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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순 Apr 14. 2023

기획의 시작

허둥지둥 초보 기획자의 서비스 구축 경험기

기획의 시작


오랫동안 글을 썼다. 텍스트큐브, 티스토리, 워드프레스, 네이버 블로그 등등. 여러 블로그를 만들었다 부수기를 반복했다. 20대~60대까지의 수많은 사람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며 삶을 돌아보고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일을 했다. 중증 아토피안으로 난치병에 오랜 기간 고생을 해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한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나를 채용해주었다. 새로운 기회가 다가온 셈이었다.


반년을 일했다. 페이스북의 카드뉴스와 이벤트 페이지, 아티클 등을 기획하고 만들었다. 국내 중견 제약사의 소셜 마케팅 홍보 업무였다. 그러다 큰 사고가 생겼고 모든 계약이 물거품이 되었다. 10명 정도의 소기업이었던 만큼 고심이 깊어졌고, 자금 안정과 충분한 리서치가 있은 후 개발하자고 묵혀두었던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를 기획하기로 정해졌다. 아이디어와 큰 방향만 정한 상태에서 나는 갑작스레 서비스 기획자가 되었다.




허둥지둥 초보 기획자


팀 내 기획자는 나 혼자였다.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지만, 기획은 달랐다. 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고, 온라인 기반의 서비스를 만들려고 시도해본 경험도 없었다. 나는 기획을 알아야 했다.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기획의 방법론, 일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 등을 익혀야 했다. 그때 나는 수많은 책을 미친듯이 읽었다. UI/UX와 콤포넌트의 명칭, 프로젝트 관리방법과 기획자의 역할, 통합문서관리나 기획자가 만들어야 할 수많은 문서의 형식 등. 기획의 전반을 업무 외 시간에 익혔다.


출처 : http://c-planet.co.kr/?p=123


당연하게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므로 실제 업무를 수행하며 공부를 해야 했다. 나에게 닥친 한의 챌린지였다. 나는 당시 유행했던 소셜 다이닝 모임에 계속 나갔다. 다양한 업계의 사람을 만나고 기획자나 운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일을 처리하고 수행하는 방식을 들었다. 지금이라면 오픈채팅과 커피챗, 트레바리 인프런 등의 온라인 접근성이 높은 서비스를 통해 접근했겠지만 당시만 해도 PM 및 서비스기획자의 글이 현저히 적었고, 커피챗이나 온오프라인 강좌도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몸으로 부딪쳤다. 당시의 나는 24시간 기획 생각뿐이었다. (물론 그 때문에 눈수술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늘 아쉬운 대목)


사진: Unsplash의Richard Brutyo


현장에서 문제를 캐치하고 전략 짜기


수많은 자료를 벤치마크했다. 데스크리서치를 하며 현재 마켓의 문제를 발견하고 싶었다.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은 현재 회사가 가진 자원의 한계였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구상하고 개발해야 했다. 나는 데스크 리서치 속에서 '양육 정보의 비대칭과 신뢰성 부족'을 발견했다. 온라인에는 부정확하고 신뢰성 없는 정보가 '홍보'의 탈을 쓰고 난립해 있었고, 전문 정보는 동물병원과 훈련소 등에서 값비싼 치료와 훈련을 받으며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파양과 유기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전체의 약 20%)


나는 팀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갔다. 애견카페와 고양이카페, 훈련소, 동물병원을 방문했다. 그 속에서 인터뷰를 하거나 무엇을 답답해 하는지 대화를 통해 캐치하려 애썼다. 일종의 필드리서치였다. 또한 리서치 전문 기관에 컨택하여 서베이를 진행하며 진짜 페인포인트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기획을 하고, 제품을 만들려고 달려들기 전에 시장과 현상, 고객과 파트너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적중했다.


서비스의 핵심 컨셉이 정해졌다. 반려인이 천만이 넘어가는 현재(2015년)에 보다 필요한 것은 개인 맞춤형 양육정보를 생애주기별로 제공하며 스케줄을 관리하는 앱을 만드는 것이었다. 핵심은 '개인화'와 전문가의 검수를 받은 '양육 콘텐츠'에 있었다. 실제로 시츄나 푸들, 말티즈와 같은 소형견과 골든 리트리버, 세퍼드와 같은 대형견은 양육 방법과 훈련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장모종과 단모종도 마찬가지이고, 암컷과 수컷도, 종의 성격과 양육 환경 (1인가구, 4인가구) 등도 개별 환경에 맞는 양육법을 갖춰야 하는 주요 요소였다. 


