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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업가입니까?

몰경계 생활 #2 | 직장인에서 사업가로 변신하는 과정

by 몰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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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하는 사람은 실은 고수다, 몰라서 쉬워 보일 뿐이다.


공간을 운영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북카페 (몰경계)는 무엇을 요구하는지, 어떤 부분을 신경써야 하고 어떤 것은 힘을 빼도 되는지 감이 없었다. 좋은 공간을 만든다는 일념만으로 집중했다. 여전히 잘은 모르지만, 이때만 생각하면 '음식만 잘 만들면 장사도 잘 될 거야'라고 믿고 고생하는 여느 보통의 사장님들과 다를 게 없었구나 싶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건 고난의 시작이기도 했지만, 모르기 때문에 부딪쳐서 체화한다는 묘한 배짱(?)을 부리기에도 좋은 시간이었다.


한 줄의 컨셉과 큰 방향성은 빠르게 잡았다. 지난 글에서처럼 나는 나를 위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려고 했고, 번아웃에 지쳤거나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사람, 심신을 이완하고 몰입하고 싶은 사람 등에게 알맞은 공간이기를 바랐다. 내 공간의 첫 번째 고객이 바로 나이다 보니 공간의 디자인과 컨셉, 방향은 순조롭게 잡혔다. 중요한 건 아래와 같았다.


- 너무 상업적인 느낌을 주지 말 것.

- 누군가의 서재에 놀러온 느낌을 줄 것.

- 아늑한 느낌과 휴식을 위해 빈티지그린과 우드계열의 디자인을 사용할 것.

- 포인트를 줌과 동시에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도록 화분과 박쥐란 등을 활용할 것.

- 액자와 1인소파, 책상 등의 간격을 적절하게 조정하여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느낌을 줄 것.


실제 도안을 짜고 디자인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실전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제로 페인트칠을 하면서, 공간에 배치를 하고 동선 따라 직접 걸어보면서 작은 조정을 계속 했다. 어차피 한 번에 완성되는 건 없다는 생각 하나로 천천히 긴 호흡으로 해나가면 순조롭게 풀릴 일이라 생각했다. 여차하면 고객의 피드백 (사용 경험)을 듣고 그때그때 수정을 하자, 늘 귀기울이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 이제 시작이니 그런 초심을 잘 지켜나가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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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프로젝트가 아닌 비즈니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작은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것이 순조롭게 수행되도록 테스크 관리를 하며 하나하나를 해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사업, 그러니까 자영업은 달랐다. 전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고객이 처음 우리 공간을 인식하는 것부터 마지막 이용 후 후기를 남기는 것까지 모든 것을 순조롭게 (마치 배관따라 물이 흐르도록 하듯이) 이어져야 했다.


'공유 서재'이자 '북카페'를 대중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약을 받을 것인가. 워크인 손님들을 받을 것인가. 시간제로 운영할 것인가 그와 상관 없이 메뉴에 따른 가격만 책정하고 받을 것인가. 온라인 결제만 할 것인가? 2시간 단위로 운영한다면 1시간 더 이용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응대를 해야 하는가? 고객 관리는 어떻게 하지? 쿠폰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서 운영한담? 낮은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싶은데, 오피스텔 건물이라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게 효율적일까? 5분 전에 입장 가능하다고 하면 대기석을 만들어야 할까? 이용 마감 시간과 다음 타임 입장 시간이 교차하는 시간에는 어떻게 하지? 이용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동선을 최적화할 수는 없을까? 이용 마감 시간에는 문자를 보낼까? 대관은 어떻게 받아야 할까? 온라인 홍보는? 매출 관리는? 매장 청결 관리는? 음악은 어떤 것으로, 책은 어떻게 입고하고 큐레이션해야 할까? 등등등...


