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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고운 Aug 01. 2024

산수(傘壽) 고개를 넘으며

정말,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다.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사는 재미가 희미해질 60대 끝자락이면 황송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80살이란다. 그것도 요즘 나이로 꽉 찬 여든이라니…. 사람 팔자 시간문제가 아니라, ‘나이 팔자 사람 문제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그냥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80년 정도 살면 이런 말쯤이야 쉽게 만들 수 있는 거다. 살아보면 안다. 세상만사가 법대로 흐르는 게 아니라는 건 5살 배기도 안다. 다만,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 있는 이유나,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잘•알•못’이다.


그래도 남들처럼 호들갑 떨어가며 ‘사흘이 멀다’하고 병원에 쫓아다니지 않으니 다행이다. 건강검진이라며 피 검사하고 목구멍 똥구멍으로 파이프 집어넣어 검사하는 병원 돈벌이도 시켜주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의사들 다 굶어 죽었을 것이다. 아니, 나는 아플 틈조차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치병에 걸려 날로 사위어가던 아내, 나까지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간병을 시작하며 매일 밤에 전주 천변 길을 달렸다. 덕분에 마라톤 대회에도 참석할 만큼 오래 달리는 실력도 늘었다.  아내가 불치명에 걸려 전국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나는 의사라는 직업을 퍽 미워하고 경멸하게 됐다.


그들에게 환자는 만만한 ‘먹을 콩’이었고 돈뭉치였을 뿐이다. 돈을 잘 빨아내는 의사의 병원이 크고 환자가 넘쳤다. 어떤 의사도 불치병이니 집에서 섭생이나 잘하고 있으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환자 앞에서는 늘 희망을 말했다. 뻔히 안 되는 치료 방법을 말하며 “효과를 본 환자도 있었다.”라고 가능성을 흘렸다.


그러면 환자는 냉큼 그 치료 희망을 걸었다.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상한 치료를 모두 받았지만, 효과는커녕 환자는 몸이 축나고 내 지갑도 따라서 축났다. 나중엔 서울대 병원신경과에서 줄기세포라는 맹물 같은 주사를 1년 반이나 맞으며 주는 약을 먹다가 뼈만 앙상하게 남아 탈진해서 치료를 포기했다.


병원 약을 끊고 내가 약초를 달여 먹이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살이 오르고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체중이 늘고 몸이 좋아져 요양병원에서도 두어 해 잘 지냈는데 내가 문학기행을 떠났던 날 오전에 가래가 끓어오르는 걸 간호사가 제대로 처치하지 못해 저세상으로 건너갔다. 내가 목매어 지키던 존재가 사라지면서 한참은 허둥거리는 삶을 살았다. 삶의 목표처럼 내 앞을 가로막아 강요하던 간병과 돌봄이라는 익숙한 습관이 사라지면서 앞이 휑하니 비어버렸다.


그 가림막이 사라지고 내 앞에 드러난 현실은 막막하기만 했다. 황량한 벌판에 내동댕이쳐진 71세 노인, 늙바탕에 자식들 도움을 받아 가며 구차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 그러던 차에 후배가 운영하는 신문사에 볼일이 있어 찾아갔다가 신문일을 돕기로 했다. 내게 일거리를 내민 그 마음이 고마웠다. 뭔가 할 일이 생겼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고 다시 사는 의미를 찾은 계기가 되었다.


구이 저수지 아래에 핀 코스모스


그리고 지금껏 글을 쓰고 신문 제작을 도우며 9년째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가 나이 든 이들이 글쓰기를 배우고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어 노년의 의미를 되새김하는 재미를 알았다. 이 일이 내가 아직 남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고맙고 즐겁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살면서 함께하고 부딪힌 사람들 모두가 고맙다.


그럭저럭 살다 발밑을 살펴보니 아득한 팔순 고갯마루에 있다. 오늘이 2월 2일, 꽉 찬 80살이 되었다. 걸어온 길이 저렇게 멀고 자갈투성인 줄을 알게 됐고 걸어갈 앞길은 안개가 자욱하여 겨우 발아래만 보이는 고개라는 걸 깨닫는다. 금세라도 뭔가 튀어나와 날 끌어갈 듯한 그 음습한 길이 어디까지 뻗쳐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다만 소망이 있다면 이렇게 아프지 않고 지내다가 아득한 발아래 저세상으로 떠나는 일이다.




이 나이에 이르렀으면 세상 이치에 통달해도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 아직도 내겐 아이들 같은 치기(稚氣)가 남아 문득 당황한다. 호기심에 아무 데나 머리를 디미는 철딱서니에 나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겉은 늙어 쪼그라들고 머리는 하얀데 속은 전혀 늙지 못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불쑥불쑥 나서고 끼어든다.


‘낄낄 빠빠’라던가? 특히나 노인은 낄 데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알아야 지청구를 듣지 않는다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나마 기운이 줄어 마구 쏘다니지 못해서 말썽을 덜 일으키나 싶다. 80살 생일에 반성문이나 쓰고 있는 주제도 우습다. 이제는 좀 가라앉혀서 차분하게 보고 생각하며 살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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