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은 점점 조용해졌다.
이어폰에선 음악이 흘렀지만, 팀장님의 머릿속은 온통 회의 시나리오로 가득했다.
오늘은 또 어떤 말이 날아들까, 어떤 표정으로 버텨야 할까.
출근 전부터 전투 준비를 하는 기분이었다.
커피 한 잔을 사서 사무실로 들어설 때면, 이미 하루 분의 에너지를 반쯤 쓴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작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너무 '정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정장을 깔끔히 입고 제시간에 도착하고, 말끔한 인사를 하고, 성과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된다.
누가 봐도 안정적이고 문제없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엔 점점 짙어지는 피로감과 자기혐오가 있었다.
‘사람답게 일할 수 없다는 감각’은 그렇게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스며들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회의 자리에서는 언제나 권위가 우선이었고, 질문은 도전으로 여겨졌다.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표현을 조심했고, 제안은 쉽게 무시되었다.
실행은 빠르되, 고민은 부족했다.
모든 일정이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라는 말로 무리하게 정해졌고, 피드백은 늘 "다음엔 좀 더 잘해보자"로 끝났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고, 결과만 요구되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연기였다.
불합리하다고 느껴도 불쾌함을 드러낼 수 없었고, 울고 싶어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회의 중 누군가가 부당한 평가를 받을 때조차도, 침묵이 더 안전했다.
그러면서도 '협업', '조직문화', '수평적 소통' 같은 단어들이 메일 제목처럼 돌아다녔다.
아이러니였다.
말로는 모두가 평등했고, 실제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다.
팀장님은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갔다.
'일하는 사람'이라는 껍질은 남았지만, '생각하는 사람', '느끼는 사람'은 사라져갔다.
퇴근 후 거울을 보면, 그저 피로한 중년의 얼굴만이 있었다.
그 얼굴엔 더 나아지고 싶은 열정도, 함께하고 싶은 팀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 감정을 언젠가부터 ‘사라짐’이라고 불렀다.
그 속엔 존재가 무력화되는 감각이 있었다.
변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사람답게 일할 권리’를 되찾기로 했다.
첫 번째 시도는 '기록'이었다.
매일 있었던 일들을 요약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적어보았다.
처음엔 단순했다.
“회의 중 무시당함.”
“과도한 일정, 설명 없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더 명확한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상사의 지시는 일방적이며, 팀원 간 협의의 여지가 없다.”
“회의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 통보다. 동료들의 표정에 피로와 무력감이 보인다.”
이 기록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한 방식이었다.
사라지고 있는 자신을, 다시 호출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였다.
그리고 그 작은 시도가 생각보다 큰 파장을 가져왔다.
기록을 통해 그는 현실을 인식했고, 그 인식은 말로 이어졌다.
하루는 회의가 끝난 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 방식이 반복된다면, 팀원들의 자율성과 몰입도가 계속 낮아질 수 있습니다.”
정면 돌파는 아니었다.
하지만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조심스럽게 감정을 얹었다.
예상대로 상사의 반응은 차가웠지만, 그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남아 회의실의 공기를 바꿨고, 이후 몇몇 동료들은 그에게 눈빛으로 응답했다.
그날 이후 팀장님은 종종 말의 자리를 만들었다.
공식적인 자리뿐 아니라, 점심시간 대화나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작게 말을 얹었다.
불편함을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고, 구조로 분석하고, 언어로 표현했다.
그의 말은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숨 쉴 틈이 되었다.
‘사람답게 일한다’는 건 단지 야근을 줄이고, 복지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나의 목소리가 유효하다는 감각, 그리고 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확신.
그것들이 있어야 진짜 일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는 그 확신을 되찾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괜찮은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는 안다.
사람답게 일할 수 없다는 감각이 들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사람처럼 느끼는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그 감각을 무시하면 결국 자신이 사라지고, 구조는 더 강해진다는 걸.
그래서 그는 여전히 느끼고, 여전히 쓰고, 여전히 말한다.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기 위해.
“나도 그랬다고. 하지만 견디기만 하지 않았다고.”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쓴 문장들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날, 나는 나를 구했다》에서 저의 고백을 더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혹시 더 많은 이야기와 작은 위로들을 듣고 싶으시다면 그 책 속에서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