수많은 결정사항들, 그리고 그것들의 유기적인 이어짐, 확장성, 안정성, 명확성. 그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서울에 몇 군데 있을 뿐 한국에도 그리 유행하지 않는 공간 운영 비즈니스이다 보니 더 그랬다. '하나의 서재를 여럿이서 함께 이용하는데, 2시간마다 타임테이블이 바뀌고, 예약제로 운영되며, 음료를 주문할 수도 있고, 책상에서 작업하거나 빈백에서 쉬면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어도 되는 공간이라고?'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족의 반응도 그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시간 동안 책 읽는데, 돈을 내고 책을 읽는다고. 그만큼이나? 그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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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업가입니까?


처음에는 쉬운지 어려운지조차 몰랐다. 분간을 못했다. 캐롤 로스는 자신의 책 <당신은 사업가입니까>에서 말한다. "사업 아이디어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가치는 실행하는 데 있다. 동일한 사업 아이디어가 멋지게 실현될 수 있느냐, 아니면 형편없이 실행되느냐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 캐럴 로스 <당신은 사업가입니까> 유정식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4


맞았다. 실행, 그것도 모든 수준을 골고루 잘하는 것. 그것이 필요했다. 단순히 좋은 음향기기에 적절한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해서 틀어놓고, 기분좋은 향을 피우고, 친절하게 안내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이었다. 그것은 비즈니스를 (실제 시장(market)에서 먹혀들도록 잘 구성하고, 주변 상권과 소비력에 비해 과도하게 가격을 책정하지는 않았는지를 살피고, 고객이 공간을 이용할 때 (예약부터 방문, 이용, 퇴실까지) 어떤 불편함이 없도록 구성할 것인지, 문의 창구는 잘 마련해두었는지,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곧바로 수정해줄 수 있는지, 이 공간만의 특별함, 다른 곳과의 차별적인 요소는 무엇인지, 이곳만의 이야기거리가 있는지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야 하는 것이었다. 음식점을 하면 요리하는 시간보다 손님들 음식 내어주고 치우고 동선을 관리하고 안내하고 매출관리하고 직원관리하고 급여와 지출, 행정 관리까지 요리 이외의 모든 걸 잘해야 하듯이 우리의 공간, 공유서재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잘 구축하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티가 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워야 했고 부드러워야 했다.


나는 늘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사업자인가?" 여전히 답을 할 수는 없다. 예술가형 인간에 가깝기도 한 듯하다. 그러나 하나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있다. 내가 이 공간을 통해 주고자 하는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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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내 안에 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왜 이름이 몰경계(沒經界)인가에 대한 답과 같다. 도시를 점령한 무한 경쟁, 끝없는 성과주의, 개인의 개성보다 사회의 요구조건에 맞추기 급급한 현실의 이면, 한 번의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로 귀결되는 강박 사회, 돈은 벌지만 행복은 잃어버리는 사람들. 그들과 나, 우리 모두에게 스며 있는 경계(이 선을 넘으면 너는 낙오자야라는)를 벗어던지고, 오롯이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곳에서만큼은 나를 되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문득 깨달았다 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런 아늑함, 그런 재미, 그런 특별함을 공간에 부여하고 싶었다.


그게 지금의 공유 서재 <언리밋북스>이다. 부산대에서 시작한 몰경계가 여러 현실의 이유로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간 뒤 절치부심하여 만든.


이따금 방문자들은 공간에 있는 소품들과 책을 보고 말한다. "이것들은 모두 사장님이 직접 모으신 거예요?"라고. 질문을 받은 나는 간명하게 답하고 싶지만 0.5초간은 망설인다. '소품 하나하나에 모두 사연이 있고, 해외와 국내를 막론하고 수집하여 모았고, 내가 읽던 책, 부모님 댁에 있던 책, 해외에서 구매한 책, 미술/건축을 좋아해서 수집한 아트북, 문학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중고로라도 절판본을 구해왔던 문학서, 개성이 듬뿍 담긴 독립출판물들, 북페어에서 들여온 것들, 독립서점에서 구한 것 등등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가 있어요"라고. 그리하여 결국 그 많은 생각들은 잠시 접어두고 단지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저희가 하나하나 다 모은 거예요."


그리고 그 말 뒤에는 이런 말이 숨어 있다.


(이곳을 방문할 여러분들을 위해서)



경계를 허무는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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