전체 로드맵을 그렸다. 초기에는 반려동물로 인기 있는 견종 50여종을 추려서 유형과 특성에 따라 분류하여 생애주기별로 양육 정보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추후에는 고양이, 파충류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었고, 1차 오픈까지는 자문위 섭외와 콘텐츠 제작 및 앱 개발 완료, 2차부터는 LBS(Location Based Service) 및 O2O (Online to Offline)를 활용한 24시간 운영 중인 동물병원 소개 및 진료 예약 지원, 전자차트 연동 등으로 확장, 3차는 네이티브 애드 (Native Ads)와 각종 오프라인 파트너의 연결로 인한 수수료 기반 수익모델 적용 등으로 로드맵은 구상했다. 물론 개발 진행상황과 시장의 상황에 맞게 로드맵은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할 테지만, 기본적으로 서비스의 전체적인 방향과 확장 전략, 수익모델 수립 등 전체 전략과 방향은 수립한 상태여야 했다. 




세부 기능과 앱 개발하기


방향은 그려졌다. 미국과 영국 등의 전문 기관들의 정보를 탐색했고, 각 유형과 조건에 맞는 콘텐츠를 수집/정리했다. 사용자가 나이대, 종, 성별, 털길이 등을 입력하면 해당 시기에 맞는 목욕주기, 적정 사료량, 빗질주기 등을 앱에서 노출해주기로 했다. 당일 산책지수나 부패지수는 덤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얼만큼 사료를 주었고, 빗질과 목욕, 훈련 등을 어떤 주기로 행하고 있는지를 캘린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양육정보를 제공하면, 사용자는 해당 정보를 토대로 일정관리를 앱 내에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였다.



IA (Information Architecture)와 와이어프레임 (Wireframe) 등을 만들고 단계별 정책을 수립했다. 그런 중에도 자문위를 섭외하고 콘텐츠의 품질을 검수해야 했으므로 정신 없었다. 극초기의 스타트업은 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한하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그 때문에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하기도 하다. 


당시에는 직접 사람을 만나고,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정리를 했으므로 통합적인 프로젝트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트렐로 (Trello) 아사나 (Asana) 등 협업툴을 여럿 제안하기도 하고, 기록과 싱크 맞추는 작업이 실제 작업에 해가 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관리해야 했다.


또한 팀원들을 동기부여하고 하나의 비전을 향해 달릴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인턴에게도 적절한 학습과 성장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때는 내가 사업기획하는 사람인지, 프로젝트 매니저인지, 서무와 같은 잡일꾼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손수 나서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고, 나는 군말없이 그것을 처리해나갔다.




운명의 시간


스타일 가이드와 반려동물 마스코트가 될 캐릭터 디자인, 로고/BI 디자인 등이 완수되고 점차 서비스의 외형도 갖춰져나갔다. 하지만 너무 앞만 보고 내달렸던 탓일까. 아토피와 여러 병증으로 고생했던 몸이 다시 엇박자를 타기 시작했다. 눈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점차 모니터가 흐릿해보이고 문서를 보기 힘들어졌다. 서비스 개발에 혼신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솔직하게 대표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방전된 것 같다고.


수술과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다녔다. 안과 전문 병원조차 수술을 꺼렸다. 아토피 합병즈으로 이미 눈수술을 몇 번 했기 때문일까. 수술 중 다른 수술을 추가로 해야 할 수도 있고 위험도가 크다는 거였다. 나는 다시 절망했지만, 그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나는 살아내야 했다.


그러다 수소문 끝에 귀인을 만났다. 아산병원의 안과 전문의. 그 분은 5-60대가 훌쩍 넘은 여의사였는데 다른 사람에 비해 위험도가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안심시키고 자신의 실력과 자신감을 믿으라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나는 그렇게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소기업이자 스타트업으로의 변모를 꿈꾸던 회사에게는 치명적인 소식이었다. 2달 이상 업무 공백이 생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므로. 수술 후 우리는 모여 앞날을 논의했다. 공백은 무리였고, 나 또한 회복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다. 그렇게 나는 7-80% 만든 서비스의 개발과 출시를 뒤로한 채 일반인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나의 기획자 인생은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다시 시작


오랜 시간 자연에서 치료를 받고 새로운 삶을 꿈꿨다. 기획자로 불태웠던 열정은 이제 무쓸모하다는 듯 잊어버리려 애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토피 신약은 전무했다. 그 말인 즉슨 언제든 내 몸은 합병증과 이차 감염 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학교조차 제대로 출석하지 못했던 고3때처럼 그저 살아내는 데 전심을 다했다.


2018년 중반. 신약 임상시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중증이었기 때문에 대상자가 되었고, 듀피젠트를 처음 접했다. 2019년 정식 출시되었고, 그때서야 비로소 치료제에 내성이 없고, 리바운드도 없고, 합병증과 고통이 없는 치료제를 만났다. 주사 한 번에 100만원 넘는 돈이 들었지만, 나는 다시 꿈꾸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했다.


오랜 숙고 끝에 다시 기획자의 길을 가고자 마음먹었다. 현장을 오가고, 서비스를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며 느꼈던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진정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수 있는 기획자로 성장하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삶의 문제도 스스로 잘 풀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다시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 끝에 이커머스 업계로 복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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