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추위가 풀릴 줄 모르고 이어졌다. 3월에도 최저기온은 영하에 머물고 낮 기온도 10℃ 아래에 머물며 버티더니 중순을 넘어서자 슬그머니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한참 전에 변산바람꽃이 피고 복수초가 피었다며 부안에서 사진을 보내왔었다. 그런데 추운 날씨 탓인지 우리 동네 들녘에는 풀이 자라지 못하고 땅바닥에 붙어있다.
토요일 오후 볕뉘가 드는 창가에서 동네 공원을 보다가 엷은 연두색 환상 같은 빛이 마른나무 숲을 감싸고 있는 걸 보았다. 봄에 버드나무가 보여주던 그 연둣빛 안개 같은 빛무리였다. 그 빛무리가 감돌기 시작하면 봄이 제대로 열린다는 신호였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자전거를 끌고 내려갔다.
아직은 다소 쌀쌀하지만 바람 속에 아련한 봄기운이 숨어 있는 듯 맨손으로 자전거를 탈 만했다. 스마트폰 기온은 8℃라고 했다. 해가 지기 전에 삼천三川을 거슬러 갔다가 돌아올 요량으로 서둘러 페달을 밟았다. 추위를 구실로 겨우내 자전거를 멀리해서인지 속도가 나지 않는다. 시가지를 벗어나 삼천으로 내려가서 자전거길로 들어섰다.
큰개불알꽃(봄까치꽃)
길섶에는 들풀이 돋아나고 양지바른 자리에는 제법 소복하게 자란 곳도 있다. 날씨가 심술을 부려도, 가기 싫은 겨울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생떼를 써도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올라갔다. 냇물을 건너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근처에 이르렀을 때 좁다란 풀밭이 보였다. 거기서 작고 파란 점들을 볼 수 있었다.
봄까치꽃이라는 예쁜 이름을 얻은 큰개불알꽃이다. 추위에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꽃이 작고 몇 송이만 피었지만, 그 짙푸른 색과 깜찍한 자태는 내 눈을 잡아두기에 충분했다. 오종종하게 작은 풀들이 모여 있는 풀밭에 파란 별이 점점이 빛나는 아기자기한 그림, 또 하나의 우주를 그려내고 있었다. 초록 하늘에 파란 별이 반짝이는 앙증맞은 작은 우주가….
이른 봄에 피는 바람꽃이나 노루귀, 복수초는 노구老軀로는 찾아가 볼 수 없어서 사진으로나 보는 꽃이다. 내 봄은 봄까치꽃에서부터 시작한다. 봄까치꽃이 피면 그 뒤를 따라 ‘꽃마리’가 피고 ‘별꽃’, ‘꽃다지’도 줄지어 피었다. 봄꽃들이 잇따라 피어나 열심히 씨앗을 만들며 시들해질 즈음에 ‘수레국화’가 피면 여름이 시작되었다.
쪼그려 앉아 봄까치꽃을 보다가 근처 벤치에 앉았다. 이제는 들판에 앉아 풀꽃을 보는 일조차 오래 계속할 수 없는 체력이 되었다. 겨우내 운동을 게을리한 탓이다. 눈이 내려 쌓이면 강아지처럼 밖에 나가 쏘다니기 좋아하지만, 어설픈 봄날에 만나는 추위는 뼛속으로 찬바람이 스미듯 달갑지 않아 방구석에서 버틴 죗값이다.
간간이 부는 바람은 조금 차가운듯해도 그 바람 사이에 스민 봄기운이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선다. 벤치에 허리를 뒤로 젖혀 펴 본다. 뼈마디가 작은 신음을 내며 자리 잡는다. 노곤하다. 볕가리개 모자로 얼굴을 덮고 벤치에 누웠다. 보청기를 통해 새가 지저귀는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아련하다. 봄바람이 모자 틈을 비집고 들어와 눈꺼풀을 끌어내렸다.
빛이 고운 동산에 올라갔다. 세상에 모든 꽃이 다 피어 있는 듯, 온갖 모양과 찬란한 색, 크고 작은 꽃들이 한꺼번에 모여 핀 언덕이었다. 터지듯 번져 나오는 화향花香에 정신이 몽롱하고 나비가 꽃송이에 앉아 날개를 쉬는 꽃동산이었다. 크고 작고 형형색색의 꽃과 이름 모를 새소리가 가득한 동산이다. 낙원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려니 싶었다.
취한 듯 보다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이 없다.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시시해졌다. 하다못해 강아지 한 마리라도 있었으면 싶었지만, 날개를 쉬는 나비 이외엔 움직이는 게 없다. 누군가 불러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걸어가서 뭔가를 찾아보려 해도 걸음이 걸어지지 않았다.
아름답던 풍경은 그림인 듯 멀어지고 답답한 마음이 점점 더해갔다. 낙원에 온 것이 아니라 호화로운 감옥에 갇힌 듯 답답함을 넘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다. 머릿속은 더욱 어지러워지고 발버둥을 해도 몸이 듣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눈이 떠졌다. 얼굴을 덮은 모자에 뚫린 구멍으로 햇빛이 스며들고 있다. 얼른 모자를 치우고 앞을 보았다. 아이들 서넛이 운동기구에 매달려 떠들며 놀고 있다. 그 아이들이 나를 이상한 꽃 지옥에서 구해준 셈이다. 노곤한 몸으로 벤치에 누워있다가 잠깐 잠이 들어 꿈을 꾼 것이다. 몸이 으스스하고 추위를 느낀다. 얼른 일어나서 팔다리를 흔들어 몸을 깨웠다.
잠시 쉬려다가 꾼 꿈 치고는 너무 선명하다. 다시 벤치에 앉아 꿈에서 본 정경을 생각해 보았다. 봄까치꽃을 찾아 나와서 꽃을 보았으면 되었는데 왜 그 이상한 꽃동산을 만났을까? 내가 여태 찾았던 꽃동산의 실체를 보여준 것일까?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꿈이었다. 잠시 벤치에서 쉬면서 만난 봄날의 개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구체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요즘의 내 마음을 잘 드러낸 꿈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살아온 게 벌써 15년쯤 되었으니 외로움이 사무칠 건 당연하다. ‘아무리 발버둥을 해도 외로움을 벗어날 길은 없으니 그냥 자족하고 살라’는 가르침이었을까? 그래도 호화로운 꽃동산을 보여준 게 다행이지 싶다. 아직 싸돌아다닐 수 있다는 걸 고맙게 알고 살라는….
다시 일어나서 자전거에 올랐다. 새봄을 맞은 삼천 길은 잠자던 것들이 깨어나는 소생의 마당이었고 힘찬 생성(生成)의 현장이었다. 그 생기 넘치는 마당에 헐고 푸석거리는 몸이나마 끌고 달리며 작은 에너지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란 노욕老慾이 허망했다. 하지만, 이런 허망한 꿈도 봄이어서 가능한 것이려니 하며 힘주어 페달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