중하며 경계 안에서 서로를 밀어내고 떠받치는 감정

그건 무심함이 아니라, 존중에서 나오는 거리이고, 그 거리 덕분에 가능한 지속적인 울림이 가능하다.

지나간 연애기록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조만간, 이 변화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며,

'불안형 애착에서 벗어나는 방법과 그로 인해 느낀 사랑의 평온함'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붙잡지 않아도 마음이 여전히 떠 있는 그런 사랑을

나는 이제야 이해하고 행할 수 있게 되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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