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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고운 Aug 06. 2022

여름, 고향 그리고 풀꽃


  그 시절의 여름은 그리움 속에 적혀있다. 무엇 하나 꺼릴 것 없는 완벽한 자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 있었던 시간을 딱 두 글자로 말한다면 ‘여름’이다. 거기에 방학이라는 단어를 더하면 세 글자로 변한다. 바로 ‘내 세상’이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던 나만의 시간, 방학 숙제 따위는 하루면 다 해치웠다. 일기도 달력에 날씨만 표해두었다가 한꺼번에 다 썼다. 그때부터 내 영혼은 자유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때부터 속박을 거부하고 틀에 매이기 싫어하는 자유 영혼이 심어졌다.

  그 자유라는 단어는 모든 것을 풍화시킨 시간의 조화 속에서도 조금도 줄어들거나 물러지지 않고 내 기억에 살아있다. 줄줄이 세 살, 두 살 터울의 4형제 가운데 막둥이였던 나는 무서운 아버지의 철권통치 아래서도 기죽지 않았고 형들의 폭행과 견제 속에서도 할 말을 다 하는 입이 제법 단단한 딱따구리였다.     

  전주 노송동에서 살다가 교동으로 이사해서 처음 만난 전주천은 진정한 천국이었다. 아마 그때가 내 평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지 싶다. 전주천은 물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나를 물개로 만들어주었고 피라미낚시, 모래무지, 갈겨니 등을 고기 병을 놓아서 잡거나 몰아 잡는 기술도 가르쳐 주었다.

  밤에는 석유 솜방망이를 만들어 밤고기를 잡고 헌 가마니에 쇠똥을 넣어 여울에 묻어두면 뱀장어 미꾸라지가 들어가서 쉽게 잡는 법도 배웠다. 어디 그뿐인가? 가을이면 싸전다리 밑에 참게 발을 치고 참게 잡는 노인이 새벽녘에 잠들었을 때, 살그머니 게 바구니를 털어오는 나쁜 재미도 가르쳐 주었다.      

  내 세상이던 여름방학은 ‘해방’이고 ‘자유’였다. 집에서 조금 가면 맑은 물이 흐르는 전주천에 피라미, 모래무지, 붕어, 메기, 쉬리, 뱀장어, 참게까지 온갖 물고기가 시글시글했다. 여름내 피라미낚시, 작살질로 물고기를 잡았다. 고기를 낚다가 더워지면 훌러덩 벗고 물에 들어가 입술이 파랗게 될 때까지 헤엄치고 물장난하며 놀았다.      



  5월 연휴 끝 무렵에 아이들과 가정의 달 의미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 카메라를 짊어지고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딱히 갈 데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헤어져 엄습하는 ‘외로운 느낌’ 때문이다. 난 가끔 마음이 외로우면 어릴 적 놀이터이면서 진정한 고향인 전주천을 찾아간다. 지금은 물길도 변하고 모두가 달라졌어도 내가 놀던 그 물가에 앉아있으면 오래된 자유가 돋아나 마음을 가볍게 했다. 내가 사는 효자동은 아직도 타향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서로 만나기도 어려웠던 마음이 조금 풀려서인지 천변 길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조금 늘었다. 고향에 갈 때 기차역에서 열차표를 사면서부터 마음은 이미 고향에 가 있듯이, 자전거 페달을 밟는 발짓이 가볍다. 달리다가 길섶에서 작은 꽃을 새롭게 발견하여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나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비린내와 멀리 반짝이는 작은 윤슬이 아련한 시간 속으로 날 이끄는 오후의 천변길에는 작은 평화와 이름 지을 수 없는 사랑 같은 애매한 그리움이 넘쳤다.   

  

   -큰 지칭개 나물 -


  풀꽃에 앵글을 맞추다가 달리기를 반복하며 전주천 한벽당에 이르렀다. 맑은 물이 어제(魚梯)를 따라 넘치는 산책로 난간에 자전거를 세우고 맑게 흐르는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스라한 시공간(時空間)을 더듬었다. 내가 서 있던 그 자리는 급류에 제방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견칫돌을 쌓고 시멘트 기둥으로 마감해놓았던 곳이다. 그 위에 옷을 벗어놓고 고추를 달랑거리며 물속으로 뛰어들던 우리들의 수영장이었다. 물이 휘도는 지역이어서 아이들 키를 훌쩍 넘길 만큼 깊었다. 




  고향은 내 허물과 철없이 저지르던 말썽이 그대로 남아 기억되는 곳이다. 고향의 골목마다 냇가의 돌무더기, 풀잎 하나하나에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찍혀 있고 언제든 돋아나 날 기억하고 반기는 곳이다. 비록 지금 그 모양이 변하고 다른 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그 오랜 시간의 흔적은 틈새마다 모퉁이마다 숨어있다가 내 그리움을 일깨운다. 

  아이들이 즐거움에 겨워 목청껏 지르는 소리, 물속에서 크고 작은 고기들이 돌 틈에서 요리조리 숨으며 내 작살 솜씨를 비웃던 기억까지 70년 가까운 세월이 무색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 물에서 함께 놀던 동무들, 날 물개로 만들어준 작은형, 내게 낚시를 알게 해 준 매운탕 집 아저씨, 여름은 왔는데 누구 하나 이 세상에 남아 함께 추억할 사람이 없다.     

  후미진 삶을 사느라 늘 허기진 마음으로 버둥대다가 그 소중한 사람들이 다 저세상으로 떠난 뒤에야 텅 빈 고향을 안타까이 찾는 어리석음이여. 몇 번이나 한벽당을 찾아갔지만, 함께할 그들이 없으니 아픔만 한가득 안고 돌아올밖에…. 공유하지 못하는 추억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룩한 것인지 누가 알까. 늘 그립고 가슴이 뛰지만, 가보면 더욱 혼자인 것을 절감하는 그곳. 그래도 전주천 한벽당 아래에서 처음 보는 작은 풀꽃 ‘큰 지칭개 나물’을 만난 건 큰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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