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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고운 Sep 08. 2022

버찌 서너 알, 그리움 한 움큼

"어쩌면 추억을 따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찌가 익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던 6월 초순, 전주비전대 정문 앞을 막 지나는데, 5~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몇 명이 도로변의 벚나무 가지를 끄당겨 잡고 버찌를 따 먹느라 부산하다. 입술을 시꺼멓게 물들인 채 계속 버찌를 따서 입에 넣으며 깔깔대는 게 어린 소녀들처럼 티 없이 맑아 보였다.

  내가 찬찬히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서자 조금 계면쩍어하던 한 아주머니가

 “아저씨도 버찌 맛 알죠?” 하면서 손에 든 버찌 서너 알을 불쑥 내민다.

 “어! 예” 엉겁결에 엉거주춤 대답하고 손에 버찌를 받았다. 까만 열매들을 손바닥에 올려놓자 그제야 버찌 향기와 함께 아련한 시절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점령해왔다. 그 시절의 버찌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밥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던 시절에 군입정을 생각하는 일은 사치였지만, 열매 가운데 가장 먼저 익어서 아이들이 먹을 수 있던 게 버찌였다. 작은 열매 안에 씨앗이 대부분을 차지해서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는 않았지만, 흔히 맛보기 어려운 오묘한 맛을 지닌 게 버찌였다. 벚꽃이 피었다가 꽃비가 되어 흩날리며 떨어지면 오래지 않아 버찌가 열려 익을 것이라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어서 봄이 지나가고 6월이 오기를 기다렸다.

  일제 강점기에 그들의 국화(國花)라고 학교 운동장 주변에 심었던 벚나무는 대부분 높고 굵어서 어린아이들이 쉽게 오를 수 없었다. 나무 위에 올라가더라도 줄기가 미끄러운 편이어서 자칫하면 떨어져 뼈를 다치기 예사였다. 그래서 버찌 철이면 선생님들과 관리하는 사환 아저씨는 아이들이 벚나무에 올라가는지 감시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틈바구니에도 작은 몸집을 숨겨 선생님이나 아저씨의 눈을 피해 벚나무에 올라갔다.     

  나는 키가 작아서 늘어진 가지조차 잡을 수 없으니 나무에 오르지 않으면 버찌 맛을 보기 어려웠다. 때로는 그냥 올라갈 수 없어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나무에 오르면 신발주머니에 버찌를 담아 던져주고 원 없이 버찌를 따 먹었다. 조금은 색다른 맛, 오디 맛과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향기를 가진 버찌는 익기 시작해서 1주일 남짓 기간에 익어 떨어져 버리기 때를 놓치면 맛볼 수 없었다.

  어느 해 6월,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다. 종례가 끝나고도 교실에 남았다. 숙제를 마치고 집에 가겠다고 담임선생님에게 말하고 친구와 함께 교실에 남아 숙제를 했다. 숙제가 끝나고 살금살금 벚나무가 서 있는 서쪽으로 갔다. 모두 집에 가고 남쪽 운동장에서 아이들 몇몇이 놀고 있을 뿐 선생님도 안 보이고 아저씨도 없다.

  얼씨구나 하고 친구의 도움으로 버찌가 많이 달린 나무에 올라갔다. 약속대로 먼저 친구 신발주머니에 버찌를 담아 던져주고 버찌 몇 개를 따서 입에 넣는데 밑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야, 너는 왜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얼쩡거리냐? 버찌 따려고?”

 “아뇨, 저기 화장실 왔다가 가는데요.” 친구가 능청을 떨었다.

 “얼른 집에 가. 딴생각 말고.” 무서운 선생님이 그날 당직이었다. 그렇게 친구를 쫓아 보낸 선생님은 내가 올라간 근처 나무 그늘 밑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책을 펴고 읽는다.

  ‘어쩌나, 제대로 걸렸다.’ 움직여서 버찌를 따다간 소리가 나서 들킬 것이고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기다리는데 도대체 선생님은 일어날 줄을 모른다. 매미처럼 나무에 붙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으니 얼마 후에는 발이 저리기 시작하고 오줌도 마려운 것 같다. 발이 저리더니 점점 위로 올라와서 가랑이까지 저려 왔다. 다리가 저려서 이제는 선생님이 가더라도 내려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이러다가 온몸이 마비되면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질 것 같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무서웠다. 그리고 정말 오줌이 마려워 견딜 수 없다. 이러다 정말 큰일이 나지 싶었다. 4학년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인데 설마 날 어쩌겠냐는 배짱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선생님, 저 발 저려서 나무에서 떨어질 거 같아요. 엉엉!” 위를 쳐다본 선생님이 고소한 표정으로

 “흐흐흐, 요놈, 이제 항복이냐? 어서 내려와 이놈.”

 “꼼짝 못 하고 있었더니 정말 다리가 다 저려서 움직일 수 없어요. 나 좀 내려줘요. 엉엉”

 “뭐라고? 내려달라고?” 엉엉 우는 걸 본 선생님이 사환 아저씨를 불러 학교 사다리를 가져오고 나무에 올라와서 날 안아 내려놓고 한참을 주무르고서야 제대로 일어설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나무에 올라가는 걸 먼발치서 보고 모른 척 친구를 보낸 다음에 일부러 의자를 놓고 앉아 날 골탕 먹인 것이다. 나는 해설피까지 숙직실에서 손을 들고 벌을 받은 뒤에 가까스로 풀려났다.     



  손에 있는 버찌 몇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특유의 향과 함께 아련한 맛이 달큼하게 입안을 휘돈다. 버찌가 익을 때마다 먹어볼까 생각만 하다가 차마 따지 못했는데 아줌마들 덕분에 우연히 맛을 보았다. 그 시절의 맛에 비할 수는 없어도 그 아련한 추억의 맛이 더하여 먹을만하다.

  아이들처럼 깔깔거리며 버찌를 따 먹던 나이 든 여인들도 어쩌면 추억을 따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얼른 다가가서 나뭇가지 하나를 잡아당겼다. 여인들이 까르르 웃는다.

 “아저씨가 버찌 맛을 아시네.” 입술이 까만 여인의 눈웃음이 살갑다.

  내 입술도 곧 까맣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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