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밥부터가 다른 대기업 사내식당과 공무원 사내식당 이야기
남편이 본사로 발령이 났다. 남편은 늘 본사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육아 때문에 본사 발령을 몇 차례 미루고 지방근무를 오랫동안 하면서 겪었던 그이의 고초(?)들을 숱하게 들어서 알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그동안 겪은 고초들에 대한 이야기는 공무원인 내가 겪은 고초들과 비슷한 내용들이었다. 좋게 말해 회사에서 직장인이 겪는 고충, 나쁘게 말해 머슴살이를 하는 노비같은 우리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머슴살이와 내가 하고 있는 머슴살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노동이 주는 보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한 달에 한 번씩 받는 월급, 휴가 및 보너스, 각종 복지제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루 일과 중 내 노동의 절반을 보상받는 첫 시간이 바로 점심시간 아닐까? 보통 조직의 규모와 직원 수에 따라 구내식당이 마련된다. 전문 영양사가 영양과 맛, 제철 식재료 등을 고려한 최고의 조합으로 마술처럼 만들어내는 식단. 특히 공무원은 국감(국정감사), 행감(행정사무감사), 예산결산 업무 철에는 밥 먹으러 갈 시간조차 없기에 사내식당 밥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알 수 없긴 해도 빨리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기에 나는 사내식당의 존재를 중요하게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남편의 사내식당 메뉴 사진을 받아보고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여태껏 내가 우리 사내식당에서 먹은 것은 꿀꿀이죽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냥 단순히 메뉴의 차이 문제가 아니었다. 뭔가 인격모독 같다는 느낌? 내가 여태껏 사내식당에서 먹은 밥들은 샐러드 조차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예쁘게 퍼주는 것 따윈 없고 식판의 그릇과 손잡이 아무 곳이나 덕지덕지 묻혀질 수 있는 그런 수준이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있어도 다른 직원들 대기줄이 가득 차 있어서 빨리 먹고 일어나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매번 점심시간은 그냥 동물처럼 배만 채우러 온 것 같았고 빨리 처먹고 쳐 일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공무원과 일하기 답답해요', '공무원은 사고가 갇힌 것 같아요', '공무원은 생각하는 게 왜 그렇죠?'라는 시민들의 민원이나 인식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저렇게 갇혀서 동물밥을 먹어서 그런 건 아닐지..'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서글퍼졌다.
직장인들이 하루 중 가장 기다린다는 점심시간. 내 노동의 중간정산을 받는 느낌이자 남은 하루의 노동을 희망의 노동으로 바꾸는 시간. 내가 겪은 공무원의 점심시간은 일이 바쁠 땐 구내식당에서 동물밥을’처’ 먹는다. 때때로 먹는 외식은 메뉴부터 식당 예약까지 상사들의 입맛에 맞게 챙겨야 하며 밥 먹는 순간 조차 일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업무의 연장이었다. 일화로 어떤 시에서는 이런 고충을 견디다 못해 점심시간 혼자서 샌드위치 먹으며 산책을 하는 신규공무원을 보고 한 상사가 '저 친구 공직에 적응을 못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말이 좋아 공직이지 이건 노비 중에서도 상노비 아닌가. 이래서 머슴살이를 해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